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장(又湖丈) 어르신을 송별하며
김현임
어르신, 어르신 세상사 숱한 만남에는 반드시 이별이 있다했습니다. 하여 해마다 쏟는 이별의 눈물 때문에 대동강 물은 마르지 않는다던가요. 오늘 저 유난히 출렁이는 영산강물의 몸피도 어르신을 보내는 우리의 눈물로 부쩍 불어났을 겁니다.
어느 해던가요. 먼저 가신 당신의 평생 반려 마나님의 추도사를 우호장 어르신께서 애조 띤 음색으로 읽어 내리셨지요. 항상 유쾌하고 호방하셨던 어르신과는 다소 낯 선 광경에 불경스럽게도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런 저를 짐짓 호통하시며 이 양반이 남의 초상집에 와서 웃기는 왜 웃냐셨지요.
한복 빳빳이 다려 바깥나들이 입성 깔끔히 챙겨주시던 마나님의 음전하신 손길 없이, 아니 그보다는 큰 집에 덩그마니 혼자 계실 적적함을 걱정하는 제게
“아이구, 걱정 마시요. 회진 멋쟁이 우호장 혼자 됐다는 소문에 전국 과부들이 서로 오겠다고 다투느라 난리가 났다요.”
어르신은 이런 분이셨습니다.
일찍이 소년 才士의 앞길을 가로막은 九折羊腸의 旅路, 그 사연이야 제 어찌 상세히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술 취하시면 즐겨 부르시던 ‘붉은 깃발’의 가사가 들어가는 노래로 波高 높은 세파의 소용돌이, 그 애환 끝에 터득하신 처세술이었으리라 감히 짐작할 따름입니다. 사방천지 걸림 없이 사신 유쾌한 풍류남아에 백호 선생의 환생인가 착각할 만큼 뛰어난 文士셨지요. 우호장 어르신의 그 멋, 그 기개, 다시 추억해도 너무 아깝고 그립습니다.
은은한 달빛 강 비스듬히 반가를 비추고
한 잔 한 잔 돈독한 정의 잔 마시는 사이
달 드높아 가듯 문우들의 취흥 또한 도도하네
어느 날 제 집에서 벌어진 술자리 중 쓰신 이런 싯구, 혹은 언뜻 불어오는 바람을 일러 ‘늙은 소나무를 스친 어린 바람’이라던 이런 즉석 표현이 우호장 어르신 아니시면 가능하겠습니까.
吾愛金現任(오애김현임)
情緖淡如水(정서담여수)
吾愛金又眞(오애김우진)
品如黃眞伊(품여황진이)
백호 선생님 산소 앞에서 벌인 제 버릇없는 해프닝을 어여삐 여기시어 ‘또 황진이’라는 제 號 손수 지어주심도 황송한데 이름 자 넣어주신 액자의 이 시도 유래에 얽힌 사연과 함께 이제는 아득한 전설이 될 것인지요.
언제라도 찾아가 뵈올 수 있던 정겨운 문우이자, 마을의 큰 어르신으로 모신 지난 세월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자연의 품에서는 모두 한 몸이 된다했으니, 백호 임제 선생께도 고향 회진의 버들잎 푸른 오월의 안부를 소상히 전하시겠지요. 모쪼록 드넓고 좋은 곳에서 내내 편안하십시오. 우호장 어르신.
(白湖 林悌 선생의 13대 孫 又湖 林潤澤어르신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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