고려 말에 들여온 성리학은 새로운 학풍으로 자리 잡으면서, 성리학이 지향하는 최고의 인간은 성인이요. 성인 정치의 요체인 요순시대(堯舜時代)를 구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상적 성대(聖代)로 불려왔던 요와 순은 대표적인 성인 정치가로 인류의 이상사회를 건설했던 만인의 사표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하·은·주(夏殷周) 3대로 이어지는 우(禹)·탕(湯)·문(文)·무(武)·주공(周公)에 이르는 성인의 출현과 이상 사회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공자는 모든 성인을 집대성(集大成)한 지성(至聖)으로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라는 지극히 높은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성인이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이요. 누구나 학문을 한다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希望)과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희성(希聖)을 목표점으로 매진하였던 것입니다.
조선의 학자 율곡 이이(李珥)도 16세에 어머니를 여윈 슬픔을 못 이기고 죽고 사는 삶의 원리를 터득하고자 금강산에 입산하여 불교를 연구했습니다. 19세에 다시 세상으로 나온 율곡은 20세에 지은 ‘자경문(自警文)’이라는 글에서, “성인으로 준칙(準則)을 삼아 털끝 하나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고 하겠다”(以聖人爲準則 一毫不及聖人 吾事未了)라는 비장한 각오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산도 최고의 인생 목표는 성인이 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성인의 학문을 탐구했을 것입니다. 곧, 사서육경(四書六經)에 대한 240권이 넘는 방대한 경학연구서의 근간은 학문을 하여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며, 어떻게 해야 성인의 정치가 바로 설 수 있겠느냐에 대한 끊임없는 구도(求道)의 방법이자 위대한 자기 성찰의 눈물겨운 고백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서육경에 대한 경학연구의 결과로 얻은 결론은 주자학 이후로 체계화된 성리학의 이론으로는 절대로 성인이 될 수 없다는 확고한 판단이었습니다. 행동과 실천이 배제된 관념위주의 성리학 체계로는 성인이 되는 길은 찾아낼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요즘 사람이 성인이 되고 싶어도 이룰 수 없는 데는 세 가지 이유를 듭니다. 하나는 하늘(天)을 이(理)로 인식함이요, 둘은 인(仁)을 생물의 이치(生物之理)로 인식함이요, 셋은 중용(中庸)의 용(庸)을 평상(平常)으로 인식함이다”(「心經密驗」)라는 탁견을 주장합니다.
하늘을 이치(理), 인(仁)도 이치, 용(庸)을 평상이라 해석했던 주자학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논리입니다. 이(理)라는 관념의 세계는 실천과 행동에서 유리되기 때문에 행위가 없이는 성인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 다산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인이 될 것인가요. 경건함과 속임 없는 양심[愼獨]으로 하늘을 섬기고[事天], 서(恕)라는 덕목을 억지로 실천해서라도 인(仁)을 구하여[求仁], 사천(事天)과 구인(求仁)을 오래도록 쉼 없이 진행한다면[恒久不息] 그 사람이 바로 성인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던 것입니다.
공부자의 도인 ‘서(恕)’와 ‘항구불식’이라는 『중용(中庸)』의 세계에 도달한다면 바로 성인이라는 주장, ‘하면 된다’는 다산의 철학이 ‘다산학’이라는 이름으로 주자학과는 분명한 차이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다산학’을 통한 성인되기에 우리도 한 번 참여해보면 어떨까요.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