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방구네 오유권
흉악하게 게으른 여편네였다. 어린 자식들의 해진 옷구멍은 커녕 제 속곳 가랑이 하나 깨끗이 빨아 입지 않는 돌방구네였다. 끼니 끓일 나무가 없어도 나무 걱정을 할까, 장마통에 담벽이 무너져도 그것을 쌓아 올릴 생각을 할까, 그저 어린 자식들이 지게품을 팔고 나무를 해다 주면, 또박또박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밤낮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여기 말 갖다 저기다 옮기고, 저기 말 갖다 여기다 퍼뜨렸다. 마을 사람들의 살림 속이나 뉘 집에 어떤 변이 생겼다는 것은 거의 이 돌방구네 입을 통해서 온 마을에 번지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집에 어떤 손이 와서 이러저러하고 갔다든가, 아무와 아무는 어느 때 무슨 시비를 하여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든가, 심지어 성안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며, 성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까지 갖다 전하였다는 돌방구네의 말이 때로는 마을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마을에 한 여론을 일으키는가 하면, 때로는 운수 사나운 시비 거리가 되어 봉변을 당하는 때도 있었다.
이 돌방구네에게 세 딸과 세 아들이 있었다. 딸 셋은 이태 전까지 십리, 이십 리 밖으로 시집을 보냈는데 그 딸들의 어미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 명절마다 성안에 장을 보러 나오는 길엔 꼭꼭 들러서 고깃근이나 쌀되를 들여 주고 가는가 하면, 여름철에는 시어른들 몰래 장만한 푼돈들을 모아서 마포 저고리와 모시치마를 사 보냈다. 더욱 작년 여름에 저의 아버지가 채독을 앓다가 돌아간 뒤부턴 어미에 대한 동정이 극진하였다. 철철이 와서 가세를 살피고, 어미가 조금만 앓아 누워도 겁을 먹었다. 어머니나마 오래까지 살아서 동생들과 한세상을 누려야 한이 없겠다는 것이었다. 반면, 이런 딸들에 비겨, 남은 사내자식들은 모질고 게을렀다. 도무지 어미에 대한 인정이 없는 데다 말들을 듣지 않았다. 밤낮 피둥피둥 자빠져 딩굴면서 마을에만 나가 놀기를 즐기는 것이다. 딴은 이제 갓 스무 살 안짝의 철부지들이므로 그런 걸 일일이 탓할 수 는 없는 일이지만. 그 세 아들 가운데서 열아홉 살 먹은 큰놈은 성안 정거장서 지게품을 팔고, 열다섯 살 먹은 둘째 놈은 나무를 하러 다니고, 열두 살잡이 작은 놈은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세 아들의 생김생김이 어미와 한 모양, 한 빛깔인 데다 게으른 것까지도 그리 똑같았다.
그런 돌방구네에게 요즘 열중한 곳이 한군데 있었다. 석 달 전에 성안에 새로 생긴 천주교회였다. 돌방구네는 이른바 열렬한 예비 교우인 데다 무내리골에 있어서는 회장격이기도 하였다. 그렇듯 게을러빠진 여편네가 남달리 천주교회가 생긴 것을 먼저 알고, 또 마을의 회장격까지 된 것은 오로지 그네가 마을 돌아다니기를 즐기고 입심이 센 까닭이었다. 그네가 마을 아나네들에게 전교하는 말들은 대개 이러하였다.
첫째, 천주교를 믿으면 세상의 괴로움을 잊고, 죽어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는 것. 둘째, 천주교는 예수의 어머니 - 곧 예수보다 높은 마리아 성모를 더 받들기 때문에 예수교보다 높고, 유독 여자들이 다니면 복을 많이 받는다는 것. 셋째, 천주교는 예수교보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그래서 이렇다는 신사들이 많이 다닌다는 것, 그래서 이런 일을 도맡아 거느리는 신부는 평생을 깨끗이 살려고 장가도 안 들고 지내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끝에는
「한 달에 강냉이 가리 타 묵는 것만 해도 돈 천 환씩은 돼. 거기다 밀가리 나오겠다, 옷가지것 타겠다.」
속삭이듯이 말하고는,
「그렇지만 고런 것을 바라고 댕기면 못 써라우. 이녁 맘속으로 진실하게 믿어야제.」
이와 같이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그때마다 마을 아낙네들은 으레,
「게으른 에펜네야, 자네가 진심으로 믿긴 뭘 진심으로 믿어. 남의 일하러 댕기기 싫고, 배고픈게 그러제.」
「남 가르칠라 말고, 죽은 남편 상방(喪房)이나 깨끗이 좀 손봐 놓소.」
이렇게 비꼬는 옆에서 그래도 가난하고 일없는 사람들은 돌방구네의 말에 솔깃이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돌방구네는 오늘 저녁에도 희멀건 강냉이가루 죽 한 사발을 마시고 나자, 자식들을 닥달하였다.
「아, 이 썩은 놈들아, 오늘 같이 따뜻한 날, 무슨 지랄을 하고 놀러만 댕기냐, 응? 가 부엌에 좀 가 보아라, 나무 하나가 있는가. 그리고 언제부터 네 애비 상방 좀 손봐 노라 해도..... 그 상복이나 만사가 비에 젖어서 쓰것디야, 응? 내년이 대상인디 네놈들이 상방 한번이나 깨끗이 닦어 봤나. 내가 천주교회라도 안 댕기면 벌써 굶어죽었을 것이다. 굶어죽어! 에이, 오살놈들.」
매일 같은 잔소리가 시작되자 큰놈과 둘째 놈은 냉큼 나가 버리고 작은 놈만 웃목에서 못 들은 척 공을 굴리고 있었다.
「시상에 복도, 복도 나같이 없는 년은 없을 것이다.」
과연 돌방구네는 교회에 열성을 다한 나머지 그 사이 강냉이루 배급을 한 말씩 두 번 탔다. 뿐만 아니라 서양 사람들이 업던 헌 옷도 아래 위 세 벌을 얻었다. 그때마다 돌방구네는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들면서, 까마득히 십 년 전, 성안에 예수교가 들어오던 때, 그때 역시 어린 자식들과 헐벗다 못해서 한 해 남짓을 예배당에 다니면서 빵과 과자를 얻어먹던 생각이 되 살아났다.
그러나 돌방구네는, 가난이 두루 죄이거니 하는 생각에서, 이제도 공을 굴리고 있는 세째 놈에,
「이놈 냉큼 일어서서 <교리 문답> 가져오너라.」
하였다. 교리 문답이란 글자 그대로 교리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을 가르치는 책이다. 천주교인이 되려면 모름지기 이 책을 숙습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 한사코 이 교리 문답을 빨리 외어서 영세(領洗)를 받아야 참다운 교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보다도 배급을 많이 탈 욕심이 많았다. 영세 교우는 영세를 안 받은 예비 교우보다 배급을 배를 더 주는 것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배급을 배를 더 타면 그 벌이가 어디냐는 생각이었다.
「냉큼 가져와야, 이놈아.」
세째 놈이 농 틈바구니에서 교리 문답을 찾아왔다.
「대사 다음이 뭣이야? 그 다음 읽어 봐라.」
「성체여.」
「그래 어서 읽어 봐.」
아들이 책을 보고 읽어 주면 어미는 그 뒤를 따라 읽었다. 집에 글자를 아는 사람이라곤 국민학교 삼 학년에 다니는 이놈뿐인 때문이었다.
『성체는 무엇이뇨?』
『면주 현상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니라.』
『성체 성사는 무엇이뇨?』
『칠성사 중에 제일 큰 성사요, 천주 교회의 제사요, 또한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니라.』
이와 같은 성체절을 열 번도 더 왼 동바구네는 세째놈이 잠든 뒤에도 십이단을 외었다. 천주경으로부터 성모경, 종도신경, 고죄경을 거쳐서 관유하심을 구하는 경을 외었다.
『전능하신 천주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상생에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이튿날 돌방구네는 네 아낙을 데리고 주일 미사에 나갔다.
이윽고 종이 울리자 밖에 섰던 사람들도 성당으로 들어오고, 남자석 왼편에 있는 여자석에는 머리마다 하얀 미사포가 눈부셨다. 돌방구네도 같이 온 아낙들과 함께 왼편 뒤로 가서 미사포를 쓰고 무릎을 꿇었다.
『나, 천주의 은혜를 의지하여, 오늘날 이 미사를 천주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무리와 만민의 영혼을 위하여, 듣기를 원하오니.....」
미사 전송이 교우들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신부가 복사를 양옆에 끼고 제단 앞으로 나왔다.
성가대가 나직이, 그러나 힘차게 엘레이션을 노래부르고 헌병이 헌작되었다. 그리고 이윽하여 거양성체가 시작되는 것이다.
쩌르릉.
요령이 울리자 신부가 경건히 허리를 구부리고 면주병을 머리 위로 치올린다. 교우들도 일제히 허리를 구부리고 경건한 기구에 묵묵이 잠겼다.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삼엄한 순간이다. 예수를 불러 일으켜 면주 안에 모신다는 것이다.
쩌릉 쩌릉 쩌릉.
요령이 울릴 때마다 교우들은 약간 고개를 들었는가 하자 다시금 허리를 구부리고 경건한 기구에 예수의 심령을 자기 안에 모시는 것이다. 자못 신성하고 삼엄한 순간이었다. 교우들의 얼굴엔 사욕과 악독은 까맣게 저버린 듯 고요한 정애가 흘렀다. 돌방구네의 표정도 다를 것이 없었다. 하루 바삐 영세를 받아야 한다는 열정이 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그네는 주일마다 이러한 미사를 통하여 천주의 성체가 과연 자기 안에 스며들고 있는 듯한 영광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사가 끝난 뒤, 성당 밖으로 나온 여회장이,
「이 달 배급이 나왔는데 틈나는 대로 타 가세요들.」
이리하여 교우들과 함께 배급 창고로 온 돌방구네는 자못 서운하였다. 오늘 역시 영세 교우들은 강냉이 가루를 두 말씩 주는데 영세를 안 받은 자기들은 한 말씩 밖에 안 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돌방구네는 뜻밖의 소식에 힘이 솟았다.
오는 부활절 날 영세를 준다는 것이다. 그 사이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오는 주일 안으로 찰고를 바치라는 것이었다. 곧 신부께 교리 문답을 외어 바치고 영세를 받겠는가 못 받겠는가 그 자질을 심사 받는다는 것이었다.
부활절까지는 앞으로 이 주일 이상이 남았다. 한 주일만 애쓰면 될 것이었다. 돌방구네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째 놈을 욱대기며 교리 문답을 외었다.
「종부는 무엇이뇨?」
「명오 열린 교우를 벙으로 인하여 죽을 위험 있을 때에 돕는 성사니라.」
「부부 지킬 의무는 무엇이뇨?」
「서로 사랑하여 동거하고 화목함이요 서로 신의를 지킴이니라.」
「성사 몇 가지 있느뇨?」
「일곱 가지 있느니 성세와 견진과 고해와 성체와 종부와 신품과 혼배니라.」
「그럼 엄니가 인자, 십이단 한번 외어 봐.」
「십이단 뭣을 욀거나?」
「망덕송.」
「망덕송.」
하고 돌방구네는,
「우리 천주여, 네 인자하심과 오 주 예수의 무한하신 공로를 이하여 네 허락하심과 같이 이 세상에서 내게 은총을 베푸시고, 후세에는 상생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더듬더듬 이렇게 외고 나서,
「어째, 맞지야.」
납죽한 입에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맞어, 그럼 또 소회죄경.」
돌방구네는 소회죄경도 다 외었다. 더욱 천주경, 성모경 같은 것은 문제없이 외었다.
그때마다 돌방구네는 자신만만하여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아낙네들을 찾아다니면서,
「워이마시 워이. 나는 인자 교리 문답을 모두 외네 워이.」
하고, 호도깝을 떨곤 하였다.
<저작권 보호와 관련하여 출판사측의 요청에 의해 중략합니다>
그냥 낫는다고 하니, 돌방구네는 말만 들어도, 곧 나아지는 것 같았다. 과연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정신이 맑고 몸이 가벼웠다. 그래 집에 와 닿자마자 베개를 모로 베고 이내 짐이 들어 버렸다. 아물아물한 꿈속에서 남편을 보았다. 까마득하게 넓은 강을 가운데 끼고 그네와 남편은 마주 서 있었다. 남편이 개미같이 작아 보였다 삽시에 그림자처럼 커 보이곤 하였다. 강 건너 저편은 망망한 폐허라 하였다. 그네는 꿈속에서도 죽은 남편이 어쩌면 저와 같이 멀쩡할까 하고 오히려 무심하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오른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강물에 던질 듯 말 듯 망설이고 있었다. 뭣이요오?-그네가 목청껏 부르짖었다. 목청껏 부르짖는 고함소리가 자기 귀에도 메아리처럼 들러 오는 것 같앗다. 순간, 개미처럼 작아 보이던 남편이 그림자 모양 확대되면서 육박해 왔다. 그리고 새까만 얼룩에 빨간 이빨을 드러내 놓고 손에 것을 펴 보이면서, 담배라고 하였다. 곰방대가 없어서 담배를 못 피운지가 벌써 여으레째라는 것이었다. 얼굴과 이빨이 변한 것은 전혀 담배를 피우지 못한 여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서 있는 곳도 사실은 육중한 기와집들었는데 여드레 전부터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이 어쩜 그렇게 무정할 수가 있느냐고, 만일 곰방대와 집을 새로 지어 주지 않으면 그만한 앙갚음을 하겠노라고 하였다. 순간 남편의 장대 같은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자기의 목을 졸라매려고 들었다. 앗! 돌방구네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잠을 깼다. 이마에는 땀이 송알송알 내돋치고 두 어깨가 빠개지는 것 같앗다. 돌방구네는 고함소리와 함께 남편의 꿈은 까맣게 져 버렸다. 그런 돌방구네는 점심때가 지긋하면서부터 다시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입술도 파삭파삭 탔다. 온 삭신이 무너지는 것처럼 자근자근 아리는 것이다. 아, 그, 즉일 놈의 의사가 주사를 잘못 놔 준 것이 아닐까. 혹이면 주사 기운이 벌써 다한 때문일까. 의사는 그냥 나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간호부도 그랬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사를 맞고 겨우 서너 시간이 지난 지금, 낫기는 고사하고 더욱 열이 불같이 올랐다. 의사와 간호부의 말이 거짓말같이 생각되었다. 그런 채 돌방구네는 병원에서 가져온 가루약을 한 봉지씩 세 차례를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남은 두 봉지를 한꺼번에 다 떨어 먹었다. 그래도 효험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돌방구네는 이튿날도 병원엘 갔다.
「주사를 맞아도 또 그냥 앓이드란 말이오. 무슨 병인가 똑똑이 좀 진맥해 주시요예.」
의사는 어제모양 얀 소독복을 입고 또 열을 재 보았다. 손맥도 짚어 보고 다리도 세워 보았다. 그리고 안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가지고 나와서 한참 뒤적이더니 역시 학질의 일종이니까 걱정할 것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곤 오늘은 손수 주사를 놓아주면서 계속해서 이삼 일 간만 병원에 더 나오라고 하였다.
「틀림없이 학질이오? 다른 모진 병은 아니요?」
「예, 걱정 마시오.」
「인자 정말 머리 몸이 안 뜨겁겠지라우?」
「괜찮을 것이오. 내일 이만 때나 한번 더 나오시오.」
하고, 주사기를 뽑은 의사는 간호부에게 어제의 가루약을 세 봉지 더 주라고 하였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돌방구네는 오늘도 집에 돌아온 지 겨우 두 시간만에 다시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보다도 더 앓이고 더 쑤시었다. 땀 한 방울이 안 나고 목까지 타오르는 것이다. 순간 돌방구네는 버럭 겁이 났다. 더 이상 의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주사 기운은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그럼 무슨 약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한약도 쓰고 양약도 써 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소용에 닿지 않았다. 보다 좋다는 병원의 주사약도 결국 이 모양인 것이다. 안되겠다. 이러다가는 큰일나겠다. 그런데 이날 밤중께 부터서는 몸이 급기야 반신불수가 되어 다리 하나를 제대로 일으킬 수가 없었다. 온 살가죽이 곧 찢어지는 것같이 당기고 머리골도 쪼개지는 것 같았다. 까무라치듯 정신을 잃었는가 하자 별안간 빈말을 하곤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돌방구네는 어서 일어나서 영세를 받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만은 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부활절은 앞으로 닷새밖에 안 남아 있었다.
이러한 이튿날 아침이었다. 벌써 해 그림자가 마당 가운데 와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열이 약간 내릴 무렵이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열은 조금도 내리지 않고 소날마저 꺼떡할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 정신을 든 돌방구네는 뜻밖의 사실에 깜짝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몸은 역시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어느새 십 리, 이십 리 밖에서 사는 세 딸들이 다 와 있는 것이다. 겁을 집어먹은 세 아들이 어머니가 까무라치는 것을 보고 아침 일찌기 각각 누님네 집으로 달려가서 한 누님씩 데리고 온 것이다.
「엄니, 정신 채리시오. 어디가 언제부터 편찮아서 이러시오.」
가운데 딸이 부르짖었다.
「오메, 엄니!」
작은 딸이 흐느끼는 숨 사이로 배앝았다.
「진작 좀 기별하지 않고.....이러다가 돌아가시면 어쩔고잉!」
부엌에서 미음을 끓이던 맏딸이 부지깽이를 든 채 뛰어들어왔다. 그런 세 딸의 시뻘건 눈시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데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딸들의 사이에는 꾀죄죄한 옷을 입은 세 아들이 넋 잃은 사람모양 누님들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왔냐들.」
돌방구네가 비로소 눈을 흘깃이 치뜨고 나직한 목안의 소리로 말했다.
「엄니, 진작 좀 알리제 그랬겠소!」
맏딸이 원망하듯이 어머니의 여윈 손을 잡았다.
「이렇게 정신을 놓을 줄은 몰랐다.」
「약도 쓰고 병원에도 가셨드람서라우?」
「그랬다.」
「그래도 효험이 없구만이라우이.」
「다 소용없더라.」
「그럼 엄니, 우리 가서 점이나 한번 쳐보고 올라우.」
「교를 믿는디 점은 무슨 점을 쳐야. 그만둬라.」
「그래도 혹 안다우. 우리 얼른 좀 갔다 올라우.」
가운데 딸과 작은 딸은 어머니의 간호를 언니에게 맡긴 채 급히 집을 나섰다. 두 딸은 집을 나서되 한 무당한테로 간 것이 아니었다. 제각기 영특하다고 믿는 자기 마을 근처의 무당한테로 따로따로 간 것이다. 그것은 한 무당의 믿지 못할 점괘를 피하고 보다 적확한 것을 알기 위함에서였다. 곧 한 무당의 말을 종합해 보자는 것이었다.
두 동생이 점을 치러 간 동안 맏딸은 미음 끓여서 어머니 입에 흘려 넣은 다음, 물을 데워서 얼굴을 씻어 준다, 동생들 밥을 지어 먹인다 하며 부산하게 싸댔다. 그 사이 잡수신 것인들 오죽하였으며, 동생들 역시 고생이 여북했으랴 생각됨에 뜨거운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한사코 어머니나마 오래까지 살아서 이 동생들의 때를 벗기고 한 세상 편히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점심때가 좀 지나서였다. 점을 치러 간 가운데 딸이 땀을 물 흘리듯 하면서 돌아왔다. 그런 딸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엄니, 아부지 상방을 없애겠소?」
쌔근거리는 숨 사이로 이렇게 뱉었다.
「오냐, 영세를 받을라고 한 열흘 전에 뜯었다.」
「어따! 어짤라고 상방을 다 없앴소예? 점을 친께 그것이 곧 드러납디다. 상방을 새로 지어 놓지 않으면 이 달을 넘기시기가 어렵겠다고 합디다.」
그러자 맏딸도 깜짝 놀라, 아버지의 상방이 모셔 있던 헷청으로 가,
「어따, 상방을 없애겠네이! 겁결에 들어오니라고 나는 그것도 짐작꼴로 봤네.」
순간 돌방구네는 이상한 직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요 앞서날 낮에 꾼 남편의 꿈이었다. 까맣게 잊었던 꿈이 지금 꿈속 모양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다. 곰방대와 집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고 두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졸라매려고 들던 남편의 얼굴. 앗! 돌방구네는 꿈속에서모양 고함을 지르면서 남편의 험한 얼굴을 지우고자 애썼다. 그러나 영세를 받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딸의 말 역시 굳이 곧이들으려곤 하지 않았다. 진정하게 교를 믿으면 마귀가 부접을 못한다고 천주교회에서 누누이 들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밖에서 이젠 작은 딸의 급한 목소리가,
「엄니.」
하면사, 선뜻 마룻장을 딛고 올라서더니,
「어마 엄니, 아버지 상방을 불살라겠소?」
맏딸이 황급히,
「아 천주교에 다니신다고 아부지 상방을 불살라겠담서라우. 언제 어디서 불살랐다는 것까지 소상하게 말합디다.」
「저런!」
이렇게 부르짖는 방의 두 딸의 얼굴에는 순간 안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당장 상방을 새로 꾸미고, 비손을 하지 않으면 내일을 넘기기가 어렵겠다고 합디다. 그래 바쁘다는 사람(무당)을 졸라서 지금 아주 같이 데리고 왔소예.」
과연 작은 딸의 뒤에는 그 마을 무당이 따르고 무당의 머리에는 흰 보로 싼 커다란 징이 이여 있었다. 그 안에는 쌀 담을 전대와 굿에 쓸 고깔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돌방구네는 눈을 감도 고요히 누워 있었다. 아무 말도 듣기 싫었다. 입도 열고 싶지 않았다. 다들 방에서 나가고 혼자 죽은 듯이 누웠으면 하였다.
무당과 세 딸들은 급급히 짚을 구해다 상방을 새로 짓고 고인의 곰방대와 신을 새로 사 왔다. 만사도 만들고 상복도 꿰맸다. 그밖에, 상장, 수줄, 요줄, 위패 등을 모조리 갖추고 나자 어느덧 해가 저물고 밤이 깊었다.
세 딸들은 부엌에서 떡 시루를 안치고 제삿 나물을 장만하였다. 명태 국도 끓이고 사잣밥도 지었다. 그런 한편에서 무당은 벌써부터 쌀바가지에 촛불을 꽂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징징징징.
징소리 사이사이에 무당의 넋두리는 신명을 울리면서 자지라지게 넘어갔다.
「我本逐鬼白馬大將軍으로 益受天命하야 玉皇上帝前去來時에 佩龍泉劍하야 剌山則山崩하고……(中略)……去來雜鬼雜色神은 速法千里遠法萬里唵唵隱隱如律 令裟婆呵....」
오방 신장을 부르는 갖가지 경문이 되풀이된 자정 무렵엔 또 긴 천지 팔양경이 시작되었다.
「佛說天地八陽神兄經者 夫日月星辰宿 明明示於陰陽四節.....(下略)......」
무당은 동이 틀 무렵에야 징소리를 거두고 쌀을 전대에 담았다.
이런 다음날부터였다.
돌방구네는 한결 열이 내리고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삭신도 풀리고 입의 침도 돌았다. 그리고 이삼 일 후에는 어렵잖게 기동까지 하게끔 되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돌방구네는 그저 신묘하다는 생각과 알 수 없다는 생각이 가득 찰 뿐이었다. 거짓말같이 믿고, 교회에서도 말리던 무당의 굿이 이처럼 효험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 그것은 진정으로 믿고, 또 교회에서까지 권유하던 병원의 약이 거짓말처럼 듣지 않은 것과 같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거짓말 같은 무당의 굿과 틀림없는 의사의 약은 서로가 끝까지 동조할 수 없는 동시에 또한 서로가 끝까지 배척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돌방구네는 이틀이 지난 뒤, 다시금 교리 문답을 옆구리에 끼고 천주교회로 나갔다. 비록 남편의 상방 때문에 완전한 영세 교우는 못될망정 우선 절반의 배급이라도 타서 어린 자식들과 굶어 죽기 않고 지내면, 그것이 그대로 천주의 은총이요 신의 가호라고 심심히 믿는 것이었다.
때마침 자욱한 안개 저편에서 부활절의 새벽 종소리가 땡-땡- 울려 왔다.
오유권 전남 나주(羅州)산으로, 1928년 8월 18일(음) 빈농의 집에서 태어난 그는 7세 때 마을 서당에서 《사략(史略)》등 한문을 수학했으며, 영산포 남국민학교를 졸업, 이어 영산포 서공립국민학교 급사로 일했다(1943~44). 이어 부산 체신리(遞信吏) 양성소 전화과 2부생으로 수료, 영산포 우체국으로 발령, 우체 업무에 종사했다. 20세 때 작가(소설가)가 될 뜻을 굳히고 독학으로 문학 공부에 전념했다. 6.25로 우체국을 그만두고 해병대에 입대, 부산에서 김동리(金東里) 씨를 만나 그의 지도(소설)를 받는 한편, 문인들과 교유했다. 그 후 해병으로 여수 동해부대에 복무했고, 이어 서부전선으로 이동했으며, 소설가 황순원씨에게 문학지도를 받았고 27세 때 카톨릭 영세를 받았다. 1955년 4월 단편 <두 나그네>와 12월 단편 <참외> 등으로 《현대문학》지에 황순원씨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으며, 이후 단편 <옹배기> <쌀장수> <대숲안집 고부(姑夫)>등의 토속적 세계를 즐겨 그린 단편들을 발표하여 문단의 각광을 받았다. 이어 단편 <삼인군상> <호식(虎食)> 등을 발표했고, 제 3회 전남 문화상 장려상을 수상(1957?12)했다. 수상 이후에도 그는 계속 괄목할 만한 단편을 남겼으니, 혼기를 앞둔 시골 처녀가 무고한 소문으로 파혼(破婚)에까지 이르는 일종의 풍속도인 <소문>을 비롯하여, 아들을 얻기 위해 투장(偸葬)소송을 일으킨 이른바 묘지(墓地)사건을 그린 단편 <혈(穴)>, 과학과 문명을 대조시켜 샤머니즘의 신비 세계를 긍정적으로 보여 준 <돌방구네>, 물질 문명의 침해를 항거하는 한 노인의 심경을 서정적으로 그린 단편 <기계방아 도는 마을>, 가난한 두 형제가 가난과 박대로 피해를 입는 모습을 그린 <가난한 형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역작은 현대 문학 신인상을 수상(1961)케 했고, 그와 더불어 그 나름대로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 가기에 이르렀다. 그 후 문학에 전념하면서 한편으로는 다시 우체 업무에 취직, 광주(光州)체신청에 근무했고, 이어 영산포 우체국, 서울 중앙 전신국, 영산포 우체국 등으로 전근했다가 1966년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자리를 물러났다. 펜클럽 작가 기금으로 《황토(黃土)의 아침》을 간행했고, 이어 문공부의 창작 기금을 받기도 했다. 1999년 타계.
해설 한국 정치의 폭력적 근대화
오유권의 소설은 농촌 현실을 직시하는 무제 의식이 두르러진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농촌 현실과 농민의 삶을 그 현장에서 체험한 결과를 바탕으로 꾸밈이 없이 그려냄으로써 그의 소설은 전후의 한국 문학사에 독특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
오유권의 소설은 보통 세 단계의 변화를 거친 것으로 평가된다. 첫 번째 시기는 초기 작품부터 「방아골의 혁명」이 쓰여지기 전까지의 기간으로 농촌의 현실을 세밀하게 재현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두 번째 시기는 초기 작품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한 이후의 작품군이 쓰여진 기간이다. 농촌의 현실을 6.25의 역사적 체험과 결부시킴으로써 과거의 연속선상에 놓인 현재의 의미를 묻는 방식을 통해 그의 소설적 세계가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6.25라는 역사적 체험을 농촌이라는 공간 속에서 형상화함으로써 한국 현대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특히 「방아골의 혁명」은 농촌 속에서 6.25가 어떤 체험의 양상으로 나타났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이다. 세 번째 시기는 두 번째 시기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관념적 해결의 태도를 넘어서 사회 비판과 근대성의 횡포에 관한 문제를 소설적 주제로 완성하기 시작한 시기에 해당된다.
그의 작품이 지닌 세 가지 특성은 한국 문학사에서 전후 문학의 한계를 극복해 가는 한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흔히 대부분의 전후 소설은 휴머니즘의 단계나 실존적 허무의식의 표현으로 굳어진 채 더 이상의 진전이나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오유권의 60년대 후반 이후 작품은 현실 비판과 역사 의식을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 투영함으로써 농촌 사회를 피폐화시키는 허구적 근대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는 데 주력한다. 관 주도의 개발 독재가 근대화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에서 오유권의 소설은 전통적인 농민의 정서를 이와 반대의 위치에 자리매김하여 그 소설 세계의 구도를 완성한다. 「돌방구네」는 비록 초기의 작품에 해당되지만 전통적 정서의 세계와 이질적 문화의 침입을 다룸으로써 근대라는 문화의 실체와 전통의 문제에 집착하는 그의 소설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후의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이런 특징은 한국의 근대가 지닌 파행적 속성에 대한 체험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유권의 소설에서 문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확인되는 구체적인 실체이고 동시에 현재를 지배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돌방구네」에서 가톨릭 교회와 남편의 제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돌방구네의 존재는 근대의 물질적 혜택과 전통적 정서의 세계가 실제의 생활 속에 심각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구적 근대화가 한국 사회와 민중들에게 가져다 준 인식은 물질적 혜택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근대의 영향력은 한국인에게 문화적, 정서적으로 인식되기보다는 물질적 이익 관계의 눈뜸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정서적 세계와 물질적 혜택은 계약 사회와 농촌 공동체 사회의 이질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이다. 문화적 혜택보다는 물질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근대적 사유 방식은 오유권의 후기 소설로 갈수록 그 갈등의 형상화가 좀더 치열하게 나타나며 그 갈등의 폭은 한국 정치의 폭력적 근대화 구호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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