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과 서의 茶이야기―놀이와 사교가 있는 풍경 이광주(인제대 명예교수·서양사) 지음 중국인에게 차를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차를 마시는 일에 대해 신성한 마음까지 지니고 있다. 향이나 술, 돌에 대해 쓴 전문 서적이 있듯이, 차에 대해서도 많은 전문서가 나와 있다. 차를 마시는 습관은 다른 어떤 습관보다도 두드러지며, 중극인의 일상생활을 대단히 풍요롭게 해준다. 유럽의 카페와 마찬가지로 중궁의 다관(茶館)은 중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 다관에만 있으면 어디서건 중국인은 매우 기분이 좋아진다. ― 린위탕(林語堂)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곳곳에서 본인이 차를 좋아할 뿐 차 전문가는 아니라고 누누이 언급하고 있지만,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독자들은 저자가 얼마나 차에 대해 박식하며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차에 대해 그렇게 소소한 것까지 알고 사료를 뒤져내고 그것을 하나의 고급교양서로 묶어냈는지에 대해 놀라게 된다. 더욱이 서양사학자이면서도 동양의 차문화에 대해 체계적이면서도 그 흐름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경지는 문화사가로서의 모든 것을 겸비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진정한 차문화로서 차에 대한 격식과 차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인류문화에서 기호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현종대(735년)에 들어와서부터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을 기록해놓은 문헌쯤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사실 다경으로부터 인류의 차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책은 동양의 차문화에 관한 한 최고임은 중국의 송·원·명·청를 가릴 것 없이 역조(歷朝)에 걸쳐 복간되었고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도 전해져 각 문화권에 맞는 독특한 차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렇다고 육우가 노장사상에 기울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인도에서 전래된 선(禪) 사상이 자연스럽게 차문화와 결부되면서 풍류와 놀이를 뜻하는 무위자연적 차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명대(明代)의 다인 허차서(許車서)가 지은 다소(茶疏)에는 육우의 다풍(茶風)을 기리며 "차란 소박한 심성을 지닌, 서로 탈속한 이야기들을 한가롭게 나누며 즐길 수 있는 벗과 더불어 마시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한 것도 결국 다선일미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의 도자 문화는 세계 음식문화사와 예술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데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금기는 귀족문화가 난숙하게 꽃핀 당대(唐代, 618∼907)였다. 우리가 잘 아는 당삼채(唐三彩)가 바로 그 절정이다. 당 말기에 들어서 도자기는 실용적인 생활용기로 대량생산되었으며, 고려와 타이, 베트남에 이어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에 전해졌다. 한가지 놀랄 만한 점은 도자기 역사상 최초로 정리가 잘된 문헌적 사료가 육우의 '다경'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육우와 다경을 빼놓고는 동양의 차문화를 거론할 수조차 없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유럽의 차에 관한 책에서도 육우의 초상과 다경이 크게 소개되어 있고, 중국을 본받아 육우의 초상을 간판에 내건 다상(茶商)이나 카페를 런던, 빈 등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니 육우와 다경은 동양문화권을 넘어서 서양 차문화에도 대단한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독특하게도 일본 차문화는 선종을 신봉한 무가(武家)들 사이에 퍼지면서 형성되었는데, 무사문화 특유의 `격식 엄중`함이 다례(茶禮)의 근본이 되었다. 중세 봉건기의 막부정치를 통해 형성된 무사계급의 문화가 차문화에도 그대로 흡수되어 선(禪)의 본질을 이루는 융통무애(融通無碍)의 경지보다 법도를 받아들이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양식에 꽉 짜인 완벽한 격식주의 속에서 일본의 차문화는 차문화 고유의 풍류와 놀이를 저버린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저명한 미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일본 다도(茶道)의 역사를 공죄(功罪) 비등한 것으로 비판하며 `차`가 `도`(道)일수록 사이비 차가 된다고 하였다.
그만큼 차는 서양문명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던 영물(靈物)인 셈이다. 아울러 라이프 지는 커피의 보급을 78위로 꼽았다. 에티오피아를 원산지로 한 커피도 고대로마 시인이 `젖 내음이 풍겨오는 ` 땅이라고 읊은 동방의 `행복한 아라비아`에서부터 세계를 돌고 돌아 서양세계에 전해졌다.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그만큼 유럽인들은 항상 몽롱한 상태로 하루하루의 여가를 즐겼다. 파리의 경우 17세기 중엽에 1년 중 무려 103일이 페스티벌이었다고 하니, 남녀노소 모두가 축제에 흥청거리고 술독에 빠졌던 것이다. 이러한 일상문화에 커피의 출현은 가히 `혁명적` 사건이라고 언급한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가 미슐레는, "(커피) 혁명의 열광은 새 풍속을 창출하고 사람들의 기풍을 바꾸게 하니, 루이 14세 치하의 살롱과 선술집을 대신하여 카페가 등장하였다"고 찬탄하였다. 커피, 그것은 차와 더불어 지난날 중세적인 검과 술의 전사(戰士) 문화에 종지부를 찍고 우아함을 뽐내는 여성 중심의 사교 문화를 꽃피게 하는 한편, 만인에게 열린 자유로운 담론의 카페 문화를 개창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교양인들은 살롱과 아카데미, 카페 문화에서 여실히 들여볼 수 있다. 살롱의 귀부인 스탈 부인(1766∼1817)을 비롯한 다양한 귀족 부인들의 방에서 프랑스혁명의 싹이 움텄다면 그 이율배반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만큼 살롱은 귀족과 평민의 신분계급을 떠나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참여하여 자신의 언사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루소나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이 그들이었다면 우리는 쉽게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담소의 공간을 제공한 것이 커피였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문화, 우리가 유럽 여행을 가면 노천 카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다. 영국 사람들도 18세기까지는 차보다도 커피를 애용했으나, 중국차와 중국 자기 다완의 영향으로 차문화로 옮겨간 듯 하다. 어쨌든 영국 사람들에게 커피는 `쓴맛의 검은 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립튼이 바로 대표적인 영국 홍차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미미한 것으로 보이는 녹차 잎과 커피 열매가 가져온 인류문명사의 충격은 아편전쟁, 프랑스대혁명 등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그 모두가 인간이 연출한 드라마라면 차와 커피는 그 조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동서양 문물교류 차원을 넘어 동서양 정신문화의 교류와 새로운 문화의 창출이라는 엄청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저자의 전작인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에서 보여준 고품격 에세이로서의 자태가 이 책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커피와 차가 책과 잘 어울리듯이, 이 책은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과 자연스럽게 조우한다.
오늘날 차를 지칭하는 세계 각국의 표현은 두 가지로, 즉 원래 중국의 광둥어인 `CH`A`와 푸젠어 TAY(TE)`의 두 계보로 나뉜다. 광둥어에 속하는 것으로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ちゃ`, 포르투갈어·힌두어·페르시아어의 `CHA`, 아라비아어·러시아어의 `CHAI`, 터키어의 `CHAY` 등이 있다. 한편 푸젠어에 따르는 것은 네덜란드어 `THEE`, 영어 `TEA`, 프랑스어 `THE`, 독일어 `TEE` 등이다. 이렇듯 `차`의 지칭이 크게 둘로 나뉜 까닭은, 전해진 루트가 육로와 해로로 나뉜 데서 유래된다. 즉 광둥어계는 육로를 통해, 푸젠어계는 해상 무역을 한 네덜란드를 거쳐 유럽 여러 나라에 전해진 것이다. 꿈꾸는 사람은 차를 마신다라는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다. 더 나아가서 생각하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 대화가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는 차가 있다라는 말도 흔히 듣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려 170여 개국 몇 십억 인구가 하루에 20억 컵이나 마신다는 차는 과연 물의 의미와 어떻게 다를까. 오랫동안 차에 관심과 사랑을 가져 세계문화사적으로 차의 의미를 이끌어 오신 이광주 선생께서 차의 역사와 차에 얽힌 경험담을 담고 있는『동과 서의 차 이야기』는 정말 맛있고 향기로운 차 한잔을 들며 읽고 싶은 책이다. 더러 차를 기호품으로 말하지만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호품으로 머물지 않고 순간순간의 심상풍경이 되고 생의 명암으로 교차되기도 하여 한잔의 차로 풍부한 삶의 행복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 곧 차이다. 이 책은 서양문화사 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문화 전반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해 오고 있는 저자의 고품격 에세이로 행복한 한 순간 우울한 한 순간에 차 한 잔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차 한잔 같은 그러나 묵직하고 고급한 정신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차 탐험의 교양서적이다. 차를 통해 본 동서 문명과 정신 교류의 대 교류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사적 책이기 때문이다.
15 책에 바치는 글
제1부 차, 놀이의 미학 22 태초에 상서로운 나무가 있었다 28 최초의 다인茶人 육우와 ‘다경’ 48 차의 본성은 검소한 것茶性儉 56 다선일미 茶禪一味 68 차의 푸류, 술과 더불어 시와 더불어 86 황제의 차 대홍포大紅袍 102 품차品茶놀이, 차맛은 미주 美酒 향은 난을 제치고 110 찻잔, 그 그윽한 미학 132 송대 사대부들의 차 풍정風情 150 원, 명, 청, 대의 현란한 차문화 164 초기에 명마가 묶여 있음이 좋아라. 일본 다도의 성립 178 다실과 다정, 리큐와 와비차 192 리큐의 심미주의와 비극 제2부 홍차, 사교의 미학 204 차는 길을 따라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218 향은 오리엔트에서부터, 커피의 전래 230 행복한 도취, 이스탄불의 카페 242 커피, 패션과 이데올로기 254 또 하나의 미학, 구르망디즈 272 살롱과 아카데미 또는 사교의 담론 288 다질링, 우바, 치먼, ‘대영제국 홍차’의 탄생 300 최초의 커피하우스, 런던의 파스카 로제 312 당신의 단골 커피하우스는 어디입니까 322 애프터눈 티와 티가든 336 마이센과 웨지우드 자기 이야기 354 젠틀맨과 클럽 370 티테이블은 인간 행복의 옥좌, 문인들과 차문화 385 책을 마무리지으면서 38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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