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빔 밥
거부감 없이 술술 잘 읽힌다. 하루키의 수필은 맛깔스런 음식처럼 편안하다.
하지만 자신이 번역 중인 존 어빙의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한 그의 음식에 대한 소견은 꽤나 예민하다.
‘주인공들이 곧잘 길모퉁이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럼 커피를 주문한다. 그런 장면을 읽고 있노라면 몹시 럼이 든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는데, 유감스럽게도 맛있는 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가게가 일본에는 별로 없다.
메뉴에 ‘럼 커피’라고 씌여 있어도 그닥 주문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도 않고, 따라서 럼주도 꽤 오래 된 게 아닐까 하고 의심스러워진다.
그에 비하면- 이런 식으로 말하면 식은땀이 흐르는 일이지만 겨울에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 마시는 럼 커피는 굉장히 맛있다.’
바로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 또한 럼 커피가 너무도 간절해졌다. 그러고 보면 음식만큼 전염성이 강한 건, 아니 유혹적인 건 없다.
중국 역사 속 간신의 표본으로 통하는 역아는 애초 요리라는 비장의 무기로 왕을 공략했다. 오로지 맛에, 새로운 맛에 섭렵하는 왕을 위해 자신의 어린 아들을 삶아 바치는 무리수까지 동원했다. 상대의 세 치 혀를 철저히 농락해 자신의 입지를 다진 고단수다.
그런데 방한 중인 외국 손님들을 모시는 입장에서 참으로 당황할 때가 많단다. 한국을 찾은 목적 중의 하나인 한정식 순례, 그러나 그 분들이 머무는 특급 호텔의 식당에는 한식부가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식당 폐쇄 분위기가 시작돼 현재 특급 호텔 17곳 중 단 4곳에만 한식당이 남아있는 상황, 그나마 각 호텔에서도 한식당을 간판식당으로 지정해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을 하는 곳이 드물고, 한국의 대표적 관광지인 경주와 제주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란다.
반면 이웃 일본에서는 유명 호텔의 가장 좋은 곳에 일식당을 배치한단다. 그것은 외국 방문객들이 체류기간 동안 길들인 선별된 일본음식 맛을 잊지 못해 자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일식 선호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음식 전략이다.
아닌 게 아니라 구미의 젊은이들이 가장 특별한 데이트가 있는 날이면 애인을 위해 값비싼 일식집으로 예약한다 했다.
노랑머리 외국인들이 서툰 우리말로 호텔의 한식당 유치를 간절히 호소하는 며칠 전 뉴스가 서글프다. 한식 기피 요인의 일 순위는 한식의 높은 인건비 지출이란다. 연이어 한식 요리는 과정과 재료가 복잡하고 식사시간 또한 2시간 넘게 소요해 테이블 회전율이 낮다는 푸념도 이어진다.
하여 양식과 일식이 점령한 호텔식, 그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한식세계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농림수산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호텔에 이런저런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미끼를 내밀어도 여전히 콧방귀란다.
이국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식요리 예찬, 그 꿈은 요원한 것일까. 자국 문화 알리기, 아니 내 집만이 간직한 고유한 전통 알리기의 최첨병은 음식 아닌가. 모처럼 입맛 쩍쩍 다시며 찾아 온 귀한 손님상에 안주인의 솜씨가 아닌, 이웃의 음식을 얻어 와 먹이는 격이니 마음이 쓰라리다.
산해진미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 내놓는 전통 한정식은 우아한 상차림만으로도 그 호텔의 얼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오방색 닮은 갖은 고명의 비빔밥, 마이클 잭슨도 극찬했다는 비빔밥이야 썩썩 비벼 구수한 숭늉 한 사발이면 뚝딱이니 무에 그리 힘들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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