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이야기

열무김치와 음악과 라디오

by 호호^.^아줌마 2010. 7. 5.

엊그제 담근 열무김치가 너무 짜서 물을 부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을 하던 터에

점심 먹으러 들른 식당 아주머니로부터 "양파를 큼직큼직하게 썰어넣고 사이다를 부어놓으라"는 비법을 전수받아

퇴근시간이 되자 1.8리터짜리 사이다 한 병을 사들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 호호.

 

혹시나 맛이 들었을까 한 가닥 집어먹어 보니 으~~~ 소태맛이다.

역시 까나리액젓은 넣는 게 아니었어ㅠ.ㅠ;;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안고 얼마전 무안의 농업지킴이 양파사랑 님으로부터 받은 양파를 듬성듬성 썰어 바닥에 깔고

열무김치를 큰통으로 옮긴 뒤 사이다를 처음에는 한 컵 정도? 좀 많이 짜니까 반병이면 좋지 않을까?

에이, 기왕이면 삼삼하게 먹지 뭐, 한 병 다 드르르르르르.....

 

"주여, 가나안 혼인잔치때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주여, 이 열무김치를 먹게 하시려거든 맛이 들게 해주시고

버리시려거든 그대로 고리고 짜디짜게 하시옵소서!"

 

한바탕 거사를 치른 뒤 시원 박태후 선생 사모님께서 손수 솎아다주신 상추를 휘휘 씻어담아

맨 된장에 맨 상추에 밥을 싸 먹고, 이번 주말 광주무등교회에서 열리는 호남어린이대회에

전남의 명예를 걸고 중창부분 대표로 대회에 참가하는 큰딸의 연습을 위해 교회에 데려다주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평소 즐겨듣던 KBS 1FM에서 에프엠 실황음악이 막 시작됐다.

오늘의 주인공은 샤를르  뒤뜨아가 이끄는 린덴바움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그리고 백건우의 피아노 협연이다.

 

첫 곡이 시작됐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제3번, 미처 연주가 끝나기 전에 차에서 내리기가 아쉬워 연주가 다 끝나도록 기다렸다가

내리려는데, 두번째 레퍼토리가 백건우의 연주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란다.

 

오잉? 백건우?

쏜살같이 달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라디오를 켰다.

 

그런데 이 라디오,

이런 위대한 능력을 발휘할 줄 몰랐다.

 

 

사무실을 꽉 채우고도 남을 풍부한 음감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가끔 음악방송을 듣느라 틀어놓기는 했지만

옆사무실에 실례가 될까봐 볼륨을 높이지 못했는데

오늘은 2층을 전세냈으니 어쩌랴 싶어

볼륨을 높였다. 그랬더니...

크하~~~~

왠만한 하이파이 서라운드 시스템이 갖춰진 음악감상실 못지 않은 위력을 자아낸다.

잠시 화장실을 가느라 문을 열어놓고 복도를 나갔는데

복도까지 울려퍼지는 그 웅장함이란... 

 

 

지난 봄 무지크바움 조기홍 대표가

일단 들어보고 두 개 중 하나를 고르라며

독일제와 영국제를 놓고 가셨다.

들어보니 이 녀석이 몸집은 작아도 내는 소리가 당차다.

물론 독일제 그 녀석도 솔찮한 음통이었지만

하나만 가져야 한다기에 이 녀석을 골랐다.

 

호호의 선택은 탁월했다.

 

 

백건우의 연주는 대단했다.

리스트의 유일한 피아노 소나타, 더구나 단악장으로 구성된 

그 낯선 음악에 사로잡혀 30분 동안이나 꿈쩍을 할 수 없었다.

 예당음악홀에서 울려퍼지는 현장의 그 생생함을 

전파신호로 변환시켜 송출하는 KBS의 방송장비가 훌륭했겠지만

그 전파신호를 음성신호으로 변환시켜 토해내는

이 이름도 모르는 작은 물체의 기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어릴적 방학 때면 바느질하는 엄마 옆에서

밥상 겸 책상을 겸하는 개다리소반을 펴놓고

숙제를 하면서 전해듣던 

김자옥의 여인극장,

MBC 김포천 PD가 연출했던 전설 따라 삼천리,

그리고 간혹 야한 장면도 나오던 법창야화...

 

그 시절 늘 친구가 되어주었던 라디오를

오늘 다시 만났다.

 

Intermission을 이용해 들려주는

호로비츠의 헝가리안 랩소디 2번도 이렇게 좋을 수가...

 

라디오를 통해 듣는 음악의 즐거움,

오늘 다시 찾았다.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