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브레
몇 번인가 마을 모임에서 마주한 적이 있으니 생면부지는 아니다. 하지만 꼭 만나 상의 드릴 말씀이 있다는 그 분의 전화는 뜻밖이었다. 만남의 요지는 나를 만나 사업구상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단다. 적잖이 당황하고 한편으론 황송했다.
그러고 보니 사십 대 이후 지금까지 나는 대 여섯 사람으로부터 그런 류의 부탁을 받았던 것 같다. 거의 초면에 가까운 사람이 대부분이요, 나머지도 친하기 보다는 그저 스친 짧은 인연들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리라 짐작될 뿐, 그들에게 내가 어떤 명쾌한 답변을 해 주었는지 기억은 없다. 이번에도 성의를 다해 조언을 해준 대가였을까. 답례용 커피 한 잔 변변히 대접 못했다며 내민 샤브레 한 통이다.
EBS 토요명화를 보며 딸과 자주 먹었던 추억의 과자 아닌가. 그런데 부드러운 비스킷과 함께 마시던 달콤한 커피는 언제인가부터 멀어졌다. 매운 것도, 짠 것도, 특히 단 것은 갈수록 싫어진다. 그저 담담한 맛의, 할 수만 있다면 가미가 배제된 천연 그대로의 것이 좋다. 예외라면 지독히 진한 분량에 우유와 향을 조제해 마시는 커피였다. 오늘 실로 오랜만에 샤브레 한 조각과 더불어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만감이 교차한다.
커피에서 엿보이는 나의 성벽(性癖)이랄까. 쨍!!! 마시는 순간 머리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빠개질 만큼의 농도 진한 커피는 거의 사약에 버금갔다. 그래야만 명징하게 개이는 머릿속인데 어쩌랴. 독특한 취향의 커피 한 잔에 나의 유별난 성격이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제 주장을 굽히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유배지에서 약 사발을 들이키고 마는 단호함, 외골수 기질 말이다.
싫은 일은 죽어도 거부다. 대신해 내가 좋아 결정내린 일은 누가 뭐래도 사뭇 저돌적 기세다.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한 추구, 그 신념은 강하여 된다, 되어야지, 되고야 말 것이다 확신하는 것이다. 어느새 나의 이 확약한 태도가 굳어 감히 내 능력 이상의 것을 남에게 기대하게 한 것일까.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그 멋들어진 개성을 만들어 냈는가라는 물음에 명배우 케리 그란트는 대답했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흉내 냈다. 마침내 그 사람이 될 때가지 흉내 냈다 결국 그 사람이 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말 빌지 않더라도 나 또한 내가 완성시킨 지금의 내 얼굴이 좋다.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아 뵈는 단단함, 그 차가움을 완화키 위한 장치일까. 네 스푼 수북한 커피에 추가하는 반 컵 분량의 우유와 헤이즐럿향이다. 이른바 부드러움, 환(幻)을 조합, 덧칠하는 중이랄까.
네 숟갈의 가루커피는 언제나 깨어있고픈 자성(自醒)의 염(念)이요, 반 숟갈의 헤이즐럿 향은 그러면서도 꿈꾸고픈 몽환(夢幻)이다. 나머지 잔의 반 넘게 따르는 우유는 사람에 대한 유연함의 상징이려니, 그렇다면 오늘 이 샤브레 한 조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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