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임 칼럼… 기타, 그 낭만적인 악기
자장면을 짜장면이라 해야 입 안 가득 침이 고이듯 내겐 기타보다 키타가 더 익숙하다.
서향이던 방 크기를 굳이 과장할 필요가 없다. 어쨌든 유년의 우리 형제들이 달음박질을 할 만큼 넓었던 방의 다다미를 걷어내고 미끌미끌 광택이 흐르는 신유행의 바닥재로 깔았다.
그 햇살 가득한 이층 방에서 젊고 아름다웠던 울 엄마가 독선생을 초빙해 배우던 악기가 바로 키타였다.
그리고 훌쩍 뛴 간격으로 해후한 기타다. 실랑이와 승강이의 차이점이라나. 실랑이는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행위이고, 승강이는 양쪽 모두 옥신각신 자기주장을 펼치며 다투는 것을 이르니 처녀시절의 나야말로 가혹한 운명에게 자주 실랑이를 당하고 있었다. 그때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까닭 없이 조롱당한 분함에 우울하고 우울한 성품의 늪텃집 처녀 같았을 터다. 그런 내게 다가와 살만한 세상이 꼭 올 거라는 희망을 속삭여주던 그의 목소리를 실은 감미로운 기타 선율이다.
슬림 휘트먼, 40대 때 우연히 갖게 된 기타 하나로 선원에서 가수로 인생행로가 바뀐 사나이다. 그가 청아한 음색으로 부르던 ‘인디언 러브콜’, ‘애니로리’는 지친 나의 영혼을 따뜻이 품어 어루만져주었다.
특히 ‘로키산에 봄이 오면’을 나직하게 따라 부르노라면 눈 앞 가득 펼쳐지던 싱그러운 봄 풍경! 그래, 조금만 참고 기다리리라, 내게도 머지않아 꽃피는 봄이 오리니 싶던. 쏜 화살처럼, 무심한 강물처럼 지나가는 세월이라던가.
나는 오늘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키타란 악기를 지면에서 다시 만났다. 전자 기타를 생산하는 악기제조 회사의 기사다. 전 세계 기타 생산량의 3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큰 회사가 콜트악기란다.
하지만 기타라는 악기명(樂器名)에 끌려 읽기 시작한 기사의 훗맛이 씁쓸하다. 10년 연속하여 경영 흑자를 내다가 단 한 해 적자를 냈다는 이율 들어 노동자를 해고하고, 이에 노동조합이 문제 제기를 하자 국내공장을 아예 폐업하고 인도네시아의 해외공장만 가동 중이라던가.
부당해고 기간 동안 밀린 임금 지급, 해고 노동자들이 겪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위로금 제공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다행이다. 또한 악덕기업이라는 힐책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무 차원을 떠나 인간의 최소한 도리를 다하라는 신문의 따끔한 경고다. 그런데 회사는 대법원에 상고해 끝까지 법정소송을 계속하겠다는 오기를 부린단다.
사람은 제 주변에 있는 것의 품성을 닮기 마련이어서 고운 꽃을 가꾸고 꿋꿋한 성품의 나무를 가꾼다. 기타, 그 낭만적 악기 제조회사 사장님께서 그런 무리수를 획책하신다니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언제던가. 보다 높은 소리를 기대하고 옭죄자 툭 소리를 내며 일순 기타선이 끊어져버리던 안타까운 기억, 좀체 조율되지 않는 우리네 생의 이면이 또 다시 나를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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