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배 풍작에 가슴치는 농심(農心)
최상품 1상자(15kg) 2만원 못 미쳐
저장능력 3만톤, 2~3만톤 폐기처분 위기
최저가격 보장․남은 배 전량정부수매‘촉구’
박스․포장비용 5~6천원,
중매수수료 천원, 공판장 수수료 5.8%
이리저리 떼이고 나면 생산원가도 못 건져
나주지역 배 과수농가들이 예년에 없는 풍작에도 불구하고 팔리지 않는 배 때문에 가슴을 치고 있다.
이번 추석에 나주지역에서 출하된 배는 올해 수확량의 32%에 이르는 2만6천여 톤. 예년의 경우 전체 수확량의 60% 정도가 추석을 전후해 소비됐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지만, 그나마도 소비가 안돼 현재 8~9천 톤에 이르는 배가 농가에 고스란히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번 추석에는 예년에 없이 배값이 폭락해 예년의 경우 평균 2만6천원대에 이르던 공판가격이 1만원대로 떨어졌는가 하면, 지난 10일에는 특품 15kg들이 한 상자가 9천원대에 팔리고, 2천원에 낙찰된 경우도 상당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나주배농협은 이번 배값폭락의 원인에 대해, 경기불황으로 지난해보다 소비가 30% 가량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일부 언론에서 추석을 앞두고 나주배가 조기출하하기 위해 성장촉진제를 사용한 사실을 보도한 것과 부정확한 시세를 보도한 것이 가장 큰 빌미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추석대목을 노리고 나주배원협공판장을 통해 15kg 200상자를 출하했던 농민 박 아무(67․동강면 신원리)씨는 통장에 입금된 배값이 90만원에 지나지 않는 것에 분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년째 배 과수원을 임대해 농사를 지어온 박 씨는 농자재 대금 등으로 1천2백만원의 빚을 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번 추석에 배를 팔아 갚으려 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이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박 씨의 배는 4천원대에 낙찰돼 광주에서 2만원에 판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역의 배과수 농가들은 이같은 불상사가 박 씨의 일만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나주공판장을 통해 3백여 상자를 냈다는 황 아무(59․공산면 동천리)씨는 “박 씨의 경우를 볼 때, 농가로서는 적어도 3백만원 정도는 기대를 했을 것인데 90만원 받았다면 어느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을 먹고도 남을 것”이라면서 자신도 특품 한 상자를 8~7천원에 낸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스가 개당 1,650원, 박스 안에 충전재가 2천원, 포장 인건비 등을 포함해 줄잡아 5~6천원이 포장비로 나가는 데다, 중매인 수수료가 상자당 천원, 배원협에서 가져가는 수수료가 경락가격의 5.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다 보니 정작 농민들은 헐값에 배를 팔고도 이런저런 부대비용과 수수료 등을 제하고 나면 생산원가는 고사하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농민 김 아무(43․금천면 석전리)씨는 “원협에서 포장재를 판매해서 이문을 남겼으며 수수료에서는 포장비를 뺀 순수 배값으로만 수수료를 떼야지, 배 값보다 더 비싼 포장비까지 포함해서 수수료를 받는 것은 농민에게 이중으로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못마땅해 하고 있다.
농민들의 이같은 원성에 대해 나주배원협 관계자는 “냉장고도 포장비가 포함된 가격으로 팔리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수수료를 7~8%까지 받고 있으나 나주에서는 농민들의 사정을 감안, 낮춰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농민들은 당장 남은 배와 앞으로 수확하게 될 배를 저장하는 일이 큰 일이 되고 있다.
현재 나주지역에 배를 저장할 수 있는 저온저장고는 모두 1백22개소에 25,000㎡으로 저장할 수 있는 양은 전체 생산량의 37%인 3만톤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수확량은 8만4천톤에 육박하고 있어, 이번 추석에 수확했다가 소비되지 않은 7~8천톤과 앞으로 수확하게 될 5만5천톤의 배를 저장하는 일이 큰 관건이 되고 있다. 현재 수확한 배는 긴급하게 소비되지 않으면 폐기처분해야 될 상황까지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나주시는 궁여지책으로 대도시 대형할인점 등과 제휴해 배 무료시식코너를 운영하거나 전라남도생물지원센터 등과 연계해 배즙을 생산 판매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나주시의회(의장 강인규)는 지난 18일 임시회를 열어 경제건설위원회 김철수 의원 등 소속의원 9명의 발의로 명품 나주배 안정적인 판로대책 마련을 위한 대정부 건의안을 채택하고 이를 국회와 국무총리실, 농림수산식품부 등 중앙부처와 각 정당 대표들에게 전달했다.
의원들은 이번 건의안에서 배 가격 폭락과 소비 감소로 인한 배 재배 농가의 생존권 보장차원에서 최저가격 보장 대책을 마련해줄 것과 FTA에 대응하는 장기적인 농업정책 수립, 배 재배농가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항구적인 대책 강구, 올해 과잉 생산된 나주배 전량을 수매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이상계 조합장은 지난 23일 배 주산지인 천안, 안성의 원예조합장들과 함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만나 정부차원의 수매를 건의하는 한편, 25일에는 전국배협의회에서 폭락한 배값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편, 일부 농민들은 최악의 경매상황을 보였던 지난 10일, 특정 중매인 한 두 사람이 공판장에 나온 배를 모두 사들였다면서 담합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중매인연합회 관계자는 “담합은 있을 수 없으며, 속칭 속박이로 일컬어지는 불량배와 미숙과가 많이 나와 가격이 떨어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양순 기자
◇ 명절 최고의 선물로 손꼽혔던 나주배가 지난 추석 가격폭락과 소비부진으로 농민들의 애를 태우게 하고 있는 가운데 추석 전에 출하된 배가 지난 22일 오후까지 판매처를 찾지 못해 공판장에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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