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껍질을 보며
떨어져 나오는 순간
너를 감싸 안았던
둥그렇게 부풀었던 몸은 어디로 갔을까
반짝이던 살갗의 땀방울은 어디로 갔을까
돌처럼 견고했던 식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식탁 모퉁이에서
사과껍질이 몸을 뒤틀고 있다
살을 놓아버린 곳에서 생은 안쪽으로 말리기 시작한다
붉은 사과껍질은
사과의 살을 놓치는 순간 썩어간다
두툼하게 살을 움켜진
청춘을 오래 간직하려는 과즙부터 썩어간다
껍질 한 끝을 집어 든다
더듬을수록 독한 단내를 풍기는
철렁, 누가 끊었을까 저 긴 기억의 주름
까맣게 시간이 슬고 있는데
시집 - 삼천갑자 복사빛(2005년 민음사)
정끝별 시인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
《문학사상》 <칼레의 바다> 외 6편의 시가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
명지대 국어국문과 교수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
시론집 『패러디 시학』평론집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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