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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시인

윤희상...시월 外

by 호호^.^아줌마 2009. 1. 24.

시 월

너를 버리면
무엇을 버리지 않을 수 있을는지
나는 걸어가다가 몇번이나
주저 앉아 버리고 싶었다.
우리들 곁으로 겨울이
오기전에 갑자기 비가 내리지
아마 사람들은
거리에서 젖어 있을거야
이제 편지하지 말아다오
누가 지친 생활을 깨우기 전에는..

 

 


돌을 줍는 마음

돌밭에서 돌을 줍는다
여주 신륵사 건너편
남한강 강변에서
돌을 줍는다
마음에 들면, 줍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줍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돌이 많아
두 손 가득
돌을 움켜쥐고 서 있으면,
아직 줍지 않은 돌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드는 돌을 줍기 위해
이미 마음에 든 돌을 다시 내려놓는다
줍고, 버리고
줍고, 버리고
또다시 줍고, 버린다
어느덧, 두 손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빈 손이다
빈 손에도 잡히지 않을
어지러움이다
해는 지는데,
돌을 줍는 마음은 사라지고
나도 없고, 돌도 없다

 

 

 

화가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

바람을 그리지 않고

바람에 뒤척거리는 수선화를 그렸다

바람에는 붓도 닿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 바람은 보지 않고

수선화만 보고 갔다

화가가 나서서

탓할 일이 아니었다

 

 

점잖은 구름

 

구름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성난 구름은 찍지 마세요

괜히 오해받습니다

뭉쳐 있는 구름도 좋지 않습니다

슬라이드 필름을 현상해놓고 보면,

햇빛 아래에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어둡거든요

그리고, 렌즈 안에서

미리 트리밍하지 말아요

편집 디자이너가 재미없습니다

거센 바람에 휩쓸리는 구름도 그렇겠지요

짙은 가을 하늘에 잠시 머물러 있는 구름이 좋아요

그렇다고, 일부러 꾸며놓은 듯한

모습은 부담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점잖은 구름을 찾으세요

보는 사람들이 딴생각을 할지도 모르니까

구름이 어떤 현상을 지니고 있어도 불편합니다

그냥, 이미지로만 갑시다

편집자로서 하는 말입니다

 

 

 

소를 웃긴 꽃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농담할 수 있는 거리


나와 너의 사이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린다

 

나와 너의 사이는

멀고도, 가깝다

그럴 때, 나는 멀미하고,

너는 풍경이고,

여자이고,

나무이고, 사랑이다

 

내가 너의 밖으로 몰래 걸어나와서

너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나는 꿈꾼다 

 

나와 너의 사이가

농담할 수 있는 거리가 되는 것을

 

나와 너의 사이에서

또 바람이 불고, 덥거나,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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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상 시인
1961년 전남 나주시 영산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1989년 [세계의 문학]에 [무거운 새의 발자국]외 두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소를 웃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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