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봄 답지 않은 봄.
봄기운에 몸도 마음도 심숭생숭해지던 진정 그 봄은 아니다.
부활절인 지난 4일 점심 무렵이다.
아이들은 부활절예배를 드린 뒤 각자 친구들 집으로 놀러간다고 가버리고,
여전도회 월례회와 교육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런 기회에 다이어트나 할까...하다가 할 일이 태산인데 기운 빠지면 어쩌랴 싶어서
남편에게 밥 한그릇 사주라고 전화를 하니 마침 자기도 때를 놓쳤단다.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주 가던 매일시장 안 사계절집을 찾으니 쉬는 날, 깍두기맛이 일품인 미향곰탕도 쉬는 날.
이런 낭패가 어디 있으랴 싶어 발길을 돌려나오는데 곰탕집 앞 담장너머로 목련이 활짝이다.
이렇게 환한 빛의 목련은 올해 처음이다. 아니, 올 봄들어 이렇게 환하게 활짝 핀 꽃은 처음이다.
짚푸른 태산목 나뭇잎을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핀 목련, 카메라를 들고 다가가니 기다렸다는 듯 환한 자태를 내보인다.
언제부턴가 꽃을 봐도 '꽃인갑다' 할 뿐, 감흥이 느껴지지 않은 지 오래다.
누군가 꽃다발을 보내오면 '차라리 화분으로 주지' '돈으로 주면 더 좋고...' 툴툴거리던 나.
언젠가 발레공연을 마친 딸에게 "꽃다발은 비싸기만 하지, 금방 시들어버리니까 선물을 샀다"며
양말꾸러미를 내밀자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는 딸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던 나.
매달 한 번씩 열리는 모임의 회의에서 생일 맞은 회원들에게 장미 한 송이씩 선물하던 풍습을 회장 재량이라며 스타킹선물로 바꿔버린 내가 아닌가.
그런데 목련꽃 환한빛에 이끌려 배고픔을 잊은 채 한참이나 서성거렸다는 것은...
봄이다. 봄은 봄인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그 곳엔 여전히 목련꽃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한 편의 시를 읽고,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구름에게 친구의 소식을, 그리고 그리던 사람의 안부를 묻던,
그 어설펐던 시절의 내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좀 더 다가가 목련을 바라보니, 녹슨 철창살 너머로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폐가의 뜰이 펼쳐진다.
아뿔사~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주인집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그 썰렁한 정원에 쓰레기더미와 함께 남아
겨우내 을씨년스런 나날을 보냈을 것 아닌가.
그 화려하던 봄의 전령, 꽃의 여왕, 도심 한 가운데 아무도 필적할 수 없는 정원수로서 군림했을
한 그루 아름드리 목련나무.
절망 속에 움도 트지 못할거라 여겼겠지만 이렇게 폐가의 무너진 담장 곁에서 꽃을 피워냈다.
그 목련을 이 봄에 만났다는 건, 봄이 내게 주는 묵시요, 잠언이다.
누구에게나 봄은 오지만 아무나 봄을 느끼는 건 아니라고...
봄을 느낄 수 있는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그러고 보니 이날은 부활절이었다.
◇박철환 '목련2010)'... 광주상록미술관 춘삼월전 게시판에서
박목월 작시, 김순애 작곡/ 메조소프라노 백남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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