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

곰탕 먹고 나주도 살리고

호호^.^아줌마 2012. 1. 17. 09:48

곰탕 먹고 나주도 살리고

 

 

예년 보다 일찍 닥친 설 명절 때문인지 마음이 조급한데 풀릴 줄 모르는 날씨마저 몸과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다. 작년 이맘때 악몽과도 같았던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파동으로 얼마나 을씨년스러웠던가. 그런데 올해는 비싼 사료값과 곤두박칠 치는 소값 때문에 굶어죽는 소가 속출하고 있다니 이래저래 우울한 정초다.

 

그러던 중 이 무슨 횡재인가. 대한민국 유수의 방송에서 그것도 황금시간대에 나주 한우와 나주곰탕이 전국방송을 탔다.

 

지난 12일 저녁식사를 막 끝낸 시간,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연출 서경원, 구성 전선애)’에서 ‘곰삭은 세월의 맛’으로 소개된 나주곰탕은 나주인의 정서와 문화와 역사를 담아내는 나주의 자랑거리 그 자체였다.

 

50년 가까이 곰탕을 끓여내고 있는 이경자 씨와 어머니를 도와 대를 이어가고 있는 아들 정종필·박미숙 씨 부부의 일상도 살갑고, 밀양박씨 종부 강정숙 씨와 신세대 며느리가 나누는 요리 레시피도 정겹고, 소를 키운 지 25년째인 주판선·김숙자 씨 부부가 소로 인해 울고 웃는 모습도 눈물 나게 정겹다.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수원에서, 광양에서, 심지어 제주에서까지 전화가 오고 문자메시지가 들어오고 한바탕 북새통을 이뤘다. “TV에 나주 나온다. 나주곰탕 나온다.”

 

곰탕을 먹기 위해 일부러 나주를 찾았다는 사람에게 물었다.

“광주에도 곰탕집 많은데 굳이 나주까지 오느냐”고 하자 “다른 데서 먹는 곰탕은 그냥 곰탕이지 ‘나주곰탕’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중국에 자장면이 없고, 인도에 카레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전국에 퍼져있는 나주곰탕은 그저 곰탕일 뿐이요, 나주에 와야만 나주곰탕의 참맛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이 굳어진 듯하다.

 

시인 정철훈 씨는 나주곰탕을 먹으며 이런 시를 지어냈다.

 

‘석유내 이는 정제에서 아낙은

마늘을 다지고 쪽파가 눈이 매웠습니다

시집간 딸처럼 매웠습니다

...

모든 울음이 가마솥에서 설설 끓고

곰탕 같은 국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곰탕 국물에 소금을 타고 파를 넣으면

그게 바로 우리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까'

 

- 시집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민음사, 2002)’-

 

한 때는 춥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즐겨먹었던 나주곰탕, 이제는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고향의 맛을 느끼기 위해, 건강을 위해, 진정한 식도락을 위해 나주곰탕을 찾고 있다.

 

하지만 곰탕의 성공신화에 이대로 안주할 것인가? 요 몇 년 사이 원조를 표방하는 몇몇 곰탕집들이 잇달아 분점을 내며 사업 확장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전국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창업을 하고 싶다는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나주곰탕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브랜드 가치는 확인됐다. 하지만 오는 손님만 받아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한번 찾아온 손님이 다음에 다른 손님들을 데리고 다시 올 수 있도록 서비스와 편의시설을 확충하는데 노력이 필요하다.

 

나주시청 홈페이지나 일부 곰탕집 홈페이지에는 심심찮게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불친절, 비위생적이라는 내용의 불평이 올라오고 있다. 곰탕국물에 밥을 말아주는 방식과 김치, 깍두기가 고작인 반찬도 젊은 소비자들에게는 불만이다.

 

더구나 곰탕집만 잘 되고 그 주변에 볼 것도 없고 살 것도 없어서 곰탕만 먹고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곰탕집 손님들이 쪽으로 염색한 스카프도 사가고, 나주배도 사고, 천연염색체험도 해보고, 나주목문화권도 두루 살펴보면서 가슴 속에 나주에 대한 추억을 담아갈 수 있는 관광인프라가 하루 빨리 조성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