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이야기

‘1박 2일’ 유감

by 호호^.^아줌마 2009. 5. 10.

‘1박 2일’ 유감

 

편집국장 김양순


모처럼 가족들이 함께하는 일요일 오후, 3대가 함께 모여 박장대소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KBS의 대표적인 주말 버라이어티 오락쇼 ‘1박 2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나라 곳곳을 누비며 다섯 명의 남자들이 벌이는 요절복통 1박 2일 여행담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 이상으로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우선, 해마다 천만 명 이상의 여행객이 해외로 떠나는 요즘, 1박 2일 팀은 농촌과 산골, 어촌과 섬, 그리고 지도에 있을까 싶은 삼천리금수강산을 돌며 그 곳의 훈훈한 인심과 정겨운 사연들을 들려준다.

이 프로에 등장하는 장소는 곧바로 인기여행지로 급부상할 정도고, 그러다보니 자치단체들은 너 나 없이 1박 2일팀을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로비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 1박 2일팀이 지난 8일 나주에 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한 초등학생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1박2일 지금 어디서 찍어요?” 하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몇 달 전에 나주시에서 유치신청을 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그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터였다.

 

공교롭게도 1박2일팀은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 목사내아에서 하룻밤 머물며 촬영을 한다했다. 딸아이는 ‘승기 오빠’를 봐야 한다면 밤늦도록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고, 인근 유치원생들조차 하루 종일 ‘오빠들’을 보기 위해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던 하루였다.

 

단지 ‘1박 2일팀’이 온다는 것만으로도 나주시내가 들썩였으니 이제는 문화사업도 인기 연예인들의 후광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 나주시가 1박 2일팀을 끌어들인 것은 오는 13일 정식개장을 앞두고 있는 나주목사 내아 ‘금학헌(琴鶴軒)’을 전국적으로 띄우기 위한 홍보 전략의 하나다.

 

강호동과 이승기를 비롯한 출연진들은 나주곰탕을 소재로 한 복불복게임과 산포면 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콰이어길과 홍어정식, 황포돛배와 목사내아에서의 숙박체험 장면을 통해 나주의 먹을거리와 볼거리 등 다양한 모습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란다.

 

이렇게 해서 이제 관광객을 위한 숙소로 탄생하게 되는 목사내아는 조선시대 나주목에 파견된 지방관리 목사가 머물던 살림집으로, 전남도 지정문화재 자료(제132호)다. 

 

조선시대 20개 목 가운데 아직까지 내아가 남아 있는 곳은 나주가 유일하고, 목사 내아는 중앙관리와 사신들이 묵던 객사인 금성관과 함께 관아 건축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이제는 연예인들을 동원해 웃고 떠들며 왁자지껄 난장판을 벌여야 제값을 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마도 목사내아는 나주를 관장하던 목사가 머물던 집이 아니라 ‘1박2일 오빠들’이 머물던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문화에 대한 격세지감은 또 이렇게 시작되는가 보다.

'나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난 어버이날에...  (0) 2009.05.21
내 친구 순심이  (0) 2009.05.12
아담과 하와   (0) 2009.05.09
2009 어린이날 나의 아이들에게,  (0) 2009.05.05
2009 우리가족 달력  (0) 2009.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