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는 순간 세상의 꽃은 시들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얼어 죽고, 자빠져 죽고, 먹잇감이 되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 것이오. ―「두려움 없는 사랑, 홍낭」
이 책은 조선시대 사랑을 노래한 유명시인 일곱 명의 한시들을 모아 저자 이상국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저자는 다른 ‘한시’ 책들과 다르게 어렵고 복잡한 이론이나 고증을 걷어내고, 현대의 용어와 언어로 재미있게 한시를 노래했던 시인들의 삶과 감정을 담아낸다. 조선 시인 일곱 명의 시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여 ‘한시’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던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뿐만 아니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나 짧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줄 것이다.
목숨의 의미가 된 천리 길 사랑, 홍낭 조선시대 어느 여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홍낭의 삶은 참으로 기구했다. 홍낭의 사랑은 요즘 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으로 만난 최경창을 가슴에 품고, 못내 그리워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북방으로 향한다. 그녀는 “세상에 목숨으로 태어나 오직 하나 내 목숨의 의미가 된 사람, 그를 위해 가는 길이니 다른 것은 모두 우습고 하찮”다며 먼 천리 길에 숨어 있는 위험에 굴하지 않는다. 또한 “내가 두려운 것은 얼어 죽고, 자빠져죽고, 먹잇감이 되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 것”이라며 자신의 가슴에 품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삶을 살다 간 애처로운 시인이다.
한없는 기다림, 현금의 삶, 매창 매창에게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유희경과 허균. 젊은 시절을 바친 유희경은 곧 돌아오겠다며 서울로 떠난 뒤 소식이 없고, 그사이 임진왜란을 겪으며 16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리고 황혼기에 만난 허균. 매창은 허균과 저승 약혼을 한다. “우리가 이승에서 함께 잠들지 않은 것은 무덤에서 영원히 함께 잠들기 위해서 아껴둔 것이 아니더이까?” 허균에게 보낸 서신에서 매창은 이렇듯 진심이 담긴 사랑을 표현한다. 가볍게, 가볍게만 변해가는 요즘 세상에서 매창의 사랑은 정조나 지조를 넘어선, 즉 죽음까지 끌어안는 사랑을 보여준다. 저자는 유희경, 허균과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접한 매창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전하고 있다.
아름답기에 아름답게 살지 못했던 여인, 황진이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조선 기생 황진이. 드라마, 영화, 소설 등으로 그녀의 삶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었다. 여기서는 기존에 황진이를 바라보는 시각을 약간 비틀어 그녀의 삶 전체를 조망한다. 과연 황진이는 행복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색(美色)이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경험을 한 황진이는 그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않는다. 아무리 잘 나가고, 잘난 권력자들이라도 미색 앞에서는 무너지는 조선 선비들을 조롱하다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황진이가 갖고 있던 미색에 대한 생각을 ‘황진이 콤플렉스’로 정의한다. 황진이 콤플렉스의 핵심은,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냥 조용히 살기에, 세상의 연을 끊고 무의자적하며 살기에 아름다움은 좀처럼 그녀는 놔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녀가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바람들을 좌절시키고 오로지 욕망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많은 대상들을 통해 다양한 해석을 가지게 하는 황진이의 삶과 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사랑과 야망의 끝없는 이중주, 김삼의당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김삼의당과 하립의 인생은 빛을 보지 못한 선비의 좌절과 어떻게든 빛을 보고자 했던 전형적인 아내의 뒷바라지를 그려내고 있다. 같은 사주를 갖고 태어난 두 사람. 그러나 그들은 성별이 달라 각자의 신분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은 입신양명을 위해 글 공부를, 한 사람은 뒷바라지를. 그들이 몰락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끝없는 노력에서 우리는 부부 간의 진정한 애정을 엿본다. “님께 술을 권합니다. 님께 술을 권하니 님은 또 마시시오. 인생의 즐거움이 몇 번이나 되겠소. 나는 님을 위해 칼춤을 추리다.” 계속 되는 낙방에 김삼의당은 서방을 위로한다. 천운이 없었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가난한 부부의 시에서 우리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부부 간의 진실 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조선의 <프리티 우먼>, 김부용 “전직 부총리인 김이양(77세) 씨는 최근 서울 한강이 보이는 남산의 초호화빌라 ‘녹천정’에서 속칭 ‘강남 룸살롱의 1%’ 출신인 미모의 여종업원 김부용(19세) 씨와 동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사가 신문 사회면 톱으로 실린다면 어떨까. 온 국민의 관심과 함께 네티즌들의 뜨거운 댓글이 매일 인터넷을 달굴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77년 전인 1832년의 일이다. 나이는 한낱 숫자에 불가하다는 것을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준 커플이 김부용과 김이양이다. 모든 관직에서 물러난 김이양은 첩으로 맞이하겠다는 김부용과의 약속을 지킨다. 그 사이 김부용은 18년 동안 독수공방을 하며 김이양이 자신을 불러줄 때까지 폐인처럼 지낸다. 2행마다 한 글자씩 늘어나 18자까지 되는 36행의 문자탑인 「부용상사곡」이라는 보탑시는 그 형태만으로도 김이양을 생각하는 김부용의 애잔함이 드러난다. 그만큼 자신의 심정을 하루하루 한 글자씩 탑을 쌓듯 시를 지었을 것이다. 비록 나이 차이는 있으나 그들의 교감은 운우지정보다는 시문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남산 녹천정에서 함께 말년을 보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언어들이 서로 뒤엉켜 살을 녹였을 것이다.
시와 사랑을 맞바꾼 조선 女士, 이옥봉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과 사랑을 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수가 목소리를 잃는 대신 사랑을 선택한다면 그 가수는 더 이상 가수라고 할 수 없을뿐더러 그 삶이 행복할까? 조선의 女士라고 불리는 이옥봉은 타고난 시 대신 사랑을 택했다. 첫눈에 반한 조원에게 이옥봉은 자신을 첩으로 맞이해달라고 하지만 조원은 이를 거부한다. 이옥봉의 아버지와 조원의 장인까지 나서고 나서야 조원은 이옥봉을 첩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이옥봉에게 다시는 시를 짓지 말라는 청천벽력 같은 조건을 제시한다. 이옥봉은 가수가 목소리를 잃는 것처럼 시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시를 짓지 않겠다던 약속은 본의 아니게 깨지고, 이옥봉은 조원의 집에서 쫓겨난다. 뚝섬 근처 움막을 짓고 살고 있던 이옥봉은 죽기 전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방 안에 놓인 저 시들로 내 몸을 산 채로 염을 해서 나룻배에 묶어 강으로 밀어주시오.” 이옥봉의 시는 이렇듯 문자만으로 이루어지 것이 아니라 평생 그리움에 가슴앓이 했던 몸 자체가 시를 이룬 것이다. 사랑이 뭐기에 이토록 죽어서까지 자신의 감정을 향하게 하는 것일까. “이불 속에서 흘린 눈물, 얼음 아래 흐르는 물 같아서 낮이고 밤이고 내내 흘러도 남들은 모르리.”
칼의 노래, 퉁소의 노래, 조선의 카사노바, 임제 시대마다 알려진 바람둥이가 있다.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을 농락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이 가진 말 못할 슬픈 사연들이 여성들을 매력적으로 끌어들인다. 조선의 기남자(奇男子) 임제는 무관이면서 일세의 풍류객이었다. 시대와 자신이 맞지 않음을 탓하며 여러 기행을 일삼던 풍류 시인. 칼을 품고, 퉁소를 불며 수없이 많은 여인들을 품었던 대장부. 어려부터 술과 기생집을 들락거렸던 임제는 스승 대곡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중용』을 800번이나 읽고, 매일 1000개의 낱말을 외웠다. 그는 곧 벼슬길에 오르지만 뭐든 직선적으로 말하는 그의 성향 때문에 많은 적을 만들고 이내 관직에서 물러난다. 임제는 수많은 여인들을 품으면서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모든 여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 임제는 길 위의 삶을 살았다. 여행은 자신을 찾아가는, 자신을 만나기 위한 행보이다. 그 길 위에 임제는 시를 썼고, 퉁소를 불었다. 자식을 앞세우고, 제사를 지내며 지은 시에는 함부로 내달린 삶에 대한 회한과 사소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혼이여 돌아서 여기로 오라 샘물로 네 열을 씻고 술과 과일로 네 목을 축이렴 가을 하늘 구만 리에 이 한이 결코 끊어지지 않으리라 ―亡女奠詞(죽을 딸을 제사 지내며 짓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