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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앙

탐방…정남교 원로목사

by 호호^.^아줌마 2009. 2. 27.

 탐방…정남교 원로목사

“예수님 닮아가는 나주교회 성도들 되시길...”

-나주아름다운신문 창간에 즈음하여-


 

 

▷기자 : 목사님의 건강하신 모습을 뵈니 기쁘고 반갑습니다. 우리 나주교회가 아름다운 신문 창간호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신문 발간에 앞서 저희 편집위원들이 원로 목사님의 고견을 듣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 먼저 나주 아름다운 신문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요즘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선종)이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그 분의 삶이 이웃 사랑과 화해의 기독교 이념을 잘 실천해 오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기독교계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기독교계의 문제요 우리 민족의 문제 중 하나는 분열과 분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가치관이 ‘사랑과 화해’임을 생각할 때, 기독교계의 반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나주교회가 선교 2세기 바라보며 내건 표어가 ‘받은 은혜 100년 베풀 사랑 100년’인데, 참으로 좋은 표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교인들에게서 ‘사랑과 화해’라는 기독교의 가치관이 상실되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사랑과 화해’의 본이 되기에 힘쓴다면 통일의 비전을 마련하는 계기를 앞당기고 머지않아 분단의 비극도 극복되리라 생각합니다.


▷기자 : 은퇴 후에도 약한 교회를 돌보시고 복음 전파에 힘쓰시는 모습이 후배 목회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목사님이 왕성한 활동에 대해 듣고 보면서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신앙생활에 대해 조언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목사님 : 담임목사로 활동할 때도 그랬지만 은퇴 후에 더 절실히 느끼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생활은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기 전 40일을 금식하며 무릎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기도 없이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영성을 회복할 수도 없고, 복음 전파도 불가능합니다. 선교 사역의 모습은 기도하는 모습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나라, 민족, 사회, 지역, 이웃, 가정이 될 때, 희망이 있고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둘째는 섬기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세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분쟁할 때,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생명을 내주기까지 섬기는 삶’(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에 대한 욕심으로 성도간의 불화가 생기고 사이가 멀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직분의 높이는 없고 섬김의 크기만을 생각하며 교회와 이웃을 섬겨갈 때, 김수환 추기경과 같이 추앙받고 존경받는 기독교인이 되지 않을까요?

 

 셋째는 사랑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13:34-3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조건 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 앞에는 적도 없고 경쟁자도 없습니다.

 아픔을 함께 나누고 눈물을 같이 흘려주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삶은 기독교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정치, 경제 등의 제반 문제가 해결되고 통일도 앞당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선교 2세기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면 나주시의 복음화도 앞당겨질 것입니다.


▷기자 : 나주 아름다운 신문이 지향해야 할 것 몇 가지를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목사님 : 복음이나 교회 소식 외에 천년고도 나주의 문화와 역사를 밑바탕에 깔아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나주인의 민족의식, 역사의식 등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지역 이기주의나 분파 등의 약점을 깨닫게 하고 서로 협력하여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발전하는 나주시를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목포에서 나주교회로 부임할 때, 지역 유지들의 교회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염려를 많이 했지만, 섬김의 자세로 먼저 대접하기에 힘쓰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 결과, 좋은 대접과 협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단 간의 자존심 내세우기와 목회자 간의 경쟁의식도 없지 않았지만, 먼저 양보심을 발휘하여 다른 목사님들을 섬기에 힘썼고, 윤영한 장로님께서 시민과 목회자들의 모임이나 행사가 있을 때, 재정적 부분을 기꺼이 감당해 주셔서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교파연합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장로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즘도 몇몇 교회에 교인들이 흩어지고 목사님이 바뀌는 등의 문제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예전에도 이런 사례가 없진 않았지만, 서로 협력하고 기도해 주고 섬기고 용서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은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 아니겠어요?

 목회자도 잘못하면 타성에 젖어 대접 받기만을 좋아 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저는 아들 목사에게 대접도 많이, 헌금도 많이, 봉사도 많이 하라고 항상 당부합니다.


▷기자 : 목사님은 목회를 안 하셨다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했을 것 같습니까?


▶목사님 : 저는 어려서부터 법관이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는데, 조부께서 선주셨고 땅도 제법 많이 가진 부자셨습니다. 저희 가족을 위해 남겨 놓으신 유산을 작은아버지께 빼앗기고 가난하게 살면서 내가 크면 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변호하고 작은아버지처럼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을 혼내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웃음)

 

 가난한 형편이라 법대나 사범대를 지원하지 못하고 5년제 중학을 마친 뒤 시험을 치러 준교사 자격을 얻어 교편을 잡으면서 법대에 진학할 꿈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죽을 병을 얻어 하나님께 병을 고쳐주시면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서원을 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쾌유하여 목사의 길에 들어섰지요.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기자 : 오늘 교인의 결혼식이 있는데, 목사님 내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잉꼬부부시잖아요? 교회 안에서도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고, 일부 교회에서는 이혼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부부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목사님 : 저는 50억 인구 중에서 부부는 가장 적절한 사람끼리 맺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우리 선조들도 “천정지배필”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성서적인 말이지요.

하늘이 맺어준 짝인데 어떻게 갈라설 생각을 합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부간에 사랑이지요. 열심히 사랑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벧전4:8)는 성구처럼 열심히 사랑하면 됩니다.

 

 저도 집사람과 가끔 다투지만, 세 시간을 넘기지 않고 먼저 사과합니다. 사과하지 않고 어떻게 교인들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주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미고사축-아시죠?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내도 예배가 끝나고 집에 가면 당신 설교가 참 좋았어요. 은혜 받았습니다. 이런 말들로 저를 격려해 줍니다.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는지 몰라요.


▷기자 : 언제 뵈어도 건강과 활기가 넘치십니다. 비결이 있으신가요?


▶목사님 : 속담에 “상놈도 나이들면 벼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 사람 만날 때, 다방에 가면 으레 커피 값은 제가 냈습니다. 친구들이 짓궂게 다방 종업원에게 “여기 중 누가 사장님 같아요?” 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저를 지목합니다. 가난할 때라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너무 너무 감사하고 있어요.

기쁨과 감사로 살면 마음이 편안하니까 안 늙나 봐요. “밥 한 끼로라도 남을 섬기자.”는 마음으로 삽니다.(웃음)

                                                      / 대담 : 임난희.박재순 집사, 사진 : 김양순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