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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시인

최용호...아름다운 것 外

by 호호^.^아줌마 2009. 1. 24.

                 

                 

                 아름다운 것

                                              최용호

             
그 눈물은 어디서 흘러내리는지
태양이 지고 저녁별이 뜨기까지
비틀거리도록
연유를 묻고 또 물어도
가즈러운 소리라고만
답 할뿐
해름참 동네 사거리의 허깨비 그림자
그 허우적거림이라고
말문을 닫지만


속삭임의 숨결을 이어가는 것도
저만치 새 가슴의 팔딱거림도
어슴푸레 저녁나무도
저편 하늘가로 떠나고 있을 뿐


바위 샘 무넘기
시리도록 흐름이 푸르러서
슬픔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 서툰 말이 다시금 시려오는 것은.

                        그 때, 겨울 그리고 봄

숭인동의 겨울은 불기 가신 햇살로
수채통은 유방처럼 불거져 나와
무겁게 침묵했다
어둔 골방의 듬성한 李朝的 문살
그 창호지 빛은 상복처럼 적적했다


봄빛은 창신동 산등성으로만 올라오고
동대문 마주하는 산동네는
판쪽처럼 목말라서
물지게는 힘겹게 오르내리지만
화사한 싸래기 바람에  연분홍치마는
고개 마루에 걸린 채 휘날렸다


영천 동대문 오가는 전차
목쉰 경적은 여린 향수를 울먹이게 하고
좁은 어깨와 수줍은 주먹 쥐고
선창에서 온 편지 안주머니에 간직하고
종로5가 4가를 광복의 날 검정교복의 그들처럼 걸었다

                        염리동 달밤

산동네 언덕빼기에 달빛은 백열등을 흐려놓고
가냘픈 원피스의 그 처녀는 이슬 젖도록
달밤을 구성지게 불러댔다 곱고 높은 목소리의
길고 깊은 가사는 아는 이 없고
산동네는 창을 열고 아늑한 고달픔을 보듬고
밤새 달밤에 젖었다
어느 날 밤부턴가 달빛은 달무리 속에 갇히고
달밤은 들려오지 않았다
무슨 사연인지 그녀는 그 골목에도
梨大입구에도 그림자 거두고
훤한 달빛이 이슬처럼 내리면
창은 가버린 달밤을
새벽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달밤 : 나운영 곡의 가곡

                        고난의 새벽에

동백꽃이 수북히 예배당 비스듬한 언덕에
핏빛 아픔들이 떨궈져 있다
저만치 오랜 가지의 진달래는 큰 일을 낼 듯
선지피를 쏟아내려고 몇 날을 두고 몽구리고 있다
고난의 내력을 눈치 챈 듯
새벽달은 십자가 종탑에 기대어서
노란 수선화가 얄브스름한 얼굴들을 내 밀면
바람의 순수가 처절하게 비벼댐을 내려다보고 있다


고난은 어디서 아름답게 피어나려고
긴긴 밤을 바위 속에 머무는가


어둠의 부스러기를 사르고 아침 햇살은
달려오는 길거리로 찬란하게 쏟아질 것을

                        멈춤

대형 백화점 옆 공터
긴 의자에 앉아서
한 폭 인파 흐른다
흑백 사진 한 장 찍듯
결국
그 모습대로 멈췄더니


자유 그대로
변덕부리고 재미나는
한 세상이
거침없이 흘러가야 한다고
멈춤 속 무수한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뛰쳐나간다


가슴속에 담아둔 사람
하나도 남김없이
떠나가 버린 가상다리 가로수


긴 의자에는
철부지 연인이
지친 천사의 얼굴로
무릎 베고 서로 엉켜
곤히 잠들어
그들 스스로 멈춤인 듯.

 


갈 곳이 없다


빗 길을 달려 들른 들꽃 찻집에
주인은 구석진 의자에 客처럼 앉아 있고
갈곳 잃은 시선은
검은 피아노의 침묵처럼
창 밖 매발톱꽃에 머물고 있었지


강남 호남선 터미널에서
고속버스 표 한 장 사들고서
건너 커피 자판기에는 <판매 중 97“C>라고
빨간 자막이 연거푸 서둘러 지나만 가고
연두 빛 짙어 가는 가로수의 긴 숲
그 녹색의 파고는 널리 퍼지고만 있었었지


빗속에 혼미한
어느 꽃잎 하나
외로움 없이 떠내려가고
찻집 문을 열고 나와
선율만큼이나 빗줄기 쏟아지고


먼데 마을
예배당의 십자가는
하늘 너머로 흐르고 있었지

 


뜨거운 명상


모래 위에 흔적 휘날리며
미지의 종점을 위해
뜨거운 사막 길을 걷고 싶다


불타는 태양 속
메말라져
깨지고 부서지는 쌓인 아픔들

 

오아시스가 보이지 않는
수맥 흐르는 소리 듣는다면
저 하늘가로
신기루가 있어 준다면
사막의 꽃은 더 화려하다


주먹처럼 반짝이는 별밤이면
온기 가신 모래 위에
밤새 잠 못 이루는
바람의 손이 무언가 쓴다


살아 흐르는 모래 바다
원색의 것들이 태양 아래
퍼어런 명상을 잉태하는
부서지는 사막 길을 걷고 싶다

 

 

 

최용호 시인
1939년 전남 나주 출생
'한국기독공보 신춘문예' 등단
조선문인회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영산포중앙교회 장로
                                                               시집 '디베랴 바닷가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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