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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연극

극단 '예인방' 연극 '마요네즈' 23일까지 나주시민회관

by 호호^.^아줌마 2009. 12. 14.

 

 “모녀갈등 ‘마요네즈’로 푸세요”

 

모성애와 욕망 상징한 연극 ‘마요네즈

극단 ‘예인방’ 23일까지 시민회관에서


당신이 여자이고 엄마가 있다면 당신은 엄마와 얼마나 자주 싸우고 또 화해하는가? 엄마에게서 배신을 당하고 딸에게서 극도의 미움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모녀간의 갈등을 축으로 애증의 가족관계를 그린 연극 '마요네즈'가 지난 12일 개막, 23일까지 나주시민회관 특설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연극 주제인 ‘마요네즈’는 음식을 만드는 재료로 ‘모성애’이자 예뻐지려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이번 작품은 아파트 거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엄마와 딸이 벌이는 설전이 연극 대부분을 차지하고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이어지는 모녀의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헌신과 희생의 함축적인 의미로 요약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파괴하고 배신하는 전례 없는 새로운 형태의 어머니상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가족과 모성애라는 익숙한 소재와 형식 속에 새로운 통찰과 문제의식을 담았다.

 

1999년 김혜자와 고(故) 최진실이 주연을 맡아 영화로 화제가 된 작품으로 “어머니는 더 이상 헌신과 희생의 대리물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역설적으로 표현해 여성의 시각을 통해 붕괴해가는 우리 시대 가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예술극단 ‘예인방’이 주관하고 GO ART 문화사업단이 기획한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아정(딸)역의 임은희 씨와 엄마역의 김유라 씨가 혼신의 연기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공연문의 061-332-6848)>

 

- 아정 : 임은희 / 예인방 수석단원, 연극제 여자연기상 7회수상

         (불효자는 웁니다, 피고지고 피고지고, 서툰사람들, 무어별 외 다수)


엄마처럼 예쁜여자가 되고 싶었어...


- 엄마 : 김유라 / 연극배우, 탈렌트

    (전설의 고향, TV문학관, 사랑과 전쟁, 취화선, 무어별 외 다수)


“ 니도 니 같은 딸 한 번 낳아봐라 ”


이 책은 말이다..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모나마 평생이 불행하다 이 한가지를 말하라고 씌여진기다 알겄나?

(아정이 중학생이었던 시절, 엄마가 아정에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제를 이야기하며)

 

      엄마와 딸 더 이상의 강적은 없다.


당신이 여자이고 엄마가 있다면 당신은 엄마와 얼마나 자주 싸우고 또 화해하는가? 엄마에게서 배신을 당하고 딸에게서 극도의 미움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연극 <마요네즈>에 등장하는 모녀, 딸 같은 엄마와 엄마 같은 딸이 만나 울고 웃고 상처를 드러내며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워한다. 엄마에겐 이루지 못한 자신만의 숙원이 있고 딸에겐 껄끄러운 가족사가 있다. 잊는다고 잊혀질까? 용서한다고 용서가 될까? 가족 사이엔 말로써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울만큼 울어야 후빌 만큼 후벼내야 조금은 숨통이 트이듯 어머니와 딸은 꺾이지 않는 대나무처럼 극중 내내 질기게도 대치한다. 이들 모녀의 비밀서런 이야기를 엿듣다 보면 당신에게도 흡사한 기억이 떠올라 흠칫 놀라게 될 것이다. 능청스레 지방 사투리를 써가며 아정(딸)과 싸움을 해대는 엄마는 백치미에 가까운 투정과 응석을 탁월한 연기로 소화해내고 있으며 그녀(엄마)의 상대역 아정은 미모와 이성에 걸맞지 않는 폭발적인 감정몰입으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머리에 마요네즈를 발라 쉰 냄새가 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삶을 거부하는 딸의 모습을 연기하는 두 배우의 절묘한 앙상블!!


엄마와 딸의 연극 <마요네즈>를 통해 온전한 사랑과 가족관계, 그리고 기존의 삶에 대한 진지하고 섬세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작가소개 및 공연 의도

  

작가 전혜성은

제 2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가로서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영화잡지의 기자를 거쳐 극작가로 활동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마조네스의 꿈> 등의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했습니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2년만인 1997년 장편소설 <마요네즈>를 완성했습니다. 구성의 치밀함과 인물 창조의 탁월성, 소설의 진정성에 대한 강한 집착과 더블어 소설문학의 정수에 다가서려는 작가의 결기와 노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마요네즈>는 다른 기성작가들의 응모작을 제치고 제2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2002년에는 장편 <트루스의 젖가슴>으로 대산창작기금 수혜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공연의 특징과 줄거리


한국영화의 주류가 20대를 위한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였던 1990년대 말에 탄생한 <마요네즈>는 당시로는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역전된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고 모녀간의 전쟁과 화해를 두 명의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이끌어 가는 한국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여성 버디무비(Buddy Movie)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연극의 독특한 점은 아파트 거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일이 벌어지고 그 공간을 배경으로 엄마와 딸이 벌이는 설전이 연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모녀의 대화가 극의 긴장도를 높여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딸 아정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앞으로 닥칠 생활의 궁핍함을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과 죽어 가는 아버지를 구박하면서 얼굴에 콜드크림을, 머리에는 쉰 냄새가 나는 마요네즈를 바른 엄마에 대한 혐오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삶을 거부하는 딸의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딸의 아파트에 찾아든 엄마는 딸이 잊고 지내던 아픈 과거를 건드린다. 엄마에 대한 환멸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 딸은 엄마의 존재가 귀찮게만 느껴진다.


 아정이 책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책을 쓰면 돈을 많이 번다더라면서 치아를 새로 해 달라, 밍크코트를 사 달라 떼를 쓴다. 아정은 자기 형편은 전혀 생각해 주지 않고 어린애처럼 요구만 늘어놓는 엄마가 밉기만 하다. 아정은 엄마의 그 이기적인 모습에 분노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대화를 통해 첨예하게 드러나는 갈등!


 아정은 일 관계로 늦게 오게 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온 아정은 목욕탕에서 물을 틀어 놓은 채 쓰러져 있는 엄마를 보고 깜짝 놀란다.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고 발버둥치지만 엄마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아정은 뭔가 고약한 냄새를 맡게 되는데 그건 바로 엄마가 머리에 바른 마요네즈 냄새였다. 그 순간 아정은 온 몸에 힘이 빠져 엄마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머리에 마요네즈를 뒤집어쓰고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엄마의 모습은 잊고 지냈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한 참의 다툼이 잇은 후 두 모녀는 서로 숨겨왔던 마음을 터놓는다. 아정은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마음속에 남아있던 엄마에 대한 애정, 동경, 연민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렸다며 “엄마, 나는 엄마가 없어”라고 외치고 만다. 
 

이 연극에서 딸, 아정에게 엄마란 언제나 다른 어머니들과는 다른 종류의 개성을 소유한 독특한 존재였다. 엄마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에 중독된 여성이었다. 때로는 남들에겐 우스꽝스럽지만 자신에게만은 진지하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와 자신을 동일시했는가 하면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를 정신적인 남편으로 선망하기도 했던 존재였다.


  딸에 대해선, 언제나 재능 있고 똑똑했던 그 딸이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고 성공적인 미래를 성취하리라 극성스레 미망했던 부담스런 엄마이기도 했다. 그 욕망들은 불행히도 엄마 자신의 내면적 성숙이란 정화조에 걸러지지 않은 채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이지적이고 교양 있고 귀감이 되는 것에 탐닉했던 어린 딸에겐 설득력 없는 모습이기만 했다.


딸은 그런 엄마의 욕망이 자신에게 강요되거나 현시될 때마다, 거북살스러움을 넘어 일종의 낯섦과 이물감까지 느끼면서 엄마에 대한 연원 깊은 편견을 형성해 왔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상극이었던 아버지와 엄마가 불화하며 살았던 기억들 또한 성년이 된 뒤까지 딸의 가슴 한 켠을 납덩어리처럼 무럽게 내리누른다. 그렇게 성장한 딸에게 이제 약물에만 의존하는 낡고 병든 엄마, 그것도 아직 젊은 날의 미망에만 사로잡혀 있는 엄마와의 느닷없는 동거란 너무 새삼스럽고 불편하기 만하다.


엄마가 오직 의탁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찾아온 그 시점, 딸은 엄마와는  상극적인 특징을 가진 '보험여왕'이라는 어떤 성공한 여성의 자서전을 대필하던 중이었다. 여왕은 오직 자식과 가정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함으로써 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성취한, 딸의 엄마와는 대립항적인 존재이다.

딸은 한 손으론 '헌신적 모성'의 상징과도 같은 그런 여왕의 일대기를 쓰면서 다른 손으론 '자기중심적 응석꾸러기'로 변해버린 엄마의 영락한 현실을 거두어내야 하고, 그런가 하면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열패감으로 노이로제 상태가 된다.


생의 마지막 보상처럼 아직도 끈을 놓지 못한 큰딸에 대한 과잉기대와 끊임없는 배반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엄마는 딸의 처사가 서운할 때마다  끊임없이 보따리를 싸며 매번 뛰쳐나갈 듯한 제스처를 쓴다. 하지만 실상은 딸이 도로 붙잡아 앉혀주길 간절히 원하는 반어법(反語法)적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연민과 동조, 그 인간적 솔직함에 애정이 느껴질 만치 전면적이면서 동시에 집요하다. 딸은 그런 엄마에 대한 반작용으로 끊임없이 엄마를 주저앉히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그 속내는 낡은 가족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탈 어머니'에 대한 욕망으로 매순간 화닥증을 앓는다.


두 사람간 마음의 싸움은 결국 마요네즈로 인하여 발작적으로 터져 나오게 된다. 딸에게 마요네즈란 아버지를 불행한 모습으로 죽어가게 했던 자신의 죄책감을 후비고 쑤시는 가시관이다. 아울러 마치 불만족스러웠던 평생에 대한 보복처럼 죽어가던 아버지를 홀대했던 '배반적 모성'의 목격으로 인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새록새록 들쑤시는 고통의 원천이다. 언젠가 엄마는 머리에 허옇게 마요네즈를 바른 모습으로, 죽어가던 아버지를 학대해 딸이 언제나 신성한 부분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아름다운 모성‘에 대한 믿음을 가차없이 배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치 또 다른 엇갈림에 대한 전조처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그렇게 끝나 버린 그날 저녁 이후, 그들 모녀는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