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전국에 부는 공동체 바람 ‘마을 만들기’ 현장을 가다①
◇ 정부와 자치단체 지원으로 시설과 사업에만 치중하는 마을만들기는 백전백패의 지름길, 주민들 스스로 참여하고 만들어 가는 노력이 관건이다.<사진은 광주 시화마을 사람들>
너도나도 마을 만들기 봇물 “황금알 낳는 거위 아닌데...”
전문가들 “시설·사업에만 치중해서는 백전백패 주민의욕 북돋는 게 관건”
정부지원 의존은 백전백패의 지름길, 마을 스스로 특성 살려 지속할 수 있어야
전국에서 마을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 농촌에서는 특산물과 경관에다 체험을 곁들여 도시민들을 끌어들이는 관광형 마을 만들기가 한창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2002년부터 벌인 녹색농촌 체험마을은 2010년 말까지 전국 500여 곳에 조성됐으며, 산림청이 1996년부터 추진한 산촌 생태마을도 전국 200여 곳에 만들어졌다.
경기불황 속에 녹록치 않은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눈을 돌리는 도시인들이 늘면서 오랜 타성에 젖은 농촌을 갈아엎고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살아보려고 하는 도시인들이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과 열정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또한 마을 만들기 사업의 현주소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사무소가 3월 21일부터 23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전국의 지역일간지와 지역신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마을기업과 마을 만들기’ 연수를 실시했다.
마을 만들기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의 진단과 현장탐방을 통해 우리나라의 마을 만들기 현황과 과제를 짚어 본다. / 편집자 주
시작은 강릉 번성은 전북
연수 첫 날 강의는 우리나라 마을 만들기의 대부이자 산증인으로 손꼽히는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권상동 협동사무국장의 ‘울분’으로 시작됐다. 권상동 국장<왼쪽 사진>은 현재 강릉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강릉에 마을만들기지원센터가 생긴 것은 다른 시군보다 빠른 2008년. 관의 지원과 주도보다는 철저히 민간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그가 우연한 기회에 경실련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면서 시작된 마을 만들기는 주민들과 이웃마을 이장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시작한 것이 첫 열매를 맺었다.
2006년 행안부 살기좋은 지역, 2007년 강원도 ‘참살기좋은마을’ 공모사업에 연이어 선정됐다.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받아오니 강릉시도 적극 관심을 갖게 됐고, 민간의 목소리도 커졌다. 시민사회연대회의의 추천을 받아 자문위원회를 만들고 10여개 사업을 시작했다.
2007년 강릉시는 마을만들기 우수 지자체로 선정돼 2억원의 상금을 받게 됐다. 2억원 중 남은 5000만원으로 2008년 마을지원센터를 시범운영해보기로 했다. 권상동 센터장이 사무국장을 맡았다. 3월 센터가 문을 열었다. 첫해 권 센터장과 심윤보(46세) 부장은 1년 중 280일을 지역에서 살았다. 그만큼 철저하게 현장, 주민들과 함께 했다.
자치단체가 주도하는 마을 만들기는 단연 전북이 앞서가고 있다.
전북도는 2009년 말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마을 만들기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전북 진안군은 지원-전문가-교육-참여 등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전국 마을 만들기의 교과서로 불리고 있으며, 이웃 완주군은 마을 기업(커뮤니티 비즈니스)을 활성화해 마을을 살찌우는 경제형 마을 만들기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정부, 자치단체가 주도하는 마을 만들기는 전국 1천여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군마다 4~5곳에서 마을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마을 만들기란?
마을 만들기란 무엇인가? 살기좋은광주만들기네트워크 정의춘 사무국장<왼쪽 사진>의 정리가 꽤 명확하게 다가온다.
과거의 압축성장기에는 주택 및 도시 기반시설의 신속한 확충이 도시계획의 최우선 과제였다. 그러나 도시성장이 둔화되는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도시계획의 방향도 변화하고 있다.
시민 자치의식의 발달과 도시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며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주민참여형 마을 만들기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게 된 것.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는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탑다운(Top-down)방식에서 “보텀 업(Bottom-up)방식으로,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개발지향적에서 관리지향적이나 환경지향적으로, 양적성장 중심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기능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지속가능하면서 창조도시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다.
마을 만들기는 주민이 스스로 일상 생활환경인 삶터, 일터, 쉼터의 문제를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거쳐 주민이 함께 해결하고 개선해 가는 ‘풀뿌리 생활공동체 운동’으로, 궁극적으로는 지역사회의 재구조화와 새로운 이웃관계의 회복·구축을 통해 생활공동체의 부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아울러 마을 만들기는 전문가, 행정주도의 도시기반 만들기로부터 시민의 생활로부터 요구되는 참여형 도시 만들기의 시대적 변화(종적 패러다임으로 사고의 시대로)와 지방자치제도의 도입에 따라 도시간 경쟁과 매력 있는 도시 만들기를 통한 도시의 수준을 높이려는 일련의 공공행정을 의미한다.
도시에서도 마을 만들기 붐
국토해양부는 충북 청주, 인천 부평구, 대구 중구 등을 시범도시로 선정해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를 지원하고 있다.
주민 스스로 살고 싶은 마을을 기획하고 참여하는 토대를 마련하려고 충청·호남·영남·수도권 등 권역별로 주민 교육 프로그램인 ‘도시대학’도 열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민 스스로 도시·지역의 문제와 현안을 분석하고 도시 계획을 짤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2007년부터 전국 9곳의 도시 마을 40여곳에서 주민 400여명이 교육을 받았다.
정부의 손에 이끌리기보다 스스로 마을을 만들어가는 자치단체가 많아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는 화성 등 역사·문화자원과 전통시장 등 산업자원, 자연자원 등을 곁들여 ‘마을 르네상스’라는 마을 만들기로 눈길을 끌고 있다.
시는 2010년 12월 조례를 만들었으며, 시민단체와 주민 등은 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 지원센터 등 57곳을 스스로 만들어 골목골목에서 마을 만들기 판을 벌였다.
수원 토종 극단 성(城)은 뮤지컬 ‘마을, 마을, 마을 만들기’까지 만들어 마을 만들기 과정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서울형 마을 만들기도 관심을 끌고 있다. 박 시장은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마을을 본보기로 서울형 마을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
전국의 마을 만들기 리더, 주민, 활동가, 연구자, 공무원 등 1000명이 참여하고 있는 ‘마을 만들기 전국네트워크’는 마을 만들기 움직임의 심장 구실을 하고 있다.
이들은 다달이 한 차례씩 전국을 돌며 마을 만들기 대화 모임을 열어 마을 만들기 정보를 나누고 있다. 이 단체 권상동 사무국장은 “파악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전국 곳곳에서 마을 만들기가 이뤄지고 있다”며 “정체됐던 마을들이 들썩이면서 생기가 돌기도 하지만 성과 내기에 치우쳐 혼란을 겪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마을 만들기 그냥 만들어지지 않아
그러나 주민 갈등, 도농 교류 부진 등으로 중도에 멈추는 마을도 나오고 있다. 충북 괴산군 조령산 체험마을 등 전국 28곳의 녹색농촌 체험마을은 지난해 10월 농식품부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북 진안군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 구자인 부센터장은 “정부가 각종 마을 만들기 사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부처간 칸막이 등으로 겉도는 경우도 많다”며 “마을 만들기 숫자만 늘릴 게 아니라 마을 스스로 특성을 살려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과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마을만들기네트워크 권상동 사무처장도 “마을 만들기의 핵심은 사람인데, 정부와 자치단체는 사람보다 시설, 사업에만 관심을 둬 실패가 속출한다”고 지적하며 “목표를 설정하고, 의욕을 불러일으킬 사람들을 제대로 교육해야 마을도 제 길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을 만들기는 현재 진행형이자 농촌과 도시의 새로운 미래이기도 한 것이다. 그 현장을 다음 호에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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