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지역을 일구는 사람들③
◇ 꽃과 노래로 세상에 희망을 선사하겠다는 ‘노래하는 꽃농사꾼’ 민재평 씨.
그는 해남을 찾는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해남찬가’를 들려준다.
도시의 그룹사운드 화려한 꿈 접고 귀농한 꽃농사꾼
해남 민재평 씨 “꽃과 노래로 세상에 희망 주고파”
“지금까지는 제가 주도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만, 이제부터는 집사람이 이끄는 대로 살아볼 생각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젊음의 활력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꽃과 음악이 있는 민간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해보는 게 앞으로 소망입니다”
화훼전문가로서 세계 40여개국을 종횡무진하며 대한민국 꽃농사꾼의 저력을 유감없이 펼쳐온 해남군 현산면 조산마을 가나안농원 주인 민재평(54)씨.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해 소망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대뜸 꽃농사를 접고 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훼전문가로서 그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면서 그동안 운영해 오던 농장운영에 전념할 수 없게 되자 그 짐을 고스란히 부인 서은숙(53)씨가 떠맡아 왔는데, 마침 자신이 멘토로 지원해왔던 후배농사꾼이 꽃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발벗고나서 2015년까지 농원 운영을 맡기게 됐다는 것.
그러면서 그에게는 세계 각국 각계에서 밀려드는 ‘플라워 쇼’와 ‘테마가든’을 지원하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 이번 주말이면 터키로 향하게 된다. 터키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테마가든’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앞으로 석 달 동안 머물 계획이란다. 5월쯤 귀국하게 되면 내년에 있을 순천 정원박람회 참여를 위해 동분서주하게 될 것 같다고.
한때 도시의 잘 나가는 언더그라운드 그룹사운드의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날리던 그가 어느 날 건강에 경고등이 켜지면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1993년 고향으로 귀농을 하게 됐다.
하지만 농사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던가. 무작정 오이와 호박농사를 지었지만 실패했다. 단감으로 종목을 바꿔가며 애를 썼어도 번번이 실패였고 어느 해 여름엔 태풍이 불어와 전 재산인 비닐하우스를 날려버렸다.
친구의 권유로 화훼에 눈을 뜬 것은 귀향 4년째인 96년. 따뜻한 기온과 풍부한 일조량, 땅심 좋은 해남은 과연 꽃 농사의 최적지였다.
네덜란드를 수차례 다녀오면서 종자를 사오고 선진 재배방법을 배워 카네이션뿐만 아니라, 43가지 다양한 색은 기본이고 1년 내내 수확을 할 수 있어 ‘월급 주는 꽃’으로도 불리는 ‘알스트로메리아’ 재배에 성공하게 됐다.
혼자 고군분투했던 카네이션 농사가 20여 농가로 늘어나 연간 200만 송이를 생산해 전국 1위를 차지하게 됐고, 해남 카네이션이 첫 손에 꼽히게 만든 카네이션 작목반의 대부가 되었다.
민 씨는 성공한 꽃농사꾼으로서 뿐만 아니라 해남을 노래하는 향토가수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노래는 그의 인생의 또 하나의 존재의 의미가 되고 있었던 것. 지금도 손님이 찾아오면 어렵지 않게 직접 기타를 치며 팝송 한 소절을 불러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민 씨에게 노래는 하늘이 짝 지워준 운명적인 벗과 같다 한다.
“9살 때까지 극심한 말더듬 언어장애를 앓았던지라 정규 학교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뒤늦게 서울의 사설 특수학교에 입학했고 음악과 노래는 치료의 방편이었지요. 5학년이 되면서부터 풍금과 기타를 칠 수 있었고 저절로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79년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밤무대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7인조 8인조 보컬 멤버로 기타를 쳤고 낮에는 음악다방 디스크자키 생활도 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지를 2~3개월씩 옮겨 다녔고, 86년부터 서울 명동에서 5년 동안 독주 밴드로 활동했다.
그룹 시절엔 주로 록(Rock)을, 레스토랑이나 라이브 카페 무대에선 발라드(Ballade)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했던 시절이 꿈만 같다.
하지만 지금 그가 부르는 노래는 ‘해남에 오면’ ‘옛날 옛적’ ‘동트는 아침’ ‘땅끝 해남’ 같은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들이다.
“사람들이 해남에 오면 해남 사람들이 노래를 하고, 해남의 문화를 보여주는 축제를 해야 할 텐데 수천만 원씩 들여서 송대관, 태진아만 불러다 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민 씨.
‘땅끝울림’의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민재평 선생님은 화훼농사의 전문가이자, 통기타 동아리 땅끝울림 회원이자, 선생님으로 동아리를 이끌고 계시며 저는 인간 민재평으로 더욱 좋아합니다.”
“민 선생님 존경합니다. 민 선생님 노래에 무척 감동받고, 특이한 음색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도 공직에 있을 때부터 영상을 시작하여 30여년을 취미생활로 하다가 정년퇴직(6년째)하고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데, 언제 민 선생님의 멋진 무대공연 꼭 한번 촬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민 씨는 이제 이런 모든 활동을 정리하고 사회복지사인 부인과 함께 음악과 화훼를 접목한 전문치료센터를 만들어 운영해 볼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중심이 돼서 활동해 왔던 생활반경을 대폭 줄이고, 부인의 계획을 따라 가겠다는 것이 새해 가슴에 아로새긴 각오라고.
노래하는 꽃농사꾼 민재평 씨가 꽃과 노래로 세상을 치유해가는 향기로운 그 시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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