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Saens, Camille (1835-1921)
Havanaise (for Vl. Orch.) op.83 (1888)
생상스는 19세기-20세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의 음악 진흥에 힘쓴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물론 피아니스트, 지휘자, 평론가, 시인, 화가, 나아가서는 문학 방면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사람으로 국내외에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12세 때 파리 음악 원의 오르간 과에 입학하였으며 16세 때에는 제1교향곡을 발표하였습니다.
17세 때, 성 마리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취임하였으며 21세 때의 제2교향곡은 성 세실리아 협회의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26세 때부터 4년간 니데르메이르 종교 음악 학교의 피아노 교수로 있으면서 포레, 메사제, 지구와 같은 유능한 제자를 육성하기도 했습니다.
1879년에 유명한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를 발표했으며 그 후 그는 10여 편의 오페라와 8편의 극 음악을 작곡하였습니다.
한편 그는 국민 음악 협회를 조직하여 프랑스의 새로운 음악 진흥에 전력하였으며 젊은 세대의 작곡가들을 많이 세상에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이 때 기악곡을 많이 작곡했는데 지금 널리 알려진 곡은 <파에톤>, <죽음의 무도>, <헤르쿨레스의 청년 시절>, 피아노 협주곡 제4, 5번, 바이올린 협주곡 제2, 3번 그 밖에 실내악곡 들을 많이 썼습니다.
바야흐로 그의 명성은 자자했으며 그는 자작의 피아노 협주곡을 가지고 독일,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지를 순방하였습니다.
1906년에는 아메리카를, 1916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여 파나마 태평양 박람회에 참석했으며 남미 등지도 방문했습니다.
86세 때 알제리를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애석하게도 객사하였습니다.
그의 조국은 그의 공로를 참작하여 파리에서 국장으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그는 독일의 고전과 낭만파를 잘 이해하였으며 풍부한 음악성으로 밝고 아름다운 구성 미를 이루는데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생상스의 음악 기법에 있어서는 베를리오즈, 슈만, 멘델스존, 바그너 등의 영향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고전주의적인 우아한 균형과 세련미가 있습니다.
로망 롤랑은 말하기를 “생상스의 예술은 라틴적이어서 명랑하다. 정밀하고 간소하게 표현되어 극히 우아하다. 부드러운 화성, 흐르는 듯한 조 바꿈, 넘쳐 흐르는 청춘의 희열은 어디까지나 글룩, 모짜르트 등의 고전의 기초 위에 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면과 함께 그의 보수적인 한계도 인정 하여야 합니다.
이제 프랑스의 새로운 국민 음악의 창조는 선구자로서의 프랑크, 생상스를 거쳐 인상주의적 세대의 등장을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작품 번호 169를 헤아리는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Havanaise (for Vl. Orch.) op.83 (1888)
하바네라 혹은 하바네이즈라고 하는 이 곡은 그가 52세 때인 1887년에 작곡하였습니다.
하바네라는 4/4, 2/4박자의 여유 있고 무게가 있는 동양적인 색채가 구비된 스페인 무곡입니다.
이는 본래 니그로가 아프리카로부터 쿠바 섬의 하바나로 가지고 돌아와 오늘의 명곡이 되어 스페인 전국에서 유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생상스의 <하바네라는>는 이 곡의 형태와 곡취를 살려 바이올린의 표현력을 종횡으로 구사하여 그가 즐겨 했던 동양 풍의 관능적인 분위기를 조성시켜 만든 작품입니다.
이는 그의 <서주와 론도 카프릿치오>와 함께 그의 통속적인 바이올린 곡으로 널리 아려져 있습니다.
스페인의 정조가 짙은 테마는 그의 세련된 필치로써 그의 프랑스적인 예리한 수법을 가미 시켜 우아하고 정교로운 색채가 깃든 걸작을 남겼습니다.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것 외에 피아노 반주로 된 것도 있습니다.
E장조 2/4박자의 특색 있는 반주의 리듬을 따라 곧 바이올린이 부상하여 아름다운 하바네라의 테마를 연주합니다.
여기에 테마는 3개가 있는데 그것은 감미로운 민요이며 사랑의 노래입니다.
제2테마는 호소하듯이 우수에 차 있고 제3테마는 폭 넓은 영탄적인 것입니다.
이 3개의 테마가 그 모양과 음정 그리고 진행 (Mouvement)을 바꾸어 가면서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잘게 새기는 음이 되어 그 사이에 재삼 카덴짜 풍으로 원형을 삽입합니다.
Henryk Szeryng (1918-1988 G.)
1942년 폴란드 난민 이주 계획의 교섭을 위해 멕시코로 건너가 그대로 그곳에 머물러 46년에 멕시코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46년부터 멕시코 대학에서 교육활동도 했습니다.
7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제지옹 도뇌르 훈장을, 잘스부르크의 모차르테움 음악원으로부터 모차르트 메달을 받았습니다.
레퍼토리는 매우 넓지만 특히 바흐의 부반주 바이올린곡의 해석은 정통적이며, 그런 탓에 레코드도 높이 평가되어 바흐 연주의 기본적인 모범 연주로서 지금도 많은 팬에게 애청되고 있습니다.
또한 1954년에 피아노의 류빈슈타인과 만나 이후 듀오 소나타와 첼리스트 푸르니에를 덧붙여 트리오를 하게 되며, 그 듀오나 트리오도 레코드로 녹음되어 애청반이 되었습니다.
피아니스트 헤블러와 공연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도 명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Orchestre National Del'Opera de Monte-Carlo
Saint-Saens, Camille (1835-1921 F.)
Violin : Henryk Szeryng (1918-1988 G.)
Orchestre National Del'Opera de Monte-Carlo
director : Edouard Rimool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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