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지역경제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⑤
꽃과 정보기술의 만남 온라인 화초시대 ‘개막’
나주서양란영농조합법인 이부윤 회장 “꽃시장 이제 온실 벗어나야”
밀려드는 중국산 공세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소비자 기호 자극
치솟는 기름값으로 국내 꽃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기발한 아이디어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농가들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주시 남평읍 평산리와 우산리를 중심으로 서양란을 재배하고 있는 나주서양란영농조합법인 농가들이 그 주인공.
이들 농가들은 일찍이 전남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중국에 난(蘭)을 수출하는 전진기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가운데, 올 겨울에도 지난달 중국 춘절(우리의 설날)을 겨냥해 상당량의 서양란을 수출한 바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나주는 배의 고장이란 전국적인 명성에다 ‘서양란의 고장’이라는 유명세까지 타고 있는 셈.
이들 농가 가운데 최근 국내 온라인과 오프라인 시장에서 눈길을 끌고 있는 화훼농가가 있으니, 바로 9,907㎡의 하우스에 심비디움 10만본을 가꾸고 있는 이부윤(49·금당농원 대표)씨가 그 주인공.
12명의 서양란 재배농가로 구성된 나주서양란영농조합법인 대표이기도 한 이 씨는 난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중국을 겨냥해 수출을 주도해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꽃시장에서도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는 중국산 난에 대항해 독보적인 우위를 지켜나가고 있다.
서양란의 고장 나주로 발돋음
이 씨는 지난 93년부터 서양란을 재배해온 베테랑 농민이기도 하다.
“이일 저일 안 해본 일이 없었다”는 이 씨에게 천직(天職)으로 자리를 잡게 해 준일이 바로 서양란 재배였던 것.
꽃대를 꺾어 판매하던 절화 위주의 화훼시장에서 품질 좋은 양란을 재배해 분화로 팔면 소득도 다른 작물보다 훨씬 높고 안정적일 뿐 아니라 장래성도 좋다는 확신에서 무작정 600㎡의 부지에 서양란의 일종인 ‘심비디움’ 모종을 심었다고.
하지만 남을 키운다는 것이 처음부터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밤낮없이 전문서적을 뒤적이고 서양란의 선진지인 충남 서산, 태안 등지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니며 재배기술을 익혔다.
땀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심비디움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피어났다. 재배기술도 높아져 적은 면적에서 많이 키워 소득도 높일 수 있었다.
특히, 심비디움은 공기의 비타민이라고 할 수 있는 음이온을 내뿜는 공기정화식물로 공기정화는 물론 실내환경 개선능력이 우수한 식물로 손꼽혀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서양란은 생육환경이 까다롭지 않아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꽃이 화려하고 오래갈 뿐만 아니라 향도 뛰어나 꾸준히 소비가 늘고 있다.
특히, 나주지역은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서 자연재해가 드물고 일조량이 많으며 밤낮의 일교차가 커서 난꽃의 색이 곱게 나와 다른 지역 서양란보다 높은 가격을 받으면서 서남권 최대의 화훼단지가 형성되고 있다.
이 씨의 농장에서 만난 심비디움은 모양도 갖가지일 뿐만 아니라 개성도 제각각이다.
꽃이 크고 화려한 분홍의 ‘오시드 퀸’, 황백색 중간 크기의 ‘U.F.O’, 조생종으로 개화성이 좋은 분홍의 ‘할렐루야’, 진한 붉은 색의 ‘바이오 신데렐라’와 ‘아리랑 킹’, 짙은 오렌지색으로 꽃 모양이 독특한 ‘바나나 보트’, 쑥쑥 키가 잘 다라는 노랑 ‘로미오’...
“과거에는 생산이 주요했지만 이제는 유통이 대세,
나주 서양란 내년 이맘때면 온라인시장 재패 자신”
결코 ‘꼼수’가 통하지 않는 난 재배
이런 가운데 이 씨의 난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결코 ‘꼼수’가 통하지 않는 것이 난 재배라는 것.
꽃 피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조급하게 영양분을 많이 공급하고 실내온도를 높여보기도 했지만 잔꾀는 통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난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하고 멋을 더하는 일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 씨가 발견한 난 철학이다.
주 종목은 심비디움 재배지만 돌에다 풍란을 붙이는 석부작에도 취미를 갖고 있는 이 씨는 기존 플라스틱 화분에 심비디움을 키워 출하하던 전통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의 기호를 자극하는 다양한 화분을 이용,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열대고사리의 고사목인 헤고(Cyathea)를 이용한 화분은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듯해서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현무암 재질의 화분을 이용하거나 외관이 수려한 수석에 난을 부착하는 석부작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값싼 중국산 난과의 경쟁에서 점차 우위를 점해 나가고 있다.
중국시장 진출과 중국난의 역공
이 씨는 일찍이 주변 농가들과 함께 전남수출양란연구회를 결성, 서양란의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대륙을 공략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그가 키운 서양란은 중국시장으로 70~80%가량 수출되고 있다. 한 번에 1,000본 이상씩 출하해 일손도 덜고 수출가격도 국내 시장보다 웃도는 가격에 팔리다 보니 내수가격도 올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심비디움’은 꽃이 오래가고 색깔이 화려해 중국인들이 춘절(우리의 설날)을 전후한 최고의 선물로 치고 있다. 10여년 전만해도 3천만 명 정도였던 중국의 양란 소비층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해 소비층이 2억 이상이 되고 있다는 것.
더군다나 5% 안팎에 불과했던 일본의 중국시장 점유율이 20%를 넘어서면서 국내 양란 농가들은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재배 노하우의 유출을 막기 위해 국내에서 꽃대가 손가락 마디만큼 자랐을 때 중국으로 수출해 현지 농장에서 몇 달 더 키워 꽃을 피운 난을 판매하는 전략을 세웠다.
현지 재배를 하면 수출 물류비가 절반으로 줄일 수 있고 보름 이상 걸리는 운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꽃 손상을 막을 수 있는데다 점차 까다로워지는 검역도 피할 수 있는 등 이점이 많았던 것.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 값 싼 동양란이 국내로 홍수처럼 들어오면서 서양란 재배농가들의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꽃망울이 맺힌 상태에서 반입돼온 중국산 난은 3년간 공들여 재배해야만 출하가 가능한 심비디움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꽃시장에서 정보산업이 만나면 ‘대박’
다른 화훼단지에 비해 규모면에서나 품질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나주 서양란이 국내에서는 물론 나주에서조차 알아주는 이가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씨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모든 연령층이 심비디움을 알 수 있는 정보가 필요했다. 특히, 인터넷에서 신비디움 정보를 찾기란 지극히 힘든 일이다. 대중화가 안됐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 씨는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절친한 친구이자 인터넷 쇼핑몰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오인규(49)씨를 찾았다.
사실, 한 등에 두 짐을 질 수 없다고 난 재배에 밤낮이 없는 이 씨에게 인터넷을 이용해 온라인 시장을 공략해 나간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3년 전부터 온라인 시장개척에 눈을 돌렸지만 하루 종일 매달려 관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파리만 날리고 있던 터에 오 씨를 통해 최근 다음과 네이버 등에 카페와 블로그를 개설하고 우선 서양란의 매력을 알려나가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주 서양란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오인규 씨는 가장 우선적으로 꽃도매시장을 통한 대량 수매방식과 중간상인을 거치는 판매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직접 소비자와 만나는 영업방식을 강구해나가고 있다.
아울러 옥션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이미 판매순위 4위에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내년 이맘때면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으리라는 게 오 씨의 전망이다.
소비 늘리려면 소비자 끌어들여야
한 때 연간소득 1억원을 구가하는 부농 반열에까지 올랐던 이 씨에게도 시련이 있었으니, IMF당시 하우스 설치를 위해 융자받은 대출금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즈음, 느닷없이 불어닥친 돌풍으로 난을 재배하던 하우스가 크게 부서지면서 절망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그동안 심비디움을 재배하며 쌓았던 열정과 애착으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씨를 비롯한 서양란 재배농가들은 지금 또 다른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2~3년 전만해도 리터당 350원대에 불과하던 면세유가 1,300원까지 치솟으면서 완전 사면초가 상태에 빠져 버렸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단가?
이 씨는 이같은 위기에 대한 돌파구로 화훼단지 내에 홍보전시관과 전문판매점, 주말농장을 운영하면서 방문객을 늘리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 속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이벤트행사로 올 연말쯤 남평 화훼단지에서 대대적인 ‘심비디움 축제’도 열 계획이다.
특히, 주5일제 근무로 도시민들이 여가시간을 신비디움 화훼단지에서 보낼 수 있게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서양란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편, 소비자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자는 것이라고.
이를 위해서는 농가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관광자원과 지역 특산물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김양순 기자
<사진설명>
사진1. 나주가 서양란의 메카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 시장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나주서양란영농조합법인 이부윤 회장
사진2,3. 값싼 중국산 난에 맞서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미한 난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대명석곡과 다양한 모양의 석부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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