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그림에서 전해오는 이 진한 봄의 향기... 그림에서나마 봄을 느끼자!
농가 여인의 생활을 담은 봄날의 풍속화. 비스듬히 흐르는 언덕에서 아래쪽의 여인은 한손에 망태기를, 한손에 칼을 들었는데 캘 나물을 찾는 듯 허리를 굽힌 자세이다.
그와 달리 위쪽 여인(아마도 미운 막내시누이가 아닐지...^^)은 서서 고개를 젖히고 주변을 둘러보는 모양이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까마귀인지, 솔개인지...헤찰하는 여인의 봄바람 따라 떠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 것일까?
간일한 선묘로 그려진 두 여인의 복장을 보면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저고리에 속바지가 드러나도록 치마를 걷어올려 묶었다.
일하기에 편한 복장으로 소매를 걷어 붙이고 머리에 수건을 쓴 모습은 지금도 시골 아낙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대로다.
두 여인의 움직임에 따라 담묵으로 단면처리한 원산을 엷게 그렸고 간소한 태점과 필치로 여인들의 주변 언덕의 잡풀과 자갈을 묘사하였다.
아, 좋다!
마군후 ‘촌녀채종도(村女採種圖)’
조선 후기 화가 마군후가 경칩에 들나물 캐는 여인들을 담은 풍속화. 그림에 생동하는 봄기운이 역력하다.
그림 제발(題跋)에는 “봄날 밭에서 촌부가 나물 캐는 모습이 극히 유한(幽閑)함에 이르렀다”고 써넣었다. 이번 주말엔 싱싱한 봄나물로 봄기운을 맛봐야겠다.
그림을 그린 마군후(馬君厚)는 조선 후기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생몰년은 미상이다. 자는 백인(伯仁)이며,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림을 잘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특히 인물과 영모(翎毛)에 뛰어났으며, 1851년(철종 2)의 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촌녀채종도(村女採種圖)는 시골에서 밭가는 여인들을 그린 풍속 장면이다. 이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수하승려도 樹下僧侶圖〉와 〈묘도 猫圖〉,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의〈쌍토도〉등이 전한다.
윤용(1708~1740) 망태기를 옆에 끼고 봄 캐는 아낙네(挾籠採春圖)
18세기 중엽 종이에 水墨淡彩 27.6×21.2cm 간송미술관 所藏
일본의 미인도에 보면 여인들이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게 또 그 나라 사람들이 여성에게 느끼는 매력이라나...
이에 반해 우리의 토속미가 물씬 풍겨지는 시골 아낙네의 정겹고 힘찬 모습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시공간을 보여준다. 일본미인의 우아한 옷자락과 나른한 발걸음을 무색하게 만드는 우리 시골 아낙의 모습은 봄나물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이 풍겨진다.
물론 봄나물자체에서 그동안 찌들었던 겨울의 칙칙함을 벗어버릴 수 있는 힘도 느껴진다. 비록 간단히 그려진 작은 그림이지만 보는 이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은 비단 제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 그녀의 힘은 걷어 부친 소맷자락 허리춤에 말아 올린 치맛자락 그 아래 든든한 장딴지와 손에 들고 있는 날카로운 낫 끝에서 나오는 걸까? 역시 뒷모습의 여인에게 느껴지는 궁금증은 그칠 줄을 모른다.
텅 빈 봄 들녘에서 그녀가 바라본 것은 무엇일까? 봄이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춘궁기에 대한 염려일까? 멀리 봄소식을 알리는 제비라도 날아간 걸까? 새참 시간을 알리는 동네아낙의 손짓이라도 본 걸까? 젖 달라고 보채는 아기의 울음이라도 들은 걸까? 아니면 쭈그리고 앉아서 아파 오는 허리의 통증을 해소하기 위한 잠시 멈춤인가?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면면히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몸부림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던 우리 조상들의 오기와 인내를 보여준다.
분명 할아버지 윤두서의 사실주의 정신을 닮았지만 더 이상의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화가를 떠올리면서 꾸밈없던 그의 솔직한 표현에 대한 미련을 가져본다. 윤용 그가 이 힘찬 뒷모습의 여인을 그리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