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오늘이다.
제주 4·3 사건은 8·15광복 이후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에 반대하면서 시작되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당원 김달삼 등 350여 명이 무장을 하고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급습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서북청 년단, 민족청년단, 독립촉성중앙회 등 극우단체 회원들이 희 생되었고, 이에 분노한 극우 세력은 극우세력대로 살상을 자행했다.
여기에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극우단체의 횡포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도 터져나와 유혈사태는 크게 번져나갔 다.
이로 말미암아 제주 전역에 행정기능이 마비되는 등 심각한 치안불안상태가 지속되었다.
이 제주 4·3사건은 한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인적피해를 보면,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조사결과 사망자만 14,000여명(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10,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 1,764명 외)에 달한다.
사건을 일으킨 주역 중 이덕구는 6월에 경찰관 발포로 사살되고, 김달삼은 그해 6월말 9월의 해주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차 제주도를 빠져나가지만 학살은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