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임칼럼…그녀의 힘
내 집에 대한 불만은 하나였다. 아무리 발을 곧추세워도 정면에 흐르는 강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폭우 쏟는 장마철이라야 겨우 시계(視界)에 들어오던 누런 강물엔 감질이 났다. 맑게 출렁이는 앞 강물에 대한 기대, 4대강사업의 시발이라는 영산강개발사업에 대한 갖은 논란에도 정부발표를 애써 믿으려한 이유다.
근래 어인 까닭인지 마루에서도 훤히 바라보이는 강물이 반가웠다. 시작과 동시에 보게 된 효과일까. 반신반의하며 강으로 달려 나갔다. 아뿔싸! 말이 강물이지 걸쭉한 죽탕 아닌가.
“우리 더러 지금 물에서 뒤져불란 것이여?”
막힌 물로 잠긴 논에 급기야 이런 볼멘소리까지 터진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이요,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들린다는 서정시 속 강변풍경은 한낱 꿈이런가.
누군가에게 호되게 속은 느낌, 읽을수록 가중되는 머리의 통증에 서둘러 지면을 넘기니 지진해일 보도다. 지난 27일 칠레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의 70%는 건물, 도로 붕괴 등 지상재해가 아니라 해안지역에 밀어닥친 쓰나미의 희생자란다. 강의 작은 지류 곁에 자리한 우리 마을은 홍수 때마다 발치에 넘실거리던 물사태로 공포에 떨었다. 불시에 들이닥친 자연재해 앞에서 상실해버린 인간의 존엄성, 약탈과 방화, 수많은 주검들이 남의 일 같잖다.
아수라장 화면 앞에서 전형적인 촌아짐들조차 환경재해라는 진단을 내린다. 용(龍)은 유순하여 잘 길들이면 타고 놀 수 있을 정도라던가. 그런데 턱 밑에 자리한 한 자의 거꾸로 박힌 비늘, 즉 역린(逆鱗)을 건드리면 그 누구도 죽음을 면치 못한단다. 함부로 다룬 인간에게 돌아 선 자연은 역린을 다쳐 잔뜩 뿔 난 용이다. 어느 나라의 어느 곳이 그 무자비한 화풀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무너진 집 터 앞에 망연히 서 있는 소년의 황망한 심정으로 읽는 미첼 바첼리트 칠레 대통령의 기사다. 지진 대처에 아이티와 칠레는 확연히 달랐다는 서두다.
칠레 남부를 강타한 규모 8,8의 강진은 아이티의 그것에 비해 수 백 배 강력했지만 피해는 훨씬 적었다. 물론 두 나라의 국가 경쟁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미첼 바첼리트 대통령의 차분하고 침착한 대응이 무엇보다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이는 아이티 대지진 이후 한때 행방이 묘연했던 르네 프레발 대통령의 처신과 극명히 대조된단다. 지진 발생이 토요일 새벽, 그때부터 그녀는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것을 촉구하는 등 위기 대응의 전범을 보여줬다는 외신의 평가다.
칠레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그녀는 중도적 사회주의자이자 자유무역주의자로서 자신이 내세웠던 공약을 그대로 관철했다. 정상회복에 최선을 다하는 이런 대통령의 모습에 칠레 국민들은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단다. 국가적 재난에서 용감하고 차분하게 대처했던 능력 갖춘 지도자로 기억될 것이라는 그 기사가 부럽다.
초심을 지키는 이들은 드물다고 한다. 일에 파묻히면 대부분 잊어버리기 때문이란다. 나중엔 왜 자신이 그 일을 시작했는지도 까먹는단다. 그러다 자신이 가려던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자신을 발견한다던가. 관철이라는 단호한 단어를 쓸 만큼 애초 내세웠던 공약, 즉 초심을 지킨 미첼 바첼리트, 그녀의 힘은 위대하다. 믿음을 주는 국가, 정확한 판단력으로 통솔력 뛰어난 지혜로운 지도자야말로 국가의 가장 큰 덕목이다.
가랑비 며칠에 온갖 잡동사니로 썩어가는 강물 앞에서 과연 누구를 믿고 누구를 따를 것인지 저 혼탁한 강물 못지않게 어수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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