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아침저녁 한기에 오소소 돋는 소름과 함께 앞집 과수원의 검붉은 감나무로 시작된 가을이다. 동네 아짐이 놓아두고 간 댓돌 위 노오란 탱자 바구니에서 비로소 가을은 무르익는다.
어느 한 날 햇살 따사로운 남향마루에서 석류엑기스, 모과차 담그느라 분주하고 서리 오기 전 호박 갈무리도 서두르는 등, 사방에 볏짚 태우는 안개빛 들연기 자욱하면 별반 거둘 것 없는 나도 덩달아 바빠지는 절기, 그 틈틈이 책 당겨 읽기도 가을이 주는 큰 즐거움이다.
끝없이 나뭇잎이 떨어진다. 멀리서처럼
넓은 하늘의 꽃밭이 시들은 듯
거부하는 몸짓으로
밤마다 무거운 지구가 떨어진다.
모든 별로부터 고독 속으로
우리는 모두 떨어진다. 보라 이 손도 떨어진다.
눈길을 모아 주위를 보라. 모든 것에 낙하가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꼬옥 받치는 이가 있다.
무한히 정다운 두 손으로.
남도의 서정시인을 기리는 기념사업회의 신임회장 취임식 초대장이 배달된 때문인가. 바이런의 ‘가을’이 오늘따라 절절이 와 닿는다. 낙엽도 생도 모두 낙하하여 사라지는 처지라는 걸 난들 왜 모르랴. 다만 떨어지는 걸 꼬옥 받쳐 치올리는 손길은 어떤 의미일까 곰곰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세월 속 묻혀 사라지는 것 복원하기도 그 아름다운 손길 중 하나이리라. 어느 새 4대 회장 취임에 이른 시인의 기념사업회에서는 새 각오로 ‘이사진도 전국적인 규모로 하되 교수, 사업가, 시인, 전 국회의원, 시전문지 발행인 등 사회활동의 진폭이 큰 인사들로 구성될 예정’이란다. 한 면 가득 할애한 그 지역신문의 보도가 솔직히 부럽다. 마침내 내년 완공을 앞두고 있는 백호 임제 선생님의 기념관에 대한 이런저런 염려 탓이다.
예술이란, 특히 문학이란 역사 속 상처 받고 억울히 사라져간 이를 불러내 그의 상처를 쓰다듬고 위무해 주는 행위라 하지 않았던가. 후손에게 유언 삼아 남기신 ‘울지 마라’, ‘물곡(勿哭)’의 진정한 의미는 백호 임제 선생님의 당신의 큰 뜻 제대로 펼치지 못한, 편협된 세상을 향한 억울한 심사의 토로다.
문무 겸비한 호방한 기질에 ‘무어별(無語別)’ 같은 시에서 엿보이듯 섬세한 표현도 뛰어났기에 국내는 물론 멀리 일본에서도 그 분의 문학에 심취한 이가 적지 않다. 이른 바 백호선생마니아들은 오백년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그 분 떠받들기를 주저 않는다.
그런 분의 기념관 건립이 너무 지체된 감 없지 않지만 행여 백호임제 선생님이 작은 강변 마을의 시인으로 머물까 싶은 기우런가? 이 가을 드높아진 밤벌레 소리에 더더욱 잠 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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