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희망사진관’
「고추밭에 서 있는 여자」
아들 못지않게 큰일을 해달라는 어머니의 소망을 담아 종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여자가 있다. 그 여자는 학창 시절, 이름처럼 남자와 같은 모습과 행동을 해오다 주위의 오해를 받게 되고, 그것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완전한 여성이 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부드럽고 순종적인 여성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결국 사무원으로 취직하지도, 결혼을 하지도 못한 채 그녀는 서른일곱 노처녀가 되었다. 자동차와 보험 상품을 파는 일로 능력을 인정받은 그녀의 취미는 사진을 찍는 것. 그녀의 사진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노부모인데, 나이가 들어가며 남성과 여성으로서의 모습이 퇴색한 그들은 매일같이 서로 다투고 언성을 높이지만 한시라도 떨어져 있지 못하는 사이다. 한편, 노부부의 사진 외에 그녀가 이해에 꼭 찍고 싶은 사진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추밭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찍은 자신의 누드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부모님께 당당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그 여자는 사진에 미쳐 있었다. 욕실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의 알몸 여기저기를 속속들이 찍었다. 정구공 같은 유방과 뽕나무의 오디 같은 젖꼭지와 약간 곱슬인 흑갈색의 거웃 무성한 사타구니와 피조개 같은 연꽃과 백자 항아리 같은 엉덩이와 흰 물새 같은 손과 눈빛과 도톰한 입술과 거기에 서려 있는 사유들을 한 컷 한 컷 속에 정지시켜놓곤 했다. 그것은 싱싱한 아름다움의 세계, 세상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존재들의 소멸을 아쉬워하는 조울증 같은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사라짐에 대한 하나의 미련스러운 저항이었다.(pp. 1~12)
「내 서러운 눈물로」
백합이라 불리는 황지란과 동백으로 불리는 신기숙은 천관산 휴양림 옆에 있는 자그마한 분지의 삼나무 숲 속에 콘도처럼 자리한 천사미래원에서 생활하는 대리모이다. 엄격한 기준에 의해 선택된 이들은 회사의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최상의 태교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이번으로 세번째 대리모를 하고 있는 백합은 그것을 잘 수행하지만, 처음 대리모를 시작한 동백은 사사건건 회사와 부딪히며 자신의 뜻대로 행동한다. 그런 동백을 못마땅해하던 백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백의 열정에 점점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예정일이 다가와 나란히 아이를 출산한 그들은 출산 뒤에 공허하고 서러운 마음을 서로 달래준다.
백합이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애쓰는데, 태교사와 동백의 다툼이 자꾸 그녀를 현실 세계로 끄집어내놓곤 했다. 세상의 안과 밖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몸담고 있는 시공이 안인가, 그녀가 반가부좌하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만들고 있는 무념무상의 세계가 안인가. 동백이 가보고자 하는 바닷가 모래밭이 안인가, 몸담고 있는 감옥소 같은 황토방 통나무집의 시공이 안인가. 극락이나 천국의 시공이 안인가, 이승의 시공이 안인가. 우리의 중심이 안이고 그것의 둘레가 밖일 터인데, 우리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중심은 태아가 들어 있는 자궁인가, 가슴인가, 머리의 영혼인가. 영혼의 중심은 어디에서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의 바깥은 어떤 모양새인가.(pp. 100~101)
「꽃뱀」
어느 날 작가를 찾아와 고백할 것이 있다며 한 여인이 풀어놓은 이 이야기는 공숙희라는 이름으로 노처녀 행세를 한 안순남이라는 여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작가가 자신의 말투로 다시 쓴 것이다. 과부인 친구가 하는 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혼을 한 그녀는 선배 이혼녀를 통해 꽃뱀 노릇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접어들게 된다. 외사촌의 주민등록증을 훔쳐 공숙희로 살게 된 그녀가 첫번째로 찾은 곳은 지방의 한 다방. 그녀는 그곳에서 노총각을 꾀어서 4천만 원을 가로채고 도망을 나오지만, 그 돈은 고스란히 친구의 오빠가 가지고 튀어버린다. 그 후 결혼상담소의 전무를 통해 한 재벌 노인의 수발을 드는 일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노인의 진심 어린 사랑에 감동하여 그의 여생을 함께 하길 다짐한다. 그러나 노인이 죽고 나자 오히려 자신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전무 때문에 또다시 상처를 받고, 결국 전무에게서 도망친 후 장흥 보림사 앞에 가게를 내어 생활하면서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었던 재벌 노인을 위해 탑을 쌓으려 한다. 그때 우연히 가게를 찾은 손님 중에 예전에 만났던 노총각의 동네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녀는 다시 도망을 쳐야 할지 고민하지만, 이내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 날 새벽 법당으로 가서 재벌 노인을 위해 빈다.
“나를 위해 빌지 말고 너를 위해 빌어. 이때껏 지은 죄를 참회하고,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깨끗하게 살겠다고, 진실되게 살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해.”
그것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사과 먹을 때 사과를 즐겁게 하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지 않니? 내 배를 부르게 하고 내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먹지 않니? 그렇게 나 스스로를 즐겁게 하기 위해 빌고 또 그렇게 진실되게 살면 너의 몸에서 금빛이 번쩍거리게 되고, 그 빛이 저승에 있는 내 몸에까지 비쳐질 것이다. 그 빛이 내 몸에 비쳐지면 나는 극락으로 날아가게 될 것이야.”
그 어른의 목소리였다. 아, 하고 탄성을 지르면서 그녀는 엎드려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p. 170)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친구인 김찬영이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나’와 아내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작가보다 두 살 위인 김찬영은 무당인 부모를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동네로 이사를 왔다. 전학을 온 첫날부터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권력을 가지고 있던 반 아이의 기선을 제압할 정도로 무서울 것이 없었던 그가 점점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혼한 전 부인과 아들조차 그가 남긴 재산 외에는 관심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송장처럼 몸의 모든 힘을 빼고 바다의 부력에 몸을 맡긴 채 반듯하게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서 가끔씩 두 손을 가오리의 지느러미처럼 약간씩 까딱거려 방향만 잡아주는 송장헤엄을 믿고 1천 5백 미터 거리의 바다를 헤엄치기도 했던 그는, 한때 동창회에서 맹물처럼 송장헤엄을 치는 듯 보였던 여자를 만난다고 작가에게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음식도 거부하고 있는 지금, 송장헤엄을 치고 있는 것은 바로 그였다. 작가는 오랜만에 찾은 그의 집에서 모권 세상의 바다에서 송장헤엄을 치다가 간 나그네새라고 그를 추억한다.
이제 그는 드높은 죽음의 성을 축조하고 있었다. 그 성이 완성된 다음에는 그 속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혼자만 아는 방랑과 낭만을 즐기려는 것이다. 아니, 송장헤엄을 즐기려는 것이다.
흑갈색 곰팡이가 핀 듯한 그의 얼굴 살갗을 내려다보면서 그에게서 온 편지들을 떠올렸다. 그에게서는 잊힐 만하면 한두 해 만에 편지가 한 장씩 날아왔었다. 시모노세키 항에서 날아오기도 하고, 시드니 항에서 날아오기도 하고, 상해 항에서 날아오기도 했다. 그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그의 낭만과 방랑을 동경했다.(pp. 198~99)
「은빛 하늘」
절실마을 독거노인 버들댁은 설을 쇠러 오는 손자를 위해 바다로 나가 석화도 따고, 방앗간에서 떡도 빼고 가루도 빻고, 나물도 무치고, 호박떡도 해놓았다. 서울에서 자동차 정비 공장에 다니는 손자는 장차 국가대표 권투 선수를 꿈꾸며 도장에 다니고 있는데, 몇 달 만에 한 번씩 내려와 면에서 주는 버들댁의 보조금을 빼가곤 했다. 날이 어두워지도록 손자가 오지 않자 걱정이 된 버들댁은 마을 밖까지 마중을 나가 손자를 맞이하고, 이것저것 마련한 음식들을 꺼내놓지만, 손자는 밥을 먹고 왔다며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돈만 챙겨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난다. 그러나 버들댁은 손자의 차 꽁무니를 손자의 얼굴인 듯 예쁘다고 생각하며 멍히 바라본다.
손자가 차에 올랐다. 버들댁은 손자를 더 말리고 붙잡을 수가 없었다.
“몇 달 뒤에 오께 돈 모아놓소이.”
유리창을 내리고 이렇게 말한 다음 손자는 휭, 차를 몰고 가버렸다. 가다가 유리창을 올렸다. 금방 깎은 곶감 색깔의 차였다. 그 차는 새빨간 햇발이 어룽져 있는 바다를 향해 열린 길로 들어섰다. 버들댁은 그 차의 꽁무니를 멍히 바라보고 그 자리에 박힌 듯 서 있었다. 그 꽁무니가 손자의 얼굴인 듯 예뻐 보였다.(pp. 213~14)
「시인과 농부」
시인이 사는 토굴 아래쪽에 우사 두 채가 있었다. 다행히 그 우사에서는 소를 키우고 있지 않았다. 만약 그곳에서 소를 키운다면 오물 냄새와 파리 떼가 작가의 토굴로 몰려들 것이었다. 어느 날, 그 우사의 주인이 시인을 찾아와, 우사를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시인을 생각해 그러지 않았는데, 그대로 두고 있을 수 없어 철거를 하고 싶으니 철거비용을 대달라는 말을 전해왔다. 시인은 기껏해야 백만 원 정도의 돈이 들 것으로 생각하고 흔쾌히 허락을 했다. 그런데 우사 주인이 뽑아온 견적은 3백만 원이었다. 한번 한 약속이므로 시인은 그 돈을 지불했고, 그 후 여기저기서 시인이 우사 주인의 봉 노릇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소식을 들은 면장이 그런 일이 다 있냐며 시인을 찾아왔다. 어처구니없어 하는 면장에게 시인은 우사를 철거한 후 탁 트인 시야에서 맛보는 시원함은 3백만 원이 아니라 3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며, 그와 함께 시인과 농부의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한 면장, 강화도에 사는 함민복이란 시인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노래했는데, 이 세상에 그러한 아름다운 경계라는 것이 있을까?”
“우사 주인이 시인의 토굴 앞에 지은 우사를 헐어내줄 테니 시인보고 헐어낼 비용을 달라고 하자, 그 시인이 두말 않고 그 비용을 건네준 사건에서도 꽃이 피는 경계를 찾을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 경계에 피는 꽃? 경계에서는 정말 꽃이 피기나 하는 것일까? 미안하지만 경계에서는 꽃이 피기가 아주 어려워. 우사 주인의 삶이 공격적인 남근의 삶이라면 시인의 삶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우주적인 자궁의 삶이네. 그런데 그 두 삶의 경계에 어떤 꽃이 피겠는가.”(pp. 228~29)
「산 목련꽃」
작가가 이 마을에 이사 온 날, 한 청년이 건너편 산언덕에 있는 집 댓돌 앞에서 당장 죽어버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본다. 알고 보니 소리를 지른 것은 영기이고 산언덕 위의 집에 사는 사람은 그의 작은할머니였다. 그녀는 영기네 할아버지의 애첩으로 무당이었다. 영기네 할아버지가 그녀를 데리고 살면서 영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영기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영기의 삶도 순탄치 않았는데, 영기는 그것이 작은할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포악을 부린 것이다. 영기는 작은할머니의 치성으로 점차 정신이 온전해졌지만, 암에 걸려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어느 날, 영기의 작은할머니가 작가의 마당에 찾아왔다. 꽃구경을 하러 온 그녀는 꽃에게 거울을 비추어주며 꽃들과 대화를 했다. 꽃에게 인격을 부여하지 않았던 작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크게 깨닫고 그녀의 꽃에 대한 생각과 말과 믿음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다. 그리하여 둘 사이에는 ‘명다리’가 놓이게 된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박수와 신딸들이 치러준 장례가 끝나자, 그녀와 함께 보았던 산 목련꽃이 추락한 새들의 넋처럼 떨어져 내린다.
우리 사이에 명다리가 놓인 이후 나는 꽃들의 말을 들어보려고 애를 썼고, 부지런히 꽃들의 얼굴을 거울로 비춰주곤 했다. 거울이 없을 경우에는 내 눈동자를 거울로 삼아 그들의 얼굴을 비춰주며 찬탄하곤 했다. 물론 그들의 꽃술과 씨방에 코를 대로 킁킁 향기를 맡기도 했다. 그것은 그들을 오르가슴 같은 환희 속에 빠져들게 하는 대접일 터이므로.(p. 247)
「해산마을 마이크」
마을 앞바다에서 정치망 어업 사업을 하는 정호술 씨는 목소리가 남다르게 크고 컬컬하고 우렁차서 마이크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가 어망 손질이 걱정되어 바다로 나갔다가 밀물로 불어나는 바닷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맞는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던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까지 떠올리며 살기 위해 목청껏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우렁찬 목소리 덕에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안도와 기쁨으로 그는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큰 잔치를 벌린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하고 이를 악물었다. 말대를 단단히 붙잡은 채 여닫이 연안 모퉁이의 부두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곳을 두 사람의 그림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배창자와 목청과 아구창에다 젖 먹을 때의 힘까지를 모두 모으고 힘껏 외쳤다.
“사람 살리시요오!”
그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버렸다. 새까만 절망이 그의 눈앞을 가렸다.
키 작달막한 아내의 흰 얼굴이 떠올랐다. 바다와 시장 바닥을 오가며 살기는 하지만 아내의 얼굴은 검게 그을지 않았다. 쌍꺼풀진 눈에 금빛 나는 자그마한 귀걸이를 하고 입술을 약간 붉게 칠한 그의 아내는 아직도 사십대 중반 같은 미모였다.(p. 281)
「희망 사진관」
서울의 강남에서 일식집을 차리는 것이 꿈인 김경호의 부부는 명절을 유독 기다리는데, 그 이유는 바로 김경호의 처가에 잘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장인은 알부자로 소문이 나 있었고, 해서 김경호를 비롯한 사위와 딸 들은 유산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서로 장인과 장모에게 아부 아첨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가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가족법이 계정되었다며, 막내딸과 사위가 아들을 둘 낳으면 한 아이에게 장인의 성을 붙이겠다고 나섰다. 이에 질 수 없는 다른 딸들도 자신이 아들을 낳아 아버지께 드리겠다며 나섰고, 먼저 큰딸이 임신을 했으나 유산을 하고 만다. 그 후 경호의 아내가 인공수정까지 감행하여 임신을 했지만 큰딸이 업둥이를 데려와 그 아이를 친정 호적에 올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이들 사이에는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이 빚어진다. 이에 장인과 장모는 사촌 조카를 양자로 삼겠다는 충격적인 결정을 자식들에게 전했고, 유산 대신 그들에게 ‘희망 제작소’에서 받아왔다는 토정비결을 읽어준다.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은 어떻게 가꾸어나가야 할지 알려주는 내용이었고, 다 듣고 나서야 그들을 서로 꿈은 이루어진다며 손바닥을 부딪친다.
세배를 마치고 떡국에 음복주 한잔씩을 걸치고, 딸과 가위와 순철이 내외와 더불어 편을 갈라서, 복 윷놀이를 하려 하는데, 장인이 책상 서랍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저기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저 속에 유산 상속 문서가 들어 있지 않을까.’
모두들 긴장하여 그 봉투를 바라보았다.
‘그래, 우리 아버지는 내 팔자를 바꾸어줄 것이다.’
한씨 성을 달아줄 늦둥이를 키우고 있는 공녀는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우둔거렸다. 업둥이를 키우고 있는 부산 언니는 그 언니대로, 설렁탕집을 하고 있는 광주 언니, 배 농사짓는 나주 동생, 횟집 하는 장흥 동생, 녹차밭 2천 평에 목을 걸고 있는 보성 동생, 초등학교 선생인 대전 동생은 또 그들대로 가슴이 꽃 무지개 같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p. 318)
「나무의 길」
작가는 어느 날 산책을 나가다 마을 사람들이 바다로 나가는 농로를 자신의 밭이라며 막아버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작가는 바로 그 길에서 밭주인에게 화를 내고 면장을 통해 농로를 확보했지만, 결국 그 길은 소로 정도로 바뀌고 만다. 산책을 하며 시작된 작가의 사유는 자신이 사는 토굴로 돌아와서까지 이어져, 토굴 마당에 붙박이로 서 있는 거구의 나무와 관념적인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그늘에 들어서면 거침없이 길에 대해 설법을 하는 그 나무가 못마땅하여 작가는 자꾸 나무에게 시비를 걸듯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작가의 사유가 깊어지고 뭔가를 깨달아 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며칠 전, 그 혹독한 더위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바지락들이 있어 파왔노라고 아내가 말했다. 어차피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싸움이다. 바지락은 더위와 싸우고, 적조와 싸우고, 천적인 비트리고둥과 싸워야 한다.
나도 부정맥과 싸우고, 감기와 싸우고, 피부를 침범하는 흡혈 벌레들과 싸우고, 토굴 안으로 기어드는 지네와 싸워야 한다. 좋은 상품가치로 살아남기 위하여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 하고, 우주의 교통 교감을 통해 좋은 소설을 써야 한다. 내가 사유하면서 밟고 다닐 나의 길을 확보하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 그것이 내 길, 내 운명이다.(p.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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