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담근 열무김치가 너무 짜서 물을 부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을 하던 터에
점심 먹으러 들른 식당 아주머니로부터 "양파를 큼직큼직하게 썰어넣고 사이다를 부어놓으라"는 비법을 전수받아
퇴근시간이 되자 1.8리터짜리 사이다 한 병을 사들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 호호.
혹시나 맛이 들었을까 한 가닥 집어먹어 보니 으~~~ 소태맛이다.
역시 까나리액젓은 넣는 게 아니었어ㅠ.ㅠ;;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안고 얼마전 무안의 농업지킴이 양파사랑 님으로부터 받은 양파를 듬성듬성 썰어 바닥에 깔고
열무김치를 큰통으로 옮긴 뒤 사이다를 처음에는 한 컵 정도? 좀 많이 짜니까 반병이면 좋지 않을까?
에이, 기왕이면 삼삼하게 먹지 뭐, 한 병 다 드르르르르르.....
"주여, 가나안 혼인잔치때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주여, 이 열무김치를 먹게 하시려거든 맛이 들게 해주시고
버리시려거든 그대로 고리고 짜디짜게 하시옵소서!"
한바탕 거사를 치른 뒤 시원 박태후 선생 사모님께서 손수 솎아다주신 상추를 휘휘 씻어담아
맨 된장에 맨 상추에 밥을 싸 먹고, 이번 주말 광주무등교회에서 열리는 호남어린이대회에
전남의 명예를 걸고 중창부분 대표로 대회에 참가하는 큰딸의 연습을 위해 교회에 데려다주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평소 즐겨듣던 KBS 1FM에서 에프엠 실황음악이 막 시작됐다.
오늘의 주인공은 샤를르 뒤뜨아가 이끄는 린덴바움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그리고 백건우의 피아노 협연이다.
첫 곡이 시작됐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제3번, 미처 연주가 끝나기 전에 차에서 내리기가 아쉬워 연주가 다 끝나도록 기다렸다가
내리려는데, 두번째 레퍼토리가 백건우의 연주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란다.
오잉? 백건우?
쏜살같이 달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라디오를 켰다.
그런데 이 라디오,
이런 위대한 능력을 발휘할 줄 몰랐다.
사무실을 꽉 채우고도 남을 풍부한 음감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가끔 음악방송을 듣느라 틀어놓기는 했지만
옆사무실에 실례가 될까봐 볼륨을 높이지 못했는데
오늘은 2층을 전세냈으니 어쩌랴 싶어
볼륨을 높였다. 그랬더니...
크하~~~~
왠만한 하이파이 서라운드 시스템이 갖춰진 음악감상실 못지 않은 위력을 자아낸다.
잠시 화장실을 가느라 문을 열어놓고 복도를 나갔는데
복도까지 울려퍼지는 그 웅장함이란...
지난 봄 무지크바움 조기홍 대표가
일단 들어보고 두 개 중 하나를 고르라며
독일제와 영국제를 놓고 가셨다.
들어보니 이 녀석이 몸집은 작아도 내는 소리가 당차다.
물론 독일제 그 녀석도 솔찮한 음통이었지만
하나만 가져야 한다기에 이 녀석을 골랐다.
호호의 선택은 탁월했다.
백건우의 연주는 대단했다.
리스트의 유일한 피아노 소나타, 더구나 단악장으로 구성된
그 낯선 음악에 사로잡혀 30분 동안이나 꿈쩍을 할 수 없었다.
예당음악홀에서 울려퍼지는 현장의 그 생생함을
전파신호로 변환시켜 송출하는 KBS의 방송장비가 훌륭했겠지만
그 전파신호를 음성신호으로 변환시켜 토해내는
이 이름도 모르는 작은 물체의 기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어릴적 방학 때면 바느질하는 엄마 옆에서
밥상 겸 책상을 겸하는 개다리소반을 펴놓고
숙제를 하면서 전해듣던
김자옥의 여인극장,
MBC 김포천 PD가 연출했던 전설 따라 삼천리,
그리고 간혹 야한 장면도 나오던 법창야화...
그 시절 늘 친구가 되어주었던 라디오를
오늘 다시 만났다.
Intermission을 이용해 들려주는
호로비츠의 헝가리안 랩소디 2번도 이렇게 좋을 수가...
라디오를 통해 듣는 음악의 즐거움,
오늘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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