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7일 월요일
휴가 첫날,
올 휴가는 아무 짓도 안 하고,
아무 데도 안 가고, 푹 자고, 푹 쉬리라...
마음 먹었지만, 주변환경을 보니
"영 아니올시다"다.
안되겠다,오늘 하루는 환경정리를 하자.
아침부터 땀 뻘뻘 흘리며 청소를 하고 있는데
호출이다.
이번엔 동네오빠가 아니라 언니다.
"김 쌤, 뭐 해? 잠깐 나랑 어디좀 가지?"
"예? 예...제가 아직 씻도 않고, 청소좀 하느라..."
"날마다 하는 청소, 낼로 미루고 어여 대충 나와.
밖에서 기다릴께.뚝!"
"예에~"
대충 얼굴에 물칠만 하고, 애들 앞세우고,
어딘지도 모른 채 한 30분 달려 도착한 곳은
송정리 광주공항 입구.
꽃카페 'HAPPY SEED"
지난 6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며 지나치던 곳인데
이런 곳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심은지 얼마 안 된 꽃들이 길가에 가득하다.
메리골드(금송화), 페츄니아 종류다.
아, 그런데
새롭게 시선을 끄는 녀석이 있다.
꽃이름이 '푸른바다'라고 한다.
누가 붙여준 이름인지
정말 어울리는 꽃이름이다.
"푸른바다,
너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을 얻었구나!"
누군가가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계단을 오르는 첫발 내닫는 지점에
한 녀석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주인장이 분명 이름을 알려줬건만
잊어버렸다.
바로 이 녀석이다.
^^ 방금 꽃집주인이 오셔서
만데빌라(동백자스민)이라고 알려주시네요!
활짝 웃는 모습!
오무리고 있는 모습,
두 모습이 너무도 귀엽다.
스무살 처녀같다.
계단 벽에 걸린 액자들.
얼핏 보기에는
김종 선생님 그림을 닮아보이는데
잘 모르겠다.
잘 어울린다는 것 밖에는...
옆에 이 기다란 녀석은 물칸나라고 한다.
음~
나름 운치있고 깔끔한 녀석이다.
성격도 단정하고 약간은 고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아래,
이 귀여운 꼬맹이들,
꽃기린이란다.
꽃과 시와 그림이 어울어지는 '카페 해피씨드'
분명 별천지가 펼쳐지리라는 기대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시를 보니 시인이 꽃집을 열었나보다.
그런데 꽃집이야, 카페야?
김규성 시인은 꽃집이라 하고, 이영란 시인은 커피향을 노래하고 있으니
분명 이건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것 없이 들어가나 보자.
와우~
바로 이 곳이로구나.
온통 꽃향과 커피향과 꽃을 닮은 여인과...
오잉?
또 한 녀석은 은산이 아냐?
그래, 너도 꽃이다^^
꽃과 차와 예술의 만남,
이곳은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 꽃카페 '해피씨드'입니다.
카페 구석구석이 꽃천지다.
마구잡이로 널어놓은 꽃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딱 어울리는 모양의 꽃이 놓여있다.
메뉴판을 보니 분명 찻집은 찻집이다.
행복나누미,
행복짱,
행복충전.
행복이 충만해온다.
주인장이 오늘 아침에 개발해 낸 요리라고 한다.
검정깨를 갈아 대추와, 잣과, 후두와, 또 몇가지 견과류를 듬뿍 넣었다.
아침을 안 먹고 온 게 이렇게 오질 수가...
들깨를 넣고, 안 넣고에 따라 메뉴가 달라진다.
난 둘 다 맛있는데...
그리고 주인장이 이틀전에 개발해 낸 특별요리,
요리명 하여 '해피씨드 새싹정식'이다.
가운데 대나무통밥을 중심으로,
만두, 내나무잎에 싼 약밥, 갖가지 새싹채소,
완두콩, 해바라기씨, 잣도 있다.
먹는 방법은 작은 그릇에
무 썬 것을 한 장 놓고
그 위에 만두를 얹은 다음, 만두 배꼽 부분에
소스에 비빈 새싹채소와 씨앗을 얹어 먹으면 된다.
김치를 곁들이지 않는데도 전혀 물리지 않고 맛이 깔끔하다.
소스에 그 비결이 담겨있는 듯.
아줌마들끼리 우아하게 대화를 나눌 때
딱 좋은 컨셉이다.
이 뒤에 나온 또 하나의 특선요리,
일명 '보물찾기수제비'는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찍지 못했다.
하지만 '먹어본 자는 복되리라!'
바로 그 말 밖에는 생각나는 말이 없다.
카페 주인 이영란 씨.
시인이면서 플로리스트라고 한다.
카페 안 꽃은 직접 모양을 내고 꾸몄다.
오랫동안 꽃집을 운영한 노 하우를 살려 이 꽃 카페를 생각해냈다.
시인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날개를 펼쳤다.
아이디어가 문화를 이끄는 세상이다.
아하~
그리고 이 분 고향도 나주라지?
세지초등학교, 세지중학교를 다니셨다고...
어쩐지 처음 뵙는 모습에서 언니 같은 '필'이
팍 느껴지드라니...^^
이어지는 tea time,
생전 처음 보는 찻주전자에 두 녀석 넋이 홀라당 빠졌다.
이 녀석들아,
난 너희만 할 때
토끼풀 뜯으러 다녔어, 이 녀석들아~
그래서 어쩌라고요, 어머니!!
향기로운 찻잎을 골라
차를 우려내고 걸려내어 정성껏 대접하는 茶道를 직접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주인장.
참, 깔끔하면서 다정한 성품을 가진 분이다.
우리가 무슨 특별손님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손님일 뿐인데 이렇듯 정성을 쏟아주시다니...
부럽다.
좋은 성품을 갖고 계시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 배가 부르니 서서히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갖가지 모양의 도예작품들이 즐비하다.
원래 도자기 체험학습장을 운영하던 주인장이
도예작품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던 곳인데
꽃 카페를 함께 운영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영란 씨의 아이디어를 흔쾌히 받아들여 탄생한 공간이다.
화장실 입구 키다리 화초가 뭘까 올려다 보는데
냉큼 카메라 포커스에 달려드는 저 개구쟁이 꽃.
꼭 생긴 게 토란 같다는 말에
주인장이 웃으며 '알로카시아'라고 일러준다.
이 멋진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는 저 여인은
내게 최초로 '여자도 이렇게 산다'하는 모습을 보여 준 김노금 씨.
동화작가, 수필가, 컬럼니스트, 그리고 유치원 원장까지...
누구 보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역사와 사회에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는
슈.퍼.우.먼
그 자체다.
꽃이 아름다운 건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온통 꽃에 마음이 빼앗길 수 있는 건 당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표현해내지 못하지만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꽃은 타라
꽃으로 함께 하는 세상,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
아니, 당신과 함께 하지 않더라도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행복하소서.
8월의 소망
오광수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반가운 8월엔
소나기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얼굴이 되고
만나면 시원한 대화에 흠뻑 젖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으랴?
푸름이 하늘까지 차고 넘치는 8월에
호젓이 붉은 나무 백일홍 밑에 누우면
바람이 와서 나를 간지럽게 하는가
아님 꽃잎으로 다가온 여인의 향기인가
붉은 입술의 키스는 얼마나 달콤하랴?
8월엔 꿈이어도 좋다.
아리온의 하프소리를 듣고 찾아온 돌고래같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를 듣고
보고픈 그 님이 백조를 타고
먼먼 밤하늘을 가로질러 찾아왔으면...
시인의 시가 아니더라도
꽃카페 꽃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합니다.
나와 너와 우리의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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