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관(言官)의 지위에 있을 때에는 |
조선왕조 시대와 오늘의 세상은 여러 가지로 달라서 그때의 벼슬 이름과 지금의 벼슬 이름이 일치할 수도 없지만, 하는 일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제도에는 삼사(三司)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이 세 관서가 삼사로서 여기에서 일하는 벼슬아치들을 언관(言官)이라고 했습니다. 즉 오늘의 세상으로 보면 벼슬아치 신분이면서 언론인의 구실을 맡았던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언론인은 대체로 민간인 신분이지만, 옛날의 언관은 관원이면서 언론인에 맡겨진 업무까지를 수행해야 했던 특별한 지위의 벼슬아치였습니다. 제목이 「시학연가계(示學淵家誡)」라는 글입니다. “언관의 자리에 있을 때에는 모름지기 날마다 격언(格言)과 당론( 論 : 곧고 바른 의논)을 올려야 한다. 위로는 임금의 잘못도 공격하고 아래로는 알려지지 않은 백성들의 고통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在言地 日進格言 論 上攻袞闕 下達民隱)라고 명확한 정의를 내려 언관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를 거론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악한 관료들을 퇴출시킬 때의 원칙도 설명했습니다.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처리해야지 치우친 의리에 근거하거나 당동벌이(黨同伐異 : 같은 당인과만 함께하고 타당인은 공격함)의 정신으로 처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오늘의 세상이 위기를 맞았다고 야단입니다. 이런 위기에 과연 오늘의 언론은 200년 전 다산이 주장한 만큼의 역할이라도 하고 있을까요.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매정하게 비판만 하는 몇몇 언론기관의 논조들을 읽으면서, 다산의 언론관이 새삼스럽게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위로는 임금의 잘못도 공격하고, 아래로는 숨겨진 백성들의 고통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해야 한다’라는 언관의 역할이 되읽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이 글은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이 보내온 메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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