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오늘 한 시골마을에 취재갔다가
처음 본 꽃입니다.
선인장 종류인 것 같은데
이 얼마나
우아하고
고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아,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있자니
짠한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나 이쁜 녀석이
그 시골 담벼락 밑에서
아무렇게나 놓여있어야 한다는 현실이...
그래도
선인장의 무기는 가시인데
잎파리는 상처투성이,
가시도 떨어지고
군데군데 구멍까지 난...
아무도 눈여겨 봐주지 않는 것에
스스로
지치고
화나고
상처받은 모습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꽃이 아니라고 했던가요?
아,
그러나 어쩌지요?
난
이 꽃의 이름을 모르는데...
이름을 불러줄수가 없군요.
그냥 꽃,
노란꽃일 뿐입니다.
살다보면
뜻하지 않는 곳에서
뜻하지 않은
만남을 갖습니다.
생각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소중한 만남,
그래서
인간사는 우연의 연속이고,
우연 속에서
필연이 생기는 것인가 봅니다.
오늘
이 한송이 꽃을 통해
제 주변을 돌아봅니다.
그들이 있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지,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큰 의미가 되고 있는지...
오늘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렵니다.
2009년 6월 10일
나주시 노안면 학산1구 천동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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