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에세이<73>
눈보라 흩날리는 오월의 꽃…탱자나무(枳實)
학명: Poncirus trifoliata RAFIN.
쌍떡잎식물강 쥐손이풀목 운향과 탱자나무속의 상록관목
『탱자나무』의 학명은 가시보다 잎을 강조하고 있다. '트리폴리아타(trifoliata)'는 잎이 세 개라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도 탱자나무를 '트리폴리에이지 오렌지(Trifoliage Orange)'라 부른다.
우리에게 탱자나무는 오래 전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시가 많아 종종 ‘가시나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짜 가시나무는 가시가 없는 참나뭇과의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참가시나무들이다.
가시가 특히 촘촘하고 매서워 울타리나무로 쓰였던, 왈 한국인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오래 함께해온 존재이다. 방문, 부엌문, 대문에 접한 가족 같은 나무라 할 수 있다.
오월이 오면 탱자나무는 빽빽한 초록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 새에서 잎보다 먼저 꽃을 단다. 꽃이 옴쳐 있을 때는 함박눈 같고 그것이 바람에 날리는 날에는 아득히 눈보라가 된다.
벚꽃 사윈 사월의 언덕을 넘어 탱자꽃 흩날리는 오월이 오면 남도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께에 박힌 시퍼런 가시 하나를 뽑아들게 된다. 그것은 분명 필 것들이 기필코 피어 백화가 만발한 봄날의 눈부심 때문은 아닐 것이다.
분분하던 팔십년 오월 도청 앞 광장, 그 파도치는 소용돌이 속의 시간이며 존재며 역사가 깃발을 들고 만장처럼 나부끼며 가슴속 어딘가에서 갈피를 못 잡기 때문이리라.
아들아/살아서 이렇게 천둥치며/빗줄기로 오느냐/
해마다 오월이 오면/가시나무꽃 천지간에/
하얗게 흩날리며 오더니/
무덤가 풀숲 제비꽃/무리지어 사뿐히/내려앉아 오더니/
아들아/오늘은 이렇게 눈가에 그렁그렁/눈물로 오느냐/
아아 제발/산짐승 털끝에 묻어/도깨비바늘로라도/
오기만 오소만/네 눈물 언제까지/
이승의 집시랑 끝을/떠나지 못하느냐 – 졸시 <초혼>
탱자나무 울타리가 사라져간 자리로 해마다 호랑나비들이 날아왔다. 전에 살던 광주의 변두리 작은 집에는 유난히 산호랑나비며 긴꼬리제비나비 같은 호랑나빗과 손님들이 붐볐다.
그 탱자나무 자리가 오래 대물림하던 이것들의 둥지였던 것을 훗날 화순으로 이사 와서야 새삼스러워졌다.
호랑나비들은 먹이식물인 탱자나무 울타리가 블록담장으로 바뀐 것을 모르고 수도 없이 찾아와서는 새 담장의 이쪽저쪽을 넘나들며 더러 참나리며 물레나물 큰 꽃들에 쌍쌍이 앉았다 사라지곤 하였는데, 어느 날 깜짝 놀란 것은 작은 화단에 서넛 심어놓았던 같은 운향과식물인 ‘백선’풀에 그 큰 애벌레가 한 자리씩 차지한 채 마지막 하나 남은 잎을 보듬고 있었던 것. 인연이라니!
“이 작은 곳간 하나를 간신히 부여잡고 연명하고 있었구나!” 외치며 그길로 마을 반대쪽 탱자나무 울타리로 집을 옮겨주었던 기억이 애틋하다.
나비는 어떻게 제 꽃이 피는 날을 기다려 날개를 달까? 탱자나무를 배경으로 한 달콤하고 행복한 밀월은 어지러이 날리는 오월의 꽃바람 속에서 춤을 추며 하늘 높이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모두 떠나간 자리. 소슬하고 허허롭고 쓰라린 가시면류관 사이에는 푸르고 어여쁘기 그지없는 애벌레가 사각사각 잎을 갉는다.
살아서 천둥치며 빗줄기로 오든지 하다못해 저 돋친 가시의 빼곡한 틈을 꿈틀거리는 벌레의 몸이라도 입어 돌아올 수만 있다면!
세월호가 사라진 진도의 팽목항에는 오월의 엄마가 사월의 엄마에게 보낸 눈물의 플래카드가 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나무의 겨울눈은 희망의 상징이다. 겨드랑이에 돋친 탱자나무의 겨울눈은 결코 아물지 않을 상처의 끝에서 피어나 존재며 상생이며 통일이며 평화를 암시해준다.
죽음의 허물을 찢고 부활하는 나비의 날개는 탱자가시나무에 나붓거리는 흰 꽃잎을 닮았다.
유월이라 푸른 아침, 가시나무 사이로 새로운 세대를 잇는 애벌레 하나 생명의 사닥다리를 열심히 기어오르고 있다. /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
탱자가시와 탱자꽃
탱자나무는 오래 전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시가 많아 종종 ‘가시나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짜 가시나무는 가시가 없는 참나뭇과의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참가시나무들이다. 가시가 특히 촘촘하고 매서워 울타리나무로 쓰였던, 왈 한국인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오래 함께해온 존재이다. 방문, 부엌문, 대문에 접한 가족 같은 나무라 할 수 있다. 꽃이 옴쳐 있을 때는 함박눈 같고 그것이 바람에 날리는 날에는 아득히 눈보라가 된다.
나비는
어떻게 제 꽃이 피는 날을 기다려
날개를 달까?
탱자나무를 배경으로 한
달콤하고 행복한 밀월은
어지러이 날리는
오월의 꽃바람 속에서 춤을 추며
하늘 높이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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