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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광주여 영원히!

by 호호^.^아줌마 2009. 5. 18.

광주여 영원히!

"EXEMPLUM, in Memoriam Kwangju"

  

 

 track.06 광주여 영원히!(198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립교향악단 / 지휘 : 김병화

 

대학교 2학년때 처음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음악동아리에서 해적판으로 만든 테이프였죠.

음질도 조잡하고 클래식과는 다른 강한 음색이 거북스렁웠지만

그래도 들었습니다. 광주 이야기였으니까요.

80년 5월 18일...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부처님오신날이었고, 사람들은 연등제와 마을 뒷산 기슭에 있는

다보사라는 절을 가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뤘죠.

그런데 오후쯤 아시아자동차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동네로 밀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사태가 났는데 빼앗기면 안되니까

숨겨놔야 한다며 산밑으로 들어가는 모습...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동네 이장님의 마을방송을 듣고

좋아라 박수치던 일...

세째오빠가 데모하러 나가서 안들어오자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들까지 찾아나서

밤늦도록 나와 동생들만 집을 지키던 일...

중학교 1학년 꼬맹이가 본 그날은 그랬습니다.

 

그 뒤 광주로 고등학교를 통학하면서

5월만 되면 최루탄 자욱한 금남로 거리와 대학생들의 데모 행렬...

심지어는 공부시간에 밖을 내다보니 학생들이 줄지어

학교 뒷산으로 도망가는 모습이 눈에 띄고,

뒤이어 검은 쑥색 제복에

곤봉을 든 무리들이 그들을 끌고 내려가는...

 

그렇게 10대를 보내고 20대가 되어 맞이한 5월...

아침이면 매큼한 공기를 마시며 등교하고

오후에는 어김없이 난무하는 최루탄과 지랄탄, 페파포그(?)의

어지러움 속에 5월이 눈물로 얼룩집니다.

 

도서관 앞 오일팔 광장은 오후 1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회가 시작되고 전경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학교를 둘러쌉니다.  

왜 그토록 막으려고 했는지, 왜 그토록 싸우려고 했는지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때 그 현장에 있지 않다면,

진정 내 친구, 동료, 후배가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광경을 보지 않으면,

힘없이 이유없이 죽어야 했던 80년 5월의 그들을

영정으로나마, 무덤으로나마 만나보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을 테니까요. 

 

지금은 한 지방대학 교수로 있는 선배는

임산부였던 누나가 회사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대문 밖을 나섰다가 계엄군의 총에 죽었다더군요.

 

그때 그 누나의 뱃속에서 한참동안이나 요동치던

그 조카가 끝끝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더랍니다.긑 

 

 음악에 대해서도 한말씀 드려야 겠군요.

아시다시피 이 음악은 윤이상 선생의 작품입니다.

바로 오일팔이 난 이듬해에 만든 작품이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현대음악은 참 어렵지요.

하지만 "광주여 영원히!"는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분위기가

꼭 바그너나 말러의 음악을 듣는 느낌입니다.

윤이상 선생도 독일에서 공부했으니 바그너의 영향이 있었겠지요.

연주는 북한의 교향악단이고, 북한의 대표 지휘자입니다.

북한 사람들의 연주이기에 남쪽에서는 당연히 금지곡이었구요.

대학에서 아는 사람들만 듣던 곡이었습니다.

당시 대학방송국 기자였던 저는 5월에 이 노래를 학우들에게 들여주어야 한다고

지도교수이던 분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결국 5.18 하루 전날 온 교정에 이 노래가 울려퍼질 수 있었죠.

 

아무리 사는 게 바쁘고 정신 없다고 해도

오늘은 5월 18일입니다. 

민주화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그 분들을 기억하면서

이 음악 끝까지 한번 들어보시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만,

이 곡은 지은 윤이상 선생은 선각자적인 음악가였습니다.

5.18영령들과 윤이상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