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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이야기

벌교에서는 주먹자랑 하덜 마랑께!

by 호호^.^아줌마 2009. 8. 3.

'태백산맥'의 산실 벌교에서

중년의 내 인생, 치열한 삶을 다짐하다

 

 

 

"무신 그런 말씸얼...

지는 선생님을 가차이험서부텀 요런저런 생각얼 많이 되작이게 됐구만요.

워찌 넘만 위허는 일에 저리 열성이끄나. 워쩌먼 저런 맘이 묵어지는고.

나가 원제 저레 본 일이 있는가. 나가 헛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얼 허다보먼 선생님은 관음보살 현신맹키로 높아뵈고,

지는 지 혼자만 배불리고 사는 벌거지 맹키로 천해뵈고 그렁마요.

워찌 고런 귀헌 맘이 묵어지는 것인지, 좌익을 허먼 그리 되는가요?

"

 

 

벌교읍내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나즈막하면서도 강단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누굴까?

 

벌교읍내 거리

 

지금은 舊시대의 산물이지만 순천서 인물자랑 말고,

여수서 돈자랑 말고, 벌교에서는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벌교, 얼마나 깡다구 쎈 곳인지 한번 가보는 거야.

  

 △보성 녹차밭

당당히 녹차수도를 표방하고 있는 보성,

서편제의 비조 박유전 선생,  보성소리를 집대성한 정응민 선생의 고향,

그리고 채동선 선생의 민족음악이 탄생한 고장이며. 

소설 '태백산맥'의 산무대가 아니던가?

 

 △ 율포해수욕장의 새벽풍경

 

끝없이 펼쳐진 녹색의 향연 차밭에는

녹색의 푸른 고랑이 구비구비 이어지고,

가난한 어촌 율포 어민들의 얼굴엔 깊게 팬 시름의 고랑이 선명하다.

 

그 속에서

이념의 시대, 오직 사랑만으로 고난의 길을 선택한

소화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얘기가 시작되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하여야 한다" 조정래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선생은

성에서 가까운 승주군(지금의 순천) 선암사에서 태어났다지.

어쩌면 민족시인 조태일 선생이 곡성군 태안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난 것과 괘적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문학관 전시실 입구에 세워진 태백산맥 완작 모형.

아이들은 "이렇게 큰 책이 있어?" 그 크기에 놀라고,

나는 책이 주는 그 사상적 부피와 역사적 무게에 압도된다. 

 

 

조정래 선생이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보고, 듣고, 묻고, 느끼며 다녔던 취재수첩과 메모들.

 

 

대한민국의 뼈아픈 현대사를 그려내기 위해 선생은

몇날 밤낮을 가슴을 태웠으며, 얼마나 많은 담배를 태워야 했을까?

 

 

83년 태백산맥 집필에 들어가기 직전 조정래 선생의 모습과

89년 열 권의 책을 완성하기 직전의 모습.

책을 써내려가면서

얼마나 큰 고뇌와 번민이 있었을 지 뚜렷이 비교가 된다.

  

 

구국민족연맹 등 극우단체들에 의해 끊임없이 협박을 받으며

국가보안법위반이라는 혐의로 시달림을 받았던 선생은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있을 즈음

문익환 목사의 囹圄소식을 실은 기사를 보며 마지막 불굴의 의지를 다짐했다고 한다.

 

 

 

 

결국 혐의없음 판정을 받음으로써 지루하면서도 끈질긴 사상논쟁에서 자유로워진

조정래 선생과 태백산맥.

도대체 이 한장의 종이딱지가 뭐길래...

 

 

태어나자 마자 사상논쟁에 휘말려 고난을 치렀던 태백산맥은

결국 세계인의 소설로 자리를 굳혀갔다.

 

 조정래 선생의 캐리캐춰

 

 

작가는 말한다.

나는 태백산맥을 통해서 좌익을 주장하거나 빨갱이를 찬양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우리 역사가 안고 있는 이 분단의 고통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문학관 밖 외벽에 설치된 옹석벽화 '백두대간의 염원'

 

벽화가 워낙 커서 커메라에 담을 수가 없다.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백두대간에서 수집한 오방색 자연석과

하나하나 돌을 만들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의 아픔을 종식하고

통일을 간구하는 문학과 건축과 미술의 만남이

바로 이 벽화를 통해 완성됐다.

 

조각가 일랑 이종상 선생은 전통적인 벽화를 최신기법으로

발전시켜 추상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무당 월녀의 딸로, 열 일곱살에 무당을 삶을 대물림받은 소화.

전쟁 중 정하섭의 아이를 가진 채 조계산 지구에서 지내다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아들을 낳는다.

정하섭과의 사랑을 운명이자 신령님의 뜻으로 생각한다.

정하섭과 이지숙의 심부름을 해주며 사상에 물든다.

마치, 막심 고리끼가 쓴 '어머니'에서

그 어머니가 아들을 통해 투사로 동화되어 가는 것처럼...

 

문학관 입구에 세워진 소화의 집

문학관이 들어서기 전부터 있었던 현부자집

 

소설 '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이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지게 된다.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어릴적 굿하는 엄마를 따라 이 집에 처음 들렀던 어린 소화는

어린 하섭이 던진 한마디 말이 뜨겁게 달궈진 인두가 되어 가슴에 주홍글씨를 남긴다.

 

"니같이 이쁜 애가 워째 무당딸이 됐는가 몰르겄다."

 

 

 

대문과 안채는 한옥인데 어딘가 약간 다른 느낌이 든다.

마당에 이런 정원을 꾸며놓은 걸 보면 일본양식을 가미한 집 같다.

일제 치하 제국주의에 순응해 가는 양반네 속성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듯 하다.

 

  집 밖에 조성된 연방죽

 

 

태백산맥은 지나가버린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산역사의 되새김질이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를 위해 지금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리고 오늘,

하루하루 무감각, 무신경한 낯빛으로 열정없이 살아가는

내 자신에게 던지는 담금질이다.

 

두 달이 넘게 이어지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피맺힌 생존투쟁에,

코리안 드림을 안고 대한민국 코리아에 왔다가

경의선 크레인 붕괴사고로 무참하게 세상을 떠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에,

여전히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는 한반도 대한민국의 현실에...

 

진실로, 진실로 뜨거운 가슴으로 기도한 적이 언제던가?

 

내 심장의 고동소리가 다시 두방망이쳐지길...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다시 애끓은 사랑을 지니고 힘써 살아갈 '나'를 위해

오늘 나는 다시 내 인생에 풀무질을 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