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유(交遊)
김현임
옛 어른의 시구였다. 꽃을 심으면 행여 피지 않을까 염려되고 꽃이 피면 이내 질까 또 전전긍긍, 하여 꽃 심는 기쁨을 모른다했던가. 살아가면서 쉽사리 엮기 힘든 우리들의 고운 인연을 꽃으로 은유하여 읊은 시였으리라.
뜨락의 봄꽃이 진다. 하염없이. 꽃샘추위를 이겨낸 장한 봄꽃들이 6월이면 시작될 여름꽃들에게 유순하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게 애석해 마련한 작은 모임이랄까.
아니다. 실은 읍취헌 박은 선생의 작품집을 읽다가 책 속 ‘교유하던 인물’이란 대목에 내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의금부에서 박은의 노비를 국문하여 교유하던 인물을 물으니 이르기를 이행, 이유녕, 이직....... 이라 하였다.
왕이 전교하여 모두 곤장 100대를 쳐서 분배시키고,
이미 유배된 자들은 잡아들여 곤장을 쳐서 다시 유배지로 돌려보내라 하였다.’
‘모기가 태산을 짊어질 수 없고 개미가 만든 언덕 가소로운 것’이라는 대목에서 엿보이듯 박은의 지사적 의기는 폭군 연산군의 눈에 거슬렸다. 기록에서처럼 한 동리에 나서 함께 배우고, 벼슬과 죄까지도 함께 한 이행을 비롯해 박은이라는 벗으로 하여 봉변을 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측근들의 구속 수감, 이어 자신의 가족까지 옥죄어 오는 수사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한 주일 내내 뒤숭숭했다. 측근이라 함은 바로 ‘교유하던 인물’ 아닌가. 서글픈 인연의 뒷자락에 슬그머니 쓸쓸하여진 걸까. 평소 나와 교유하던 사람들과 며칠 남지 않은 봄밤의 애틋함을 나누고 싶어졌다.
두서너 명 친구 있어
취미 자못 동일했는데
서로 만나 웃고 즐기면서도
의논함은 모두 뛰어났기에
만남이 더딜까 염려했더니
시절도 잠깐 사이일세
지금이 바로 좋은 때이니
꾀꼬리 소리 기다리지 말게
낮에는 짬 낼 수 없으나
촛불 잡고 만날 수 있으리
어쨌든 푸른 초승달 아래 우리는 모였다. 이십년 지기인 시인 내외분과 물들이 마을의 젊은 수장, 그리고 열심히 봉사를 하여 주신 현대판 김정호씨, 눈이 예쁜 사서 선생님과 그녀의 늦둥이 아들, 매화라는 이름의 마을친구 내외, 여학교 선배인 처녀 과장님, 그리고 항상 고운 자태의 시인이자 보건소장인 친우, 또 문화학교 젊은 교장선생님까지가 어제 밤, 시쳇말로 나의 번개팅, 뜨락잔치 초대에 흔쾌히 모인 내 벗들의 면모다.
왕조의 흥망성쇠만이 역사가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기뻐하고 슬퍼하던 평범한 사람들, 수백 년이 흐른 뒤에는 그 존재조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역사라 했다. 대통령의 추모집회와 겹쳐 총총 걸음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간 이가 적지 않아 잠깐 잠깐 분위기가 흔들렸지만 우리들 봄밤 교유의 역사는 또 이렇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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