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의 영웅과 거북선을 만드신 나대용 장군
6월6일 현충일, 좀체 켜지 않는 TV를 무심코 켜는 순간 이명박 대통령의 추모사는 비감하고 의미가 깊었다.
쇠고기 정국의 촛불 속에 정부를 향한 격해진 감정으로, 울컥하여 채널을 돌리려는 순간, 조국강산을 지키다 꽃처럼 산화한 6․25전몰 영웅들을 기리는 메시지와 서해교전을 연평해전으로 바꿔 부르게 하는 대목에 이르러 가슴에 뭉클한 것이 있었다.
1999년 6월 15일 오전 10시. 그날 나는 <거북선을 만드신 나대용 장군>의 원고뭉치를 가슴에 안고 당시 이수용 해군 참모총장을 면담하기 위해충남 계룡대 해군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나대용 장군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당시 3년 전, 그러니까 1997년의 일본 연수 때문이었다. 나주시 교직자들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일본 연수에서 일본 박물관에 걸린 해전도를 설명하는 관계자의 설명 중 일본이 임진왜란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용맹과 지략 때문이었지만, 또 하나는 거북선을 만든 나대용 때문 이었다고 했다.
일행 모두는 일본인도 알고 있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큰 부끄러움을 느꼈고, 더욱이 그가 나주인 이라는 사실에 큰 부끄러움을 느꼈고 특히, 나대용 그가 일본에서 돌아온 즉시 도서관이며 문화원을 오가며 해묵은 자료를 찾았고 거북선 제작자요, 이순신을 도운 장수의 이름으로 역사 속에 단 몇 줄로 외로이 계시는 그 분의 혼을 찾아 나섰다.
역사가 기록하는 자의 몫이라고 한다면, 동화작가로서 자라나는 세대에게만은 꼭 이 사실을 제대로 자리매김하여 알려주고 싶었다. 임진왜란 7년 동안 불과 83척의 배로 500여 척의 대군을 물리친 싸움은 세계 해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이었고 그것은 거북선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산휴게소를 지나 무심코 라디오를 틀었더니 아나운서는 거의 숨이 넘어갈 듯 다급한 목소리로 남북교전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연평 앞바다 에서 총성과 포성이 오가며 고속정이 선체를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북한 경비정을 밀어내는 공격을 감행한 과정에서 일어난 사태였다. 경비정이 4척에, 꽃게잡이 어선 20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남쪽 2km해역까지 내려왔으니 엄연한 도발 행위였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고, 참모총장의 부관인 OOO중령이 "전황이 이러하니 면담이 취소될 수 도 있겠다."는 저간의 사정을 알렸다. 부관의 걱정을 들으면서도 일단 어렵게 성사된 면담인 만큼 내 편에서는 그대로 진행하기를 주문했고 몇 번의 연락이 오고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거북선을 만드신 나대용 장군>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기까지는 이런 일이 아니고도 3년여 동안 너무 많은 우여곡절로 나를 힘들게 했고 그래서 대개의 작가들이 이런 종류의 글은 아예 쓰려하지 않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배작가들 마저도 성웅 이순신의 크신 공적을 훼손하는 망령된 일로 치부하며 차라리 그만두라는 권면을 했고 몇몇 사람에게 손가락질과 협박을 받기까지의 3년여 세월동안 이를 악문 다짐이 있었다.
반드시 국내 최고의 해군 책임자와 충무공 연구가에게 나대용 장군의 업적에 대한 감수를 받고야 말겠다는 각오였다. 정확한 시간에 해군 참모총장과의 면담은 이뤄졌고 자칫 묻혀버릴 수 있었을 해군사에 한 획을 그어준 작가에 대한 감사와 치하 속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마침 당일 오전의 연평해전이 승전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충무공에 관한 한 독보적 존재라는 진해 해군 충무공 수련원 최두환 연구실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책의 감수를 지시했고, 거북선을 만드신 나대용 장군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만시지탄이지만 제 2연평해전의 의미를 되살리고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운 6인 용사가 6년 만에 해전의 영웅으로 기억 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세계의 역사가 말해 주듯이 바다를 제패하는 자가 세계를 재패한다고 했다.
500여 년 전, 이순신을 도와 거북선을 발명하여 이 나라를 구한 나대용 장군이 한 사람의 발명가로 또, 이 나라 해전사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처럼 서해교전이 연평해전으로 불리어 지게 된 것은 단어상의 의미만이 아닌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적의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함교에서 태산같이 버티며, 경비정이 화염에 싸인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고 응사하다 장렬히 산화한 영웅들이여. 대한민국 조국을 위해 꽃다운 목숨을 바친 그대들을 영원히 기억 할 것이니 이제 편히 잠드시라.
서해교전을 연평해전으로 바꿔 부르게 한 일은 아마 새 정부 들어 가장 잘한 일이 아닌가 싶다. 7월부터는 얽히고설킨 잘못된 모든 일들이 이렇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잘 풀려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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