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임 칼럼… 축제 뒤끝
바야흐로 꽃 피는 4월, 연일 소개되는 내 사는 곳의 축제 소식에 내심 설렜다. 동이 날 만큼이라는 숙박업체의 호황도 반가웠다. 하여 축제 기간 내내 거리를 오가며 받는 교통통제에도 단 한 마디 투정도 한 적 없었다. 떡 벌어지게 차린 잔칫집의 안주인인양 그저 흐뭇했다.
하지만 황금빛 유채꽃의 싱그러운 향훈이 코끝에서 사라지기도 전 ‘나주 홍어 축제 바가지 상혼 눈살’이란 제명의 기사가 뜻밖이다.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 동안 열렸던 홍어축제가 일부 야시장의 바가지 상혼이 극성.......’
아니나 다를까 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주시청 홈페이지에는 음식값 바가지 행태에 항의하는 글이 쇄도하였다니
부끄럽고 부끄럽다. 물론 대다수 몰지각한 외지 상인들의 횡포에서 기인한 기사겠지만 이 곳 나주가 어딘가. 천년 목사고을, 누가 뭐래도 어질고 순박한, 말 그대로 양반고을의 잔치마당 후렴에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문득 떠오른 고사성어가 ‘식지동(食指動)’이다. 누군가 왕에게 선사한 자라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두 번째 손가락, 즉 식지(食指)가 자기도 모르게 움직이곤 하는 신하가 그 자리에 있었단다. 장난기가 발동한 왕은 완성된 자라요리가 대령하자 고의로 신하를 심부름시켰다.
신하는 서운함을 못 이겨 끙끙대다 끝내 왕을 배척, 살해하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연유한 말이니 하찮은 음식에서 연유한 원한은 때때로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격언이다. 하니 행여 왕이라 할지라도 먹는 음식가지고 농간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담고 있다.
먼 거리 마다않고 우리 마을의 잔치에 들른 손님들은 무엇을 찾으러, 그리고 무엇이 그리워서 왔을까 생각해 보자. 홍어로 대표되는 남도의 맛, 그 끌림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부드럽고 구수하고, 어리석을 만큼 아름다운.......’ 고향의 푸근한 옛 인정이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가파르게 치닫게 하는 세태에 휩쓸린 참가치를 오늘 다시 자신의 마음밭에 그루갈이하기 위해서 만사 제치고 달려왔을 것이다.
자본주의 삶에서 최우선 순위로 두던 돈이란 것의 위력에서 잠시 벗어나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물어도 보고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지’ 되돌아보기도 하는 고요한 시간도 갖고 싶었을 것이다.
배신감에 다시는 찾지 않겠다는 손님의 말이 씁쓸하다. 나름대로 정성껏 차렸다하나 잔치마당에 미비했던 것이 어찌 바가지 상혼으로 얼룩진 음식 준비뿐이었겠는가.
지천에 흐드러진 봄꽃들의 자태, 눈에 들기는 어지러운 천만 떨기지만 마음에 남는 건 단지 두 세 가지고 했다. 뒷설거지 그릇에 마른 수건질하는 이 시간 잘 삭힌 홍어처럼 맛깔스런 축제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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