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임 칼럼… 구 해 줘
참 묘하다. 뚜렷한 연유 없이 빠져드는 극심한 열패감이다. 내리쏟는 상대의 가격을 속수무책 간신히 버티다 링 위에 벌러덩 누워버린 권투선수랄까. 신나게 춤추다 조종줄을 놓친 인형처럼 일순 생의 맥이 툭 끊긴 느낌이다.
이럴 때 나는 또 책 속으로 숨는다. 일찍이 다산선생도 두 자식들에게 이르셨다. 졸지에 멸문지화를 당한 가문, 그 고통의 강을 무사히 건너가기에 독서만한 것이 없다고.
74년생이니 아직은 젊은 작가의 연애소설이다. 애초 나라는 사람이 야물지 못해 항상 전전긍긍, 멀쩡한 표정으로 시침 떼지만 내부에선 쉼 없이 구호신호를 보내는 형국, 이른바 SOS 타진 중이기 일쑤 아니던가.
기욤 뮈소의 ‘구해줘’라는 소설 제목에 내 눈이 번쩍 뜨일 수 밖에다.
솔직히 무엇 하나 자유스러웠던가. 그렇다고 무엇 하나 내게 환(幻)을 허락하던가. 작은 틈 하나 허용하지 않고 돌아가는 빽빽한 삶의 궤도가 지겨웠다.
오늘은 즐겨 쓰던 빨간색 볼펜을 사양한다. 보라색 형광펜으로 쓰윽 쓱 그어가는 언더라인의 쾌감, 내 소유의 책에서만 허용되는 가책 없는 무례의 행위도 즐겁다. ‘오직 연기하는 그 순간에만 진정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객석에 단 한 사람의 관객을 앉혀놓고 하는 연극이든 그 느낌은 다르지 않았다.’는 소설 속 여주인공 줄리에트의 고백처럼 내게도 어떤 것에 대한 자질이나 사명감이 있을까. 걸핏하면 휘말리는 극심한 갈증의 정체조차 모호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목마름이 달래진다는 푸른 매실처럼 내게서 망매해갈(望梅解渴)의 위력을 발휘할 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한동안 책을 보지 못해서 괴로웠던 것인 양 나는 열심히 줄을 긋는다. 책 속에 빠지기 전 나는 갖은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는 듯한,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듯한 나를 내 스스로 대접하기 위해서였다고나 할까.
노오란 여름국화가 만발한 뜰이 보이는 위치의 안락의자에 풀 먹인 모시깔개를 깔았다. 독서 자세는 반쯤 몸을 눕혔으니 밖에서 보면 영락없이 거드름 뚝뚝 돋는 여자처럼 보일 터다.
바람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분다.
안락하게 사는 것만이 반드시 옳은 삶은 아닐 거
이 까마득한 절망감의 정체는 뭘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삶에 집착할까.
수없이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우리의 자유의지는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 삶의 게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4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행간, 이런 구절들에 줄 그어가며 읽는 데는 두 시간쯤 소비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당신이 이 책을 펼쳤을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끼기를 희망한다’던 작가다.
나이답잖게 정서 불안한 요즘의 나를 걱정할 큰시누이, 그녀에게 전화를 거느라 잠깐 지체 되었을 뿐. 책은 나를 숨겨주는 온전한 은둔처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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