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임 칼럼
나이듦에 관하여
‘후하다’는 표현이 나이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시골살이의 가장 큰 보람은 넉넉한 성품의 할머니들과 이웃하며 사는 즐거움이었다.
끼니마다 뜯어주시던 밭고랑의 푸성귀처럼 마을의 갖가지 소문도 항상 부풀려 전하시던 그 분들은 불혹 가까운 내 나이도 후하게 깎아 강산이 바뀌는 세월 이르도록 새댁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셨다.
그에 편승한 착각이었을까.
십여 년 전 남편이 찍어 준 사진을 별다른 가책 없이 써 왔다.
사진 속 나와 지금의 내가 현격, 말 그대로 현격히 다른 것을 실감한 것이 최근이다.
책에서, 신문에서 만난 사진 속 젊은 나, 그를 기대했던 이들이 내 앞에서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결국 “아이구! 이제는 새 사진으로 바꾸셔야 되겠어요.” 취재차 들른 한 용감무쌍한(?)기자의 충고에 퍼뜩 정신이 들었달까.
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이
내 속에 있어서
제 발목을 제 손으로
꽉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다
나보다 더 울고 싶은 놈이
내 속에 있어서
눈물 흘리는 건
언제나 나다.
스물네 살 때 군에 입대하여 북방 정보요원으로 근무, 2차 대전 직후 3년 동안 시베리아 유형생활 등등,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거친 요시로오라는 일본 시인의 시 구절을 찬찬히 읽으며 핑계거리를 찾는다.
‘나보다 어린 내가 / 내 속에 있어서 / 제 세월을 제 손으로 / 꽉 붙잡고 / 놓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첫 구절을 슬쩍 훔쳐보다가 ‘내가 울어봤자 뭐가 달라지냐 / 데굴데굴 굴러 보지만 / 해는 처마 끝에 저물고’라는 대목에 망연해진다.
사진 바꾸기, 사진 바꾸기....... 꼭 해야 할 일을 방점 찍듯 되새겨 기억하기는 새로 생긴 버릇 아니던가. 다짐에 다짐을 하면서 앨범을 뒤적여 봐도 적당한 사진이 없다. 솔직히 요 근래 사진 속 나는 내 스스로도 낯설다.
참 점잖은 선배님이셨다. 그런데 공개석상에서 회갑 넘긴 당신의 나이를 밝혔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불같이 화를 내셨다. 뜻밖의 상황에 당사자는 물론이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우리 모두 어쩔 줄 몰랐다. 이제 나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갈수록 고운 빛깔의 옷이 탐나고,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쩐지 측은히 여겨지고, 그런가하면 갈수록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공연히 분주한 일상.
노을색 짙어지는, 맞다. 내가 아무리 붙잡아도 내게 갖가지 낡아가는 흔적을 만들며 흘러가는 무심한 세월이다. 간신히 버티는 건 노후되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속의 나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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