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화가 김점선
김현임
뜻밖의 비보(悲報)다. 화가 김점선의 타계 소식, 내가 그녀를 안 건 겨우 두 달 전이다.
일로 연결된 어떤 분과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물었다. 지금 꼭 하고 싶으신 일이 무엇이냐고. 시와 그림을, 그것도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팔십 중반 넘기신 그 분의 응답이 내 뒤통수를 쳤던가. 이후 가끔 긁적거리게 된 그림이다.
그림 스타일의 모델을 찾아 두리번대다 첫 대면한 김점선의 삽화다. 하지만 내게서도 그녀의 그림은 ‘자유스럽지만 어설프고 촌스럽고 단순하다’는 세간의 평을 넘지 못하였다.
대지처럼 자식을 품는 어머니의 너른 가슴을 강조하고 싶어서였을까. 양 쪽 페이지를 가득 차지하게 편 어머니의 색동저고리 소매라던가, 이 땅에 돋아나는 풀꽃들이 그러하다지만 지면 곳곳 산만하게 토종꽃들이 그려진 분방한 화법이 낯설기도 했다.
치밀히 계산된 구도형식에 얽매인 여타 그림들에 익숙한 내 눈엔 어처구니없이도, 만만하게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인사들의 책에 선택됐다는 이유로 그녀를 치기 팽배한, 시절 잘 만난 젊은 화가로 오해하며 저만치 밀쳐 두었다.
그런데 오늘 손바닥만 한 사후의 프로필로 다시 접한 그녀다. 왜곡된 선입견에 치중해 사람을 평가에 버리는 내 못된 편견의 습성은 언제 사라질까. 반성문 쓰듯 꼼꼼히 읽는 그녀의 기사다.
향년 63세에 우선 놀랐다. 2007년에 난소암이 발병했으니 내가 홀대한 바로 그 삽화, 어머니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의 화폭을 그린 시점이다. 말과 오리, 꽃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다는 김점선은 누구보다 개성에 충실한 삶을 산 화가였단다.
어떤 이유에선가 젊은 시절 어느 날, 친구들과 모여 단체로 죽기로 했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명상을 하다가 퍼뜩 ‘한 번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죽자’며 생각한 게 그림.
선배 화실에서 열린 잔치에서 노래 부르는 남자에게 반해 즉석 청혼하고 떼를 쓰듯 결혼한 것도, 퍼포먼스를 한다고 한강 백사장에서 발가벗는 해프닝도 벌이고, 그림 역시 구도와 원근법을 무시하고 채색까지 철저히 제식대로 했단다. 과히 세속의 구속을 벗고 생의 자유를 만끽한 김점선 식의 삶이다.
엊저녁 밤늦게 글을 쓰다가 변덕일 듯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겨우 수련 두 송이 그려놓고 ‘蓮花’라고 쓰자 그림 위로 ‘툭!’ 떨어지던 영문 모를 눈물.
이렇듯 김점선 그녀와 꼭 열 살 나이 차의 나는 새 일, 그러니까 꼭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일들을 시도할 때마다 은근히 겁이 난다.
늦은 나이에, 갖추지 못한 실력에, 그 외에도 몇몇 이유를 들어 가당찮다는 쪽으로 쏟아질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지레 겁을 내는 것일까. 문패는 분명히 내 이름인데 객이 외려 주인 노릇하는 집이 나였다.
누구의 아내와 누구누구의 엄마에 부여된 책임감도, 내게 얹힌 무거운 나이도, 나에 대한 세평도 한갓 외피였다. 이 세상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신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화가 김점선의 생, 그 당당한 이력을 다시 한 번 되새겨가며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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