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55> 뻐꾹나리
뻐꾸기의 가슴깃을 모방한 꽃무늬…뻐꾹나리
학명: Tricyrtis macropoda Miq.
외떡잎식물강 백합목 백합과 뻐꾹나리속의 여러해살이풀
뻐꾹나리는 중부 이남의 산지에서 자라며 분포지역은 많으나 개체수가 적어 희귀식물에 속한다. 50cm의 아담한 키에 밀생하듯 작은 군락을 이루며, 꽃모양이 특이해서 누구나 좋아할만한 야생화이다.
솟아오른 암술과 수술이 프로펠러 같다고도 하고 꼴뚜기니 데쳐놓은 쭈꾸미니 하며 웃는데 또 물을 뿜는 연못의 분수 같기도 하다. 6장의 꽃덮이조각(花被片)에는 선형의 자색 반점들이 수평상으로 흘러 마치 뻐꾸기의 가슴무늬와 닮았다.
또 속명인 Tricyrtis는 숫자 ‘3’을 뜻하는 Tri와 볼록하다는 의미의 cyrtis의 합성어로 6장의 꽃잎 중 바깥에 있는 3장의 꽃잎 기부가 혹처럼 볼록한 데서 유래하였다.
뻐꾹나리는 백합과에 속하는 ‘나리’지만 참나리나 땅나리처럼 백합속 식물은 아니다.
동아시아와 인도에 20여 종이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1종이 분포하는 단 하나, 뻐꾹나리속 식물이다. ‘나리’를 또 백합(百合)이라고 한다. 이는 꽃이 희어서가 아니라 인경이 백편(百片) 가량 겹겹이 붙어서 생장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뻐꾹나리의 뿌리는 나리의 인경과 다르게 지하경을 수직으로 내리고 마디마디에서 잔뿌리를 내는가하면 또 복지(匐枝)를 뻗는다. 뻐꾹나리를 백합속이 아닌 뻐꾹나리속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뻐꾸기는 다른 새가 알을 낳은 둥지에 몰래 자신의 알을 낳아 그 둥지의 주인으로 하여금 보모노릇을 하게하는 교활한 수법으로 번식을 한다. 이른바‘탁란’이다.
가엾게도 자기 새끼를 모르고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 숙주새는 바로 되솔새나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같은 작은 새였다.
뱁새의 둥지에서 먼저 깬 뻐꾸기 새끼가
뱁새의 어린 알을 걷어차 집밖으로 내던지는 것을 본 뒤로
뻐꾸기가 제아무리 눈썹 위를 울며 날아도
인자는 바라봐주지 않게 되었다.
불쌍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가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때맞추어 뜰에 뻐꾹나리가 피는데 어딘지 곱지 않다
자연의 도리를 아는 건 내 안의 엄한 신이지만
그를 아랑곳하지 않는 건 내 안의 착한 짐승이다.
- 김진수 ‘풀 5’ 전문
탁란을 하는 새들의 특징은 여름철새들 중에서 서식지에 머무는 기간이 아주 짧은 경우이다. 뻐꾸기는 우리나라에 5월 초순에 찾아와서 불과 3개월을 머물다가 남쪽지방으로 날아가야 하는데, 이 기간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보육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남의 새끼를 감쪽같이 없애고 제 새끼만 살리려는 얌체족의 본능은 하늘이 밉고 땅이 야속하기만 하다.(이 기간이 지나면 오목눈이는 다시 또 알을 낳아 번식할 수 있고 개체수 유지에도 별 문제는 없다고 한다.)
어쨌든 뻐꾸기의 가슴깃무늬로부터 이름을 얻은 뻐꾹나리는 여름철새인 뻐꾸기가 돌아온 시기를 맞춰 그 가슴무늬의 반점을 한껏 부풀리며 앙증스레 꽃을 피운다. 이 대목에서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는 꽃말이 힘을 얻고 여운을 남긴다.
잡초가 무성해지는 유월 어느 날 뜰에 가득한 뻐꾹나리의 화단은 싱그러움으로 넘실거린다. 야생에서의 개채수가 많지 않듯 심어 늘리는 일이 필요하다. 일단 심어놓으면 해를 거듭하여 불어나는 강한 생명력으로 지피식재용, 녹화용, 절화용으로의 이용가치가 높기 때문.
봄에 뿌리줄기를 잘라 심으면 이듬해 풍성한 꽃을 볼 수 있다. 씨로 뿌리면 2~3년은 되어야 피고, 가을에 씨앗을 받아 바로 파종하면 새봄에 대부분 싹을 볼 수 있다. 가을에 포기나누기를 해도 된다. /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
◇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는 꽃말을 가진 뻐꾹나리는 잡초무성해지는 6월에 피어나
화단의 싱그러움을 더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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