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릿고개 타는 가뭄 어찌 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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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릿고개 타는 가뭄을 어찌 넘을까?
난 농부의 딸
고추 따면 고추푸대 나르고
약하면 약줄 잡고
고추 담으면 푸대 잡고
역시 힘드는구나
나는 절대 농사는 짓지 않을 거야
무심코 내뱉은 말이지만
어쩌면 나도
아빠의 대를 이어야할지도 모른다
어떡하니 어떡해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방과후학습 시간에 쓴 ‘농부의 딸’이라는 시란다. 농사짓는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어 보였으면 사춘기 딸이 이런 시를 지었을까.
북한 속담에 ‘깐깐 오월, 미끄럼 유월, 어정 칠월에 건들 팔월’이라 했던가? 오월은 그 가파른 보릿고개를 넘느라 힘들고, 유월은 밀보리가 나고 모 심는데 바빠서 어느새 지나가는지 모르게 지나가고, 칠월은 김이나 매면서 어정거리는 동안에 지나가고 보니 어느새 건들바람이 부는 팔월이 되었다는 것이리라.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자식들 농사일 시킬 것이며, 어느 자식이 농사일 시킨다고 호락호락 할 것인가 마는, 얼마전 농번기방학을 한 중학교 교사는 부모님을 도와 마늘을 캐던 한 남학생이 그냥 학교 가면 안 되겠냐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것을 보고 가슴이 저려왔다고 한다.
보릿고개, 영어로는 ‘The spring hunger’라고 번역하고 있다. 묵은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가 아직 여물지 않아 농가의 식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음력 4~5월경을 이르던 말이니 지금이 딱 그 시기다.
요새는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나이 든 부모님 세대는 추수 때 걷은 농작물 가운데 소작료며, 빚, 이자, 세금 등 여러 종류의 비용을 뗀 다음, 남은 식량을 가지고 초여름 보리수확 때까지 견뎌야 했던 시절을 곱씹고 있다.
이때는 대개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끼니를 때우거나, 걸식과 빚으로 연명했으며, 유랑민이 되어 떠돌아다니기도 했다지 않은가.
보릿고개라 하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올림픽 열기가 차츰 식어가던 1988년 겨울 극장가에 ‘보릿고개’라는 영화가 떴다. 박용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대 최고의 ‘에로배우’였던 이대근과 남궁소희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영화 포스터는 어찌나 자극적이었던 지, ‘그녀의 살결이 닿는 곳마다 겉보리 서 말 얹혀지네’라는 문구가 선명했으니 당연히 청소년은 관람불가였다.
그 영화를 광주 대인동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던 대한극장에서 나주에서 통학하던 선후배, 친구들 대여섯 명과 단체관람을 했다.
집안의 호구지책 때문에 호색한인 춘발의 희롱을 참아내던 달래는 읍내 요정을 전전하다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첫날밤을 지낸 뒤 달래의 과거를 알게 된 승명은 갈등 끝에 그녀를 떠나고 만다.
그들은 진실한 사랑의 힘으로 다시 결합하게 되나, 달래는 그들의 행복을 훼방하는 춘발을 끝내는 죽이고 만다. 드디어 자유로운 사랑을 얻고 산으로 도피하던 달래는 사형을 당하고, 승명은 달래의 유품인 반지를 전해 받고 슬픔에 빠진다.
가난 때문에 원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의 언니, 누님들...
그런데 지금 어떤가.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가뭄은 계속돼 밭작물은 다 자라지도 못한 채 타들어가고 있다.
다른 작물을 심어야 하니 그거나마 수확을 해야 하지만 농촌에는 일손이 없어 새벽녘 인력시장을 돌아보지만 그나마 과수원과 시설하우스로 다 나가고 밭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하다.
가뭄과 홍수에 이롭게 하자며 영산강 살리기 사업을 벌여 거창하게 준공잔치까지 마쳤으나 한달 이상 계속되는 가뭄에는 속수무책이다.
이제는 밭작물에 대한 수리대책을 강구할 때다. 타는 더위 속에서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는 농민들을 위해 도시에서, 직장에서 ‘화이트 칼라’들이 농촌의 가족, 친지들을 찾아 농활을 할 때다.
애먼 공무원들만 이 땡볕에 마늘, 양파 수확에 동원되는 것이 이 시대 농촌을 향한 마지막 마지노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농촌일손돕기 창구가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