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나의 그리운 교단일기②
“아이야, 돌아오너라!”
김정음자
(은퇴교사, 나주시 대호동)
지난 2007년 8월 31일은 저의 43년의 교직생활이 끝난 날입니다. 이렇게 오랜 43년 동안 가르친 제자는 1,200여명이 넘습니다.
이 많은 제자 중에서 지금도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 제자 몇몇이 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팔에 파스를 붙이고 나타났습니다.
“왜 팔에 파스를 붙였니?”
“선생님께 맞아서요.”
아이의 말을 듣고서야, 팔뚝에 시커먼 상처를 보고서야,
나의 눈밖에 벗어나 제멋대로 노는 아이를 잡아 세차게 때렸던 일을 기억했습니다. 시커먼 아이의 상처를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내 폭력에 시달린 아이의 아픔은 내 마음에는 없습니다. 오로지 내가 폭력교사가 아니라는 것을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내 마음속이 드러나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보호자이신 할머니께서는 이 몹쓸 선생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죽 애가 말을 안 들었으면 그랬겠어요? 다 내 아이 부족입니다.” 이렇게 나를 안심시켜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빚진 마음으로 아이를 사랑했습니다. 해는 바뀌어 아이는 2학년으로 올라갔고 나는 그 학교를 떠나왔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헤어졌지만 방학이 되면 만나서 같이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면서 사랑을 키웠습니다.
또 한 아이는 1987년 어느 작은 시골학교에서 4학년 때 만난 아이입니다. 아이는 똑똑하고 공부도 아주 잘하는 아이인데 결석을 자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 집을 찾아갔는데, 부엌의 아궁이에는 물이 고여 웅덩이가 되어 있었고 방바닥은 이웃들의 헌옷으로 어지럽게 흩여져 있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아가는 집이 아닌 집을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집 밖과 학교 근처를 맴돌면서 방황하는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마치 나주 집을 떠나 학교의 관사에서 살고 있기에 자취방에서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며,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나주 집으로 와 목욕탕과 이발관을 함께 가고 옷가게에도 갔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다독여 주면서 4학년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그 학교를 떠나왔는데 아이는 끝내 가출을 하고 말았습니다.
불량한 아이라 가출한 것이 아니고 그 아이의 열악한 가정형편이 그를 가출시키고 만 것입니다. 내가 좀 더 보살펴 주어야하는데 끝내 돌보아주지 못한 나의 부족한 사랑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 가슴을 저밉니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 이루어 잘 살고 있다는 아이의 소식이 꼭 오리라는 희망으로 20년 전에 잃어버린 아이를 나는 오늘도 기다리고 있답니다.
'우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호장(又湖丈) 어르신을 송별하며 (0) | 2009.05.22 |
---|---|
애인만나기 (0) | 2009.05.16 |
[스크랩] 어느 여인의 절규!! (0) | 2009.05.15 |
스승의 날 선물 유감 (0) | 2009.05.09 |
딸기꽃 (0) | 2009.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