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전국에 부는 공동체바람 ‘마을만들기’ ⑧경남 통영 동피랑벽화마을
◇동피랑마을에서 내려다 본 통영항
“기림을 온 베르빡에 기리노이 볼끼 쌔빘네”
(그림을 온통 벽에 그려놓으니 볼 것이 많네)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 동피랑마을, 통영 서민들의 삶과 애환 녹아있는 달동네
전국에서 마을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 농촌에서는 특산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체험활동을 곁들여 도시민들을 끌어들이는 관광형 마을 만들기가, 도시에서는 삭막한 도시공간을 문화와 건강한 삶이 어울리는 공동체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사업이 한창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11일부터 나흘 동안 전국의 지역일간지와 지역신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지역문화콘텐츠 현장탐방-장인(匠人)과 지역문화’ 연수를 실시했다.
크고 작은 섬들이 이어지는 남해연안의 작은 도시 통영, 인구 13만이 조금 넘는 이 작은 도시에서 장인들을 활용해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현장을 전남타임스 제174호(6월 24일자)에서 소개한 바 있다.
이번호에는 도시 전체가 ‘꼭 가보고 싶은 꿈의 고장’으로 손꼽히는 남해의 작은 도시 통영, 그 중에 한국의 몽마르트로 불리는 동피랑벽화마을을 찾아가 본다. / 편집자 주
‘동쪽 벼랑’이란 뜻의 동피랑마을
경남 통영시 태평동과 동호동 경계언덕에 자리 잡은 동피랑마을은 통영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그대로 녹아 있는 달동네다. 강구안(통영항)의 언덕배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비탈진 골목마다 작은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데, 아기자기한 그림에서 제법 대작으로 그려진 벽화들이 마을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해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 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마을에 대한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통영시는 마침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석 채만을 헐고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했다.
그리고 철거 대상이었던 동네는 벽화 덕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했다.
형형색색 벽화만큼이나 눈길 끄는 통영의 사투리들
통영의 대표적인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있는 동피랑마을은 가파른 골목을 오르는 힘겨움을 형형색색으로 그려진 벽화가 달래준다.
여기에 마을로 오르는 큰길가에 걸려진 통영사투리 열전. 옆에 표준말 해석이 달리지 않으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다.
‘기림을 온 베르빡에 기리노이 볼끼 쌔빘네’
풀이를 하자면 ‘그림을 온통 벽에 그려놓으니 볼 것이 많네’라는 뜻이란다.
‘한날은 할마시들 하는 말씸이, 요새 아아들 옷이 참 대잖타. 치매는 똥구녕이 보이거로 짜리고, 우떤 아는 바지 우게다가 치매로 걸치입은 애석아도 있고, 또 진옷 우게다가 짜린 옷을 쩌입은 아아들도 있더라꼬. 그삐이라? 문팍에다가 빵꾸꺼정 낸 쓰봉도 있더라쿤께.’
(하루는 할머니들 하는 말씀이, 요즘 젊은이들 옷이 참 그렇다. 치마는 뭐가 보이도록 짧고, 어떤 이는 바지위에 치마를 걸친 여자애도 있고, 긴옷 위에다가 짧은 옷을 덧입은 젊은이들도 있더라고. 그뿐이니? 무릎에다가 구멍까지 낸 바지도 있더라니까.)
뿐만 아니라 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밤낮으로 찾아드는 방문객 때문에 불편을 겪는 항변도 볼 수 있다.
‘무십아라! 사진기 매고 오모 다가. 와 넘의집 밴소깐꺼지 디리대고 그라노? 내사 마, 여름 내도록 할딱 벗고 살다가 요새는 사진기 무섭아서 껍닥도 몬벗고 고마 덥어 죽는줄 알았능기라.’
(무서워라, 사진기 메고 오면 다예요? 왜 남의 집 변소까지 들여다보고 그래요? 나는 여름 내 옷을 벗고 살다가 사진기 무서워서 옷도 못 벗고 그냥 더위에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이처럼 동피랑마을에는 펄떡이는 언어들, 부산한 사람들, 싱싱한 비릿함이 살아 있다.
◇동피랑마을의 벽화만큼이나 재미있는 통영의 사투리들
어린왕자에서 스티브 잡스까지, 나도 주인공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작은 카페들이 많이 늘었다. 동피랑마을 입구, 최근 트렌드를 따른 ‘언니는 동피랑스타일’이라는 커피숍이 눈에 띈다.
약간의 물감과 붓 한 자루로 가난의 상징인 높은 언덕의 낮은 집들은 외계행성에 사는 어린 왕자를 불러왔고, 정의를 수호하는 세일러문을 만날 수 있게 했다.
스티브 잡스 할아버지가 동피랑마을에 사는 할머니와 사이좋게 미소를 짓고 있다. 바다 속도, 구름이 만개한 하늘도 모두 동피랑 마을 벽에 자리를 잡았다.
파이프를 입에 문 거인 선장도, 이순신 장군도 동피랑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 속에서 자세를 잡고 셔터를 누르면 나 자신이 동화 속 주인공이 된다.
동피랑 쉼터,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통영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를 뒤편으로 동피랑 점방과 동피랑 구판장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동피랑 점방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한다.
또 바다를 앞에 두고 강구안을 내려다보며 노천에 걸터앉아 엽서를 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그 옆 동피랑 구판장은 잠시 몸을 녹이고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전망 좋은 카페다.
2년 마다 새옷 갈아입는 동피랑
대부분의 벽화마을이 한번 그려놓은 그림을 재생하지 않아 몇 년 지나면 낡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기대를 어그러지는 것과는 달리 동피랑마을의 벽화는 2년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는다.
2년마다 새로운 벽화를 그리는 까닭에 한번 와도 또 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잊혀버린 골목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곳이다. 골목은 집과 집을 이어주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마음의 통로다. 하지만, 그곳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관광이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공간이다.
동피랑 언덕배기집에서 정성스럽게 화초를 가꾸고 있는 김필수(80)할머니. 열아홉 살에 시집 온 뒤로 지금까지 이 언덕을 지키고 계신단다.
요즘은 다리가 아파 마을을 내려가기 어렵지만 교회와 시장은 왔다 갔다 한다는 할머니, 결혼을 했어도 신랑이 제대로 밥벌이를 못해 올라온 마을이지만, 이곳에서 딸 하나를 잃고, 두 딸은 장성해 객지생활을 하고 있다.
한때는 가난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마을주민들에게 부끄러운 살림살이를 내비쳐도 부끄럽지 않은, 희망의 보름달동네가 되고 있다.
◇동피랑 언덕배기집에서 정성스럽게 화초를 가꾸고 있는 김필수 할머니. 열아홉 살에 시집 온 뒤로 지금까지 이 언덕을 지키고 있다.
통영 생활협동조합 1호 ‘동피랑 사람들’
지난 3월 동피랑마을 주민 80여명이 설립한 생활협동조합 ‘동피랑 사람들’이 경남도로부터 신고필증을 받았다. 경남도내 18개 시·군 중 특정지역 주민 모두가 합심해 조합을 만든 첫 조합이며, 통영시의 첫 생활협동조합인 셈이다. 운영은 주민협의회가 맡는다.
이에 따라 동피랑은 마을 이미지로 소득을 창출하는 마을기업으로 변신하게 됐다. 생활협동조합 ‘동피랑 사람들’은 마을 골목골목에 그려진 각종 벽화와 마을 모습 등을 담은 스카프, 손수건, 타월 같은 동피랑에 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또 통영의 전통 공예품인 누비제품과 나전칠기 등에도 동피랑의 이미지를 담아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나온 수익금은 주민협의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된다.
마을기업으로 지정된 동피랑은 올해 사업비 5천만 원을 지원받고 추진성과에 따라 내년에 최고 3천만 원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
동피랑사람들은 이 사업비로 상품디자인, 홈페이지 구축 등을 추진하는 등 제2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동피랑마을의 어린이들은 어느덧 몽마르트 언덕의 예술가로 자라고 있다.
◇관람객들을 위해 지붕을 개방해 전망대로 활용하고 있다 일명 '몽마르다언덕'
◇골목골목 이색적인 그림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동피랑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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