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6. 남도투데이 -느티나무 아래서-
남도의 종가문화
Ann> 한국관광공사가 3월에 가볼만한 곳으로 전남 해남에 있는 해남 윤씨 종택 ‘녹우당’을 추천했다고 하죠? 5백년 이상 된 비자나무 숲에 고즈넉한 종가의 정취, 생각만 해도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지 않습니까?
Ann> 그러고 보면 남도에는 오랜 세월 자자일촌으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들이 참 많은데요, 오늘은 남도문화의 한 줄기를 이루고 있는 ‘남도의 종가문화’에 대해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도문화관광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주뉴스 김양순 편집국장 연결합니다.
김양순 씨?
Ann> 종가라고 하면 요즘 종가집 무슨무슨 요리... 이런 것을 얼른 떠올리게 되는데, 먼저 종가라는 의미부터 살펴보고 갈까요?
김> 종가(宗家)라고 하면 사전적 의미로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본가로서 대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서 다시 대종(大宗)과 소종(小宗)으로 나뉘죠.
조선 중기 이후 종가는 조상의 제사와 가계, 사회적 지위를 상속하고 또 친족집단을 통합하는 중심이 되어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종가의 가계는 자손이 없을 경우 양자를 들여서라도 반드시 계승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또 과거 종가의 호주는 종중(宗中) 재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권한을 위임받고 있었으니, 그 권한과 책임이 얼마나 막중했을까 짐작은 됩니다만, 사실 요즘에 와서는 종가의 법률적 의미는 없고, 단지 풍속상의 관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nn> 그런데도 오늘날 종가의 의미가 남다르게 여겨지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이번에 한국관광공사에서 3월에 가볼만한 곳으로 해남의 한 종갓집이 선정이 됐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가요?
김>관광공사가 3월의 여행 테마를 ‘집성촌 종갓집을 찾아서’라고 잡고, 충남 아산의 외암민속마을과 경북 고령의 개실마을, 경남 밀양의 밀성 손씨 집성촌인 교동, 그리고 해남의 해남 윤씨 종택 녹우당을 선정을 했는데요,
해남 윤씨는 연안 이씨, 여흥 민씨와 함께 해남 땅의 큰 성씨로 꼽히고 있죠?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위치한 녹우당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시조 작가인 고산 윤선도와 그의 증손이면서 선비화가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가 이 집안에서 난 사람이니, 녹우당은 그들의 자취가 밴 옛집입니다.
이 곳 녹우당 사람들은 세 개나 되는 사당을 돌보고, 일년에 30여 차례의 제사를 모시면서, 종가만의 음식을 대물림하며 살아오고 있는데요, 지금 녹우당은 윤선도의 14대손인 윤형식 씨가 살고 있습니다.
형식과 규모 면에서 호남의 대표적인 양반집으로 인정되어 사적 제 167호로 지정된 집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살림을 하고 있는 데다 늘 구경할 수 있도록 열어 놓은 집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볼 일이 없는 사람이 집안을 기웃거리기는 민망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올 3월에는 모처럼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니까 이번 기회에 남도의 종가를 한번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Ann> 그런데 남도의 종가하면 전해져 오는 음식의 비법이 또 절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요?
김> 몇 년전부터 광주 서구문화원에서 종가의 생활문화와 전통음식문화의 현주소를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남도 종가음식의 신비를 찾아서’라는 이름의 행사를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는 오백년 동안 화로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영광의 영월 신씨 종가 신호준 가옥에서 해마다 종가의 생활예절과 김치 담그는 문화를 체험하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Ann> 담양에 가면 쌀엿, 장이 유명한데, 이 엿도 종가에서 전해지고 있다죠?
김> 발효와 숙성을 거쳐야 하는 우리 전통음식이 많이 남아있는 창평면은 2년 전 슬로시티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마을입니다.
창평면 유천리에는 아직도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장을 담는 고려전통식품의 기순도 씨 같은 분도 계시고요, 찹쌀을 삭혀 가루를 내고 다시 쪄 공기가 골고루 배어들도록 공이로 쳐서 만드는 한과, 쌀과 엿기름, 생강을 넣고 고아 내는 쌀엿 등이 그것입니다.
모두 시간과 정성을 기본으로 하는 음식들이라고 할 수있겠는데요,
10대를 이어온 장맛으로 슬로시티평가단의 입맛을 사로잡은 창평 고씨 4종가의 종부 기순도 씨가 전통장류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죠.
이 마을에 가보면 메주덩이만도 콩 500~600가마 분량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음력 정월 그믐이나 우수를 전후해서 장을 담근다고들 하니까 장 담그는 시가가 지났겠군요.
창평의 또 다른 종가를 들여다보면, 삼천리라는 마을이 한옥과 돌담이 잘 보존되어있는 곳인데, 황토와 작은 돌들이 층층이 쌓여 키 높이를 넘기는 담장 안에 잘 지어진 한옥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창평 고씨 집성촌이던 이곳엔 아직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덕분에 마을 고택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 사이사이 낡은 한옥을 헐고 새로 지은 집들도 있다. 그러면서도 대문을 바꿨으나 담장만은 그대로 남겨두어 창평파출소 안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돌담길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한옥과 돌담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전래의 손맛도 남아있다. 바로 쌀엿이다. 돌담길 중간중간 쓰여있는 창평전통쌀엿이라는 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어느 곳에서나 엿을 살 수 있는 것. 엿값은 1kg당 1만원 선이다.
겨울동안 시간을 잘 맞추면 엿만드는 과정을 볼 수도 있을 것. 현재 삼천리에 쌀엿을 만드는 곳은 8곳으로 삼천리 이장인 고태석 씨가 잘 알고 계신답니다.
Ann> 장맛하니까 생각나는데요, 곡성에는 200년 가까이 되는 장맛을 지키는 종가도 있다더군요?
김> 곡성군 삼기면 괴소리라는 마을은 앞에는 화순 백아산과 뒤에는 동악산, 취악산 옆에는 통명산이 멋지게 어우러져 그 사이에 위치한 마을에 수원 백씨 39대 종손 백계춘 씨가 살고 있는데요, 조선시대부터 조상대대로 이어온 전통 한옥집입니다. 이 집에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약 200년 되는 장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Ann> 나주에도 유명한 종가, 종택들이 많다고 하죠?
김> 나주시 다시면 회진마을에 들어서면 ‘귀한 것이 숨겨져 있다’는 뜻의 금은당(錦隱堂)이라는 이름의 종가가 나옵니다.
이 마을은 이성계가 태조로 등극했던 1392년에 닦은 터전이라고 하니, 600여 년의 체취가 금은당을 감싸고 있는 셈인데요, 이 집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안채 외벽에는 금은당의 여러 모습과 영산강이 걸려 있습니다. 안주인인 임씨 종택의 종부 이화주 씨가 직접 그린 한국화.
이 금은당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지면서도, 사람을 주눅들게 하지 않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곳인데요, 안채에 들어서면 정면에 청고근졸(淸高謹拙)이라는 종훈(宗訓)이 눈에 들어봅니다. 뜻을 풀이해 보면, ‘마음과 뜻은 깨끗하고 높게 가질 것이며, 몸가짐과 행동은 스스로 삼가고 공손하게 하라’는 뜻인데요, 백호 임제 선생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Ann> 그런데 요즘 종부(宗婦)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김> 종부, 그러니까 종갓집 며느리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종가의 전통과 정신을 잇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러다보니까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다시피, 일년 내내 제사지내고 집안 쓸고 닦고 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종부들은 이런 일들 뿐만 아니라 상당히 폭넓은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담양 창평의 고씨 종가 기순도 종부의 경우, 전통 장맛의 맥을 이어오면서 종부의 이름으로 간장, 된장을 브랜드화 시켜 성공한 여성 경영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남 윤씨 종가 김은수 종부는 가문에서 내려오는 음식들을 지역 주부들과 함께 연구개발해서 요리책을 통해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고, 나주의 또 다른 종부 강정숙 씨는 200년 동안 나주에서 터를 이어온 밀양박씨 종가의 종부데요, 어린이집 원장이면서 현직 시의원이기도 하고, 또 얼마전에는 손꼽히는 한 종합문예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팔방미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강정숙 씨는 머지않아 꽃다운 나이 스물넷에 종가며느리로 들어와 겪은 종부인생을 한권의 시집으로 펴낼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하니까 요즘 종부들의 삶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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