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길
김진수
아즈랑이 봄 언덕에 즈이들끼리 둘러앉은
낯빛 뽀얀 개미자리 어린 싹들이 훗날
화등잔 먼저 밝힐 벼룩이자리 개구리자리
물오른 꽃줄기만 못하지 않듯
철없이 틔운 옥잠화 늦순의 얼든 심사가 서둘러
온 세상에 금모래바람 날리는 은행나뭇잎의
자랑보다 못하지 않지요.
이슬 젖은 새벽 산허리 삐비꽃들의 정분이
무서리 허연 바닷갈대들의 살비빔만 못하지 않듯
애처로운 생이라고 그래
혀를 차는 생보다 섧진 않습니다려.
그리운 길마다 잘못한 강아지들처럼 고개 숙인
서리 묻은 강아지풀들이 봄소식 하늘거리는
시냇가 버들강아지만 못하지 않고요 그러니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나는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당신보다 못하지는 않지요.
아,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어요.
발끝 저려오는 옛길 서성이며 미영꽃 한 아름
내던지는 이 소캐 같은 가심이
댓잎마다 제 사랑만 소복 안아 높이 이고
고개티 넘어넘어 흰 길 떠나는, 글쎄
별 두 개 떨구고 간 당신의 가짓부리 눈물만
못하지는 그리 않습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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