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꽃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깁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최두석(1956 - )
시인. 1956 전남 나주 출생.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0 <<심상>>에 시 <김통정>을 발표하여 등단. 현 한신대학교 인문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으로는 <대꽃>, <임진강> 등이 있다.
해설
이 시는 새벽 시내버스에서 흔히 복 되는 성애를 소재로 삼아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그에 대한 화자의 애정 어린 시선을 담고 있다. 1980년대의 암울하고 막막한 시대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각자의 일터나 집으로 가는 이름 없는 서민들의 숨결이 버스 유리창에 ‘성애꽃’으로 피어났다는 발상은 참신함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성애꽃 핀 창 속에서 문득 발견하게 된 ‘푸석한 얼굴’이 군사 독재 세력에 저항하다 옥에 갇힌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감성의 울림만이 아니라 지성의 울림까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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