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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여행기

나주 도시재생, 일본 홋카이도(北海島)에서 배운다

by 호호^.^아줌마 2011. 7. 18.

기획연재…나주를 바꿔라 ‘확’ 바꿔라⑧

 

◇ 오타루는 운하를 개선하기 위해 시작된 사업이 민간중심으로 유리공예, 오르골로 대표되는 관광도시로 성공해 연인원 750만 명이 도시를 다녀간다.

 

 

도시재생, 일본 홋카이도(北海島)에서 배운다

 

낡은 맥주공장이 박물관으로 변신 관광객 유치의 마중물로


성형은 미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많은 도시들이 도시재생을 통해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나주도 빛가람혁신도시가 완성되면 최첨단 신도시와 쇠락한 구도심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 문화적인 괴리감 이상으로 심리적인 박탈감이 지역사회의 큰 저해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신구도심 간의 격차를 줄이고, 원도심 주민들의 정주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말잔치에서 머물고 있는 원도심 활성화 방안이 좀 더 속도감 있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

나주시가 도시재생사업이라는 맥락으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사업들이 과연 어떻게 추진되고, 어떤 미래를 지향할 것인가, 이번 호에서는 나주시 문화체육관광과 김종순 문화재팀장이 이끄는 나주시 시정연구모임 ‘붉은 번(藩)’의 일본 홋카이도(北海島) 답사 후기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의 시사점을 찾아본다. / 편집자 주



나주시 시정연구모임 ‘뜻세움’ 프로젝트에서 나주에 상존하는 근대산업유산 재생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붉은 번(藩)’팀이 지난달 30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일본 홋카이도 지역의 도시재생 사례를 살펴보고 왔다.

나주시 문화체육관광과 김종순 문화재팀장을 중심으로 공무원 7명과 외부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나주 원도심 재생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나주잠사주식회사 활용모델을 찾기 위해 국내에서는 포천의 아트밸리, 인천의 구 일본우선주식회사를 활용한 인천아트플랫폼, 군산의 내항일대 근대건물 활용, 목포의 근대건물활용 등을 답사했다.

아울러 해외 사례로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팩토리와 오타루시의 오타루 운하 주변을 재생한 미나토마찌 지역의 사례도 함께 살펴보았다.

 

 삿포로 비어가든


삿포로, 낡은 맥주공장을 박물관과 식당으로


북해도가 1875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척된 도시이기에 당시의 많은 산업시설들이 낙후되어 새롭게 변화되는 사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 역시 삿포로맥주공장의 내부를 박물관과 2층의 맥주가게로 개조하여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건물의 외부는 전형적인 붉은 벽돌집이었다. 내부는 철제를 이용하여 2층의 구조를 만들어 맥주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하고 1층의 한쪽에는 당시 맥주를 발효시키는 탱크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쇠락한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이처럼 한쪽에는 박물관이라는 문화공간을, 또 다른 곳에는 식당을 개설하였는데 메뉴가 특이하였다.

북해도에서 많이 나는 양고기를 일정금액을 내고 100분 동안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눈에 띠었다. 이곳은 메뉴를 구성하면서 이 지역의 특산물 가운데 몇 개를 요리하여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으며 기호에 따라 외부공간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단층의 단아한 레스토랑을 새로 지어 옛 맥주공장과 잘 어울리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또 하나의 재생사례는 ‘삿보로 팩토리’다. 1989년 회사가 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도시재개발계획을 수립하여 1993년 현재의 삿보로 팩토리를 오픈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개척시대의 맥주양조공장 시설과 그 주변지역을 활용하여 상업복합시설과 개척사 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화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프론티어관, 1관, 2관, 3관은 지하2층 지상9층의 현대식 건물로 대부분 상가와 레스토랑, 은행, 우체국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2관과 3관을 연결하는 아트리움은 휴식장소와 옥내정원을 꾸며 라이브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당시의 양조공장(빨간벽돌관)은 맥주가게로 활용되고 있다.

 

 

삿포로맥주공장의 내부를 박물관과 2층의 맥주가게로 개조하여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일본 도시재생의 대부 니시야마(西山)교수


홋카이도(北海島) 대학은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명문대학이다. 교정은 아름드리 수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약속된 니시야마(西山)교수를 만났다.

항상 그렇지만 녹차음료수가 나온다. 우리는 커피를 주로 주는데 일본은 어디를 가든 커피보다는 녹차를 제공한다. 농가도 살리고 건강도 챙기는 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니시야마 교수는 교토대학에서 건축과 도시를 공부한 일본 최고의 석학이다. 이론만 아는 것이 아니라 현장도 자세히 알고 있는 지식인이다. 일본 내에서 굵직굵직한 도시재생을 실현시킨 장본인으로 이곳 대학으로 초빙되어 와있다고 한다.

예전의 전통건조물경관조성 등의 일정구역을 재생하는 프로젝트에서 진일보하여 이제는 도시 전체를 문화적 공간으로 보고 어떻게 가꾸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단다.

여러 가지 이야기 속에 나주시와 자매결연한 구라요시(倉吉)에서 200㎞ 떨어진 하기(萩)시라는 도시를 재생한 얘기에 귀가 솔깃해 진다.

하기시는 궁벽한 곳이기에 많은 역사문화유산이 남아 있어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하고 있어 나주시와 비슷한 곳으로 판단되었다. 사뭇 다른 시스템에서 추진되어지는 도시재생 계획은 나름대로 배울 점은 너무도 많다.

덧붙여 홋카이도를 개척하던 공무원들이 근무했던 옛 도청건물에서 만들어 내는 권력과 권위 지나온 역사와 문화가 뒤섞인 행정의 역할이 지금의 이 도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함이 몰려온다.

홋카이도에 와서 꼭 봐야 하지만 실망한다는 시계탑을 보니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고사성어의 뜻을 되돌아보라는 것인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시계탑을 찾아 한 장의 사진으로 추억을 저장하였다.

 

 


유리공예로 먹고 사는 오타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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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는 운하를 개선하기 위해 시작된 사업이 민간 중심으로 유리공예 오르골로 대표되는 관광상품을 파는 유명한 관광도시, 연인원 750만 명이 이 도시를 다녀간단다.

친절함이 몸에 밴 택시기사의 친절한 안내와 안전한 운전은 평안함을 넘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오타루는 수많은 물자들이 오가고 더 나아가 국제적인 물류가 오가던 곳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건축된 수많은 건축물과 도시환경은 세월의 변화 속에서 새롭게 재생되었던 것이다. 대형의 창고건물은 토산품 판매점과 식당으로, 회사 사무실은 유리공예품 판매점, 오르골 판매점 등으로 가꾸어지고 활용되고 있다.

노인과 낙후된 건물만이 즐비했던 오타루는 이러한 변신을 통해서 홋카이도에서 제일가는 관광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도시의 변화는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행정기관은 2차적인 협조만 하였다는 개발의 특징이 있다.

오타루 운하 가스 가로등의 불빛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우리 일행은 삿포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 일본여행의 아쉬움은 이곳의 대표맥주 삿포로 맥주로 대신하며 마음은 나주를 향하고 있다.  

일본의 도시재생은 전문가와 주민 그리고 행정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각자의 역할을 통해서 순차적으로 추진하는 시스템이 확보되어 있다.

적어도 10년을 넘기는 긴 호흡을 갖고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지도자의 강력한 추진력이던지, 또는 주민들의 자발적 주도로 추진하던지 중요한 것은 사업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오타루의 대형 창고건물은 토산품 판매점과 식당으로, 회사 사무실은 유리공예품 판매점, 오르골 판매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타루 운하(小樽運河) 주변 재생사업


홋카이도 오타루시는 북해도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3면이 산, 1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풍부한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항구를 중심으로 상공업, 금융, 해륙수송 등 북해도의 거점으로서 발전, 1889년 바다가 매립되고 수변에 석조창고가 즐비한 시가지가 형성되어 전국의 금융기간이 진출하여 많은 은행건축물이 건축되어 전쟁 중에도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어 현재의 오타루시 경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오타루 운하는 1923년 완성되었으며 내륙에 수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유일하게 육지와의 사이에 생긴 수로로 매립형 운하라고 불린다.

북해도의 경제가 삿포로로 옮겨지고 운하의 기능도 쇠퇴하게 되고 운하주변에는 석조 창고군, 은행 등의 역사적 건축물만 남게 되었고 1966년 심각한 교통체증해소를 위해 운하의 매립이 결정되고 공사가 진행되었으나 운하보존을 위한 시민운동이 일어나 1973년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이 설립되고 운하논쟁이 10년간 지속되었다.

이후 오타루운하(1,140m) 및 운하지구에 있는 역사적 건조물과 경관지구 보전에 의한 중심시가지 재생을 추진해 오타루 운하는 산책로와 가스등이 정비되어 연간 750만 명이 다녀가는 관광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