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동무와 연인
김현임
30도의 영지버섯술이란다. 영지(霙芝)인가? 저 먼 곳의 구름처럼 신비한 약초, 몇 번인가 정확한 글자를 찾아내는 시도를 하다가 그만 둔다. 이름이 무에 그리 대수인가. 뜻밖의 상이었다. ‘상을 받지 못할 때의 심정이 어떤지 알기에 상을 타게 된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 했다. 수상후보에 5번이나 올랐지만 번번이 탈락했던 여배우처럼 나 또한 지금 행복하다.
축배에는 벗보다 연인과 마주함이 의미 있을 터, 오늘 나는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한 잔 반의 영지술을 마셨다. 은근한 취기 속에 떠오른 게 ‘동무와 연인’이라는 제명의 책이다.
엊그제 여행지에서 선뜻 후배에게 건네주고 말았다. ‘주었다’와 ‘주고 말았다’의 간극은 크다. 그동안 아끼고 아껴가며 읽던 책은 여전히 내 동무였던가. 이제껏 잡고 있던 따뜻한 인연의 손을 얼떨결에 놓아버린 것처럼 책이 사라진 자리가 허전하기 그지없다.
그날은 한 사람의 벗 아니면 나를 지극히 사랑하여 주는 이의 위로를 청하고 싶은 힘든 날이었다. 후배와 동행한 절이다. 주지라는 호칭보다는 푸근한 외할머니가 더 어울리는 분이셨다. 그게 여느 절과는 다른 편안함을 자아냈다. 깔끔하게 단장된 사찰은 채색된 단청이 아니라면 절이라기보다는 여염집 분위기다. 암환자나 세사에 시달림 당한 사람들이 머물며 기력을 회복해 간다는 설명처럼 나또한 외갓집에 온 듯 법당 안에서 마음이 금세 느긋해졌다. 스님께서 내어 오신 쑥떡, 떡메에 친 듯 멍얼멍얼한 밥알갱이가 씹히는 떡을 먹다가 우연히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빼곡히 걸린 붉은 꽃, 연등(蓮燈)을 보자 일순 목이 메었다. 우리 모두 서로의 눈에 아름다이 피어나는 꽃이며 우리 모두 서로의 어둠을 밝혀주는 등 같은 소중한 존재라는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렇지만 가끔은 서로를 태우려드는 모지락스러운 불꽃이기도 했다. 이 지구라는 화택(火宅)에서 화상의 상흔 없는 이가 드믄 이유다.
그럴 때마다 내 얼부픈 통증 부위의 열기를 식혀주던 책, 책은 언제나 다정하고 찬 이성을 지닌 명확한 성품의 동무였다. 그의 충고에 귀 기울이면 시야 트임의 후련함이었다. 한편 만나면 구름 속인 양 허렁허랑, 마치 몽(夢)과 ‘스위트 스페이스( sweet space)’라는 간판의 카페가 자리한 옛 추억 속 거리를 거닐 듯 자유스러웠다. 하지만 자주 만나면 방종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어 아쉽게도 좀체 만나지 못하는 뜨거운 성향의 연인 같은 게 술이었다.
“아이고! 책은커녕 무료로 넣어주는 신문도 안 읽습니다.”
어느 지자체 장의 탄식처럼 우리나라 국민들 개개인의 1년 간 도서구입비도, 독서량도 최하위수준이란다. 그런데 술 소비에 관한 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한다던가. 게다가 요즘 최악의 불경기에 극심한 취업난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 술이 잘 팔린다는데 동무와 연인, 그들의 위치가 뒤바뀌는 우(愚)를 보는 듯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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