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 꽃 잔치
김현임
이번엔 제발이지 무사하기를 바랐는데.......
쯧쯧... 또 목련이 까만 휴지로 변하고 말았다. 음력 삼월 초순이니 걸핏하면 꽃 시샘 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이 남편의 생일, 부지런한 봄꽃 목련이 해마다 말 그대로 된통 서리를 맞고 만다.
무엇, 무엇하여도 바쁘게 치닫는 도회의 생활에 시달렸을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집 마당의 꽃들이려니 환영 나팔인 듯 벙실대는 수선화, 몽실몽실 살 올라 어여쁘기 꽃에 못지않은 모과나무 새순의 연둣빛! 기척 늦은 봄꽃들 사이에 페튜니아니, 베고니아 화분들을 군데군데 배치해 두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어느 꽃보다 곱고 가냘퍼 생각만으로도 안타까운 꽃은 자식이 아닐까. 특히 다섯 살 바기 손녀와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백일잡이 손녀 녀석들의 작은 입에서 나온 말들은 내겐 다 어여쁜 꽃송이였다.
겨우내 한적하던 마당이 떠들썩한 잔치마당이다. 남편과 아들, 사위는 장작을 쪼개 불을 지피고 딸과 나, 그리고 며느리는 들판을 헤매며 나물을 캤다.
지난겨울의 눈 맛이 올올이 배여든 걸까. 쓴맛마저 향기로운 머위잎에 달큼한 봄배추와 곁들여 싸먹는 생목살 돼지고기도, 금방이라도 벌벌 모랫벌을 기어 다닐 것만 같은 엄지손톱 크기의 게, 달콤하게 볶은 그 요리도 인기가 있었지만 초무침해 내놓은 봄나물 접시가 단연 으뜸을 차지했다. 내내 심심해하던 강아지들도, 고양이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어찌 내 집 마당뿐이랴. 이 곳 저 곳의 꽃 잔치 소식이 들려온다. 튤립만을 주종으로 하는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우리 산야에 피는 야생화 혹은 양귀비만을 몇 십 만평 대지에 심어놓고 흐드러질 그 꽃의 축제 펼침의 장을 노심초사 대기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이 봄, 맹위 떨치던 추위 닮은 세사에 지친 우리를 위무하여 주는 것 중 가히 꽃만 한 것이 없음이다. 옛 선비들 역시도 진달래 화전을 지져 먹으며 뱃속 가득 퍼지는 봄기운을 만끽하였으니 입 속 가득 도는 군침과 함께 머릿속 가득 펼쳐지는 봄 경치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4월은 욕지거리도 꽃이라 하면 그만 꽃이 되고 만다던가. 여배우의 이름이 붙은, 또 정계의 거물들이 연루된 검은 돈의 리스트로 어느 한 곳 마음 훈훈한 소식이 드믄 요즘. 흉흉한 소문들을 뒤덮을 김연아 선수의 낭보는 우리에게 날아든 가장 멋진 꽃소식이다. 그를 전하려 마당에 나서니 딸과 손녀가 밭두둑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다.
“혜서야, 이 꽃이 베로니카야.”
제 고모의 말에 처음 만나는 꽃 이름을 되불러보는 손녀의 입은 흡사 연분홍 앵두꽃. 무서리를 당당히 이겨낸 작은 꽃들 앞에서 문득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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