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장돌뱅이
김수평
경운기 소리 요란하면 봄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던데 나는 ‘뻥’하는 뻥튀기 소리에 시장을 느낀다.
닷새장이 서는 날이면 자주 장에 간다. 꼭 무엇을 사기위해서라기보다 그 분위기가 좋아서 그냥 그렇게 간다. 산짐승이 다니는 길로만 다니듯이 늘 같은 길을 따라 간다. 하므로 장 어귀에 있는 뻥튀기 아저씨를 쉽게 만난다. 가끔 “뻥” 하는 소리가 나를 반기는 축포 소리로 들릴 때가 있으니 아무래도 나는 장(場) 체질인 것 같다.
“장사 잘 되요?”
“하이고 힘드요. 물가가 너무 올라서”
“물가라니요?”
“아, 제일 많이 뛴 것이 가스 값이고 비니루 헐 것 없이 다 올랐지라우. 전에는 한 판 튀겨주는디 3천원 받았어도 괜찮았는디 지금은 4천원 받아도 이문이 없소.”
남는 장사 없다 해도 벌이가 예전만 못하긴 못한 모양이다.
국화빵 파는 데를 찾아간다. 요깃거리로 좋다. 1000원에 여덟 개나 준다. 손금같이 복잡한 시장에서는 서로 어깨 부딪치기 일쑤다. 그래, 옷깃을 스치면 인연이고 옷속을 스치면 연인이라 했던가.
재수가 없다. 오후 4시가 채 안 된 시간에 국화빵이 동이 나고 말았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못 알아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화순 민들레홀씨 독서회를 초대했을 때 참석했던 아줌마다. 고객들이 좋아해서 몽땅 떨이를 한단다. 그러니 내가 살 것은 없다. 빵 하나를 건네준다. 냉큼 받아먹었다. 하나를 더 준다. 참 맛있다. 순간, 신사복 정장에 근엄하게 넥타이를 매고 북새통에 서서 국화빵을 우기적거리며 먹는다면? 웃음이 핀다. 오늘 옷차림이 시장패션(?)이어서 국화빵 받아먹기가 적당하다.
며칠 전에 안과에 다녀오면서 붕어빵을 샀다. 전에는 1000원이면 다섯 개가 기본이고 아는 얼굴에는 하나 더 얹어주었는데 달랑 세 개만 준다.
“아니. 이렇게 비싸요?”
죄 없는 아줌마가 겸연쩍어 한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어 “아줌마, 두 개는 청와대 가서 주라고 해야 것소.” 청와대도 못해먹을 노릇이다. ‘선무당 정권이 경제 잡는다’는 신문기사가 떠오른다. 앞 일이 걱정이다.
그런데 요즈음 장은 옛날에 ‘엄니’를 따라다니던 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 설탕이 귀해서 국수나 우무에 당온을 쳐 쪼그리고 앉아 맛나게 먹던 시절. 그 때는 시장에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많았고 활기가 넘쳤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무엇이 검어졌는지 모르겠으나 흰 옷보다 거무칙칙한 옷이 많고 시든 시금치같이 풀죽은 분위기다. 고급한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 동네에까지 들어선 수퍼들 때문에 기가 꺾였을까?
귤 대여섯 무더기를 좌판에 쌓아놓고 붙박이로 앉아 있는, 강 같은 인생의 주름이 얼굴에 가득한 할머니 앞을 그냥 못 지나간다.
“할머니, 많이 파셨어요?”
“하이고, 안 팔려어.” 어디서고 ‘하이고’다. 슬며시 장난기가 발동한다.
“할머니, 강남 귀족계 다복회라고 알아요?”
“뭣이라고? ‘귀” 뭣이라고?“ 몰라도 전혀 모른다.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을 손해보고도 까딱 않는 부유층 사모님들이 귤 장수 할머니한테는 하늘의 별일게다. 돈 많아 오만하고 방자한 귀족계 사모님들이 귤 장수 할머니한테는 하늘의 별일게다. 돈 많아 오만하고 방자한 귀족계 사모님들은 귤 몇 무더기로 하루를 버티는 할머니를 어떤 눈으로 볼까? ‘귤 할머니’와 ‘다복하신 사모님들’의 하늘과 땅 같은 간극을 누가 메워 줄 수 있을까. 아마 세종대왕이 환생을 해도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할머니, 힘내세요. 알아서 속 뒤집어질 거면 모르고 사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꼬라지가 난다. 괜히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5000원을 주고 귤 한 망을 샀다. ‘사주었다’와 ‘샀다’는 다르다. ‘사주었다’는 내가 무슨 선행이라도 베푸는 것 같아 할머니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귤 한망의 무게가 보태어졌어도 발걸음은 가볍다.
내가 이렇게 사설을 늘어놓는 것도 깜냥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장돌뱅이 때문이다. 장돌뱅이의 사전적 의미는 ‘각 처의 장으로 돌아다니며 파는 장수’이다. 이런 장돌뱅이는 이 장에도 많다. 내가 말하는 장돌뱅이는 격이 다른 장돌뱅이다. 그 장돌뱅이는 우리 이화독서회의 여자 회원이다.
장사치, 장사꾼, 장돌뱅이라는 말이 뽐낼만한 말이 아닌 듯하다. 봉건사회에서 사농공상(士農工商)제도를 만들어 신분을 제약했던 몹쓸 유물 탓이리라.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토건회사를 운영해서 대통령도 하는 시대 아닌가! 하는데도 장돌뱅이하면 직업으로는 하위로 치는 사회적 정서가 지배적인 것 같다.
그런데 이화회의 장돌뱅이는 여간 당당하지가 않다. 누가 물어 볼 것도 없이 자기를 장돌뱅이라고 스스럼없이 내비친다. 그 품새가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오기도 아니요, 교만함도 아니다. 자기 직업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자긍심이 묻어나는 당당함이다.
이화독서회가 지난 4월에 문을 열었는데 장돌뱅이가 시월 어느 날 나타났다. 따지면 내가 단연 선배이다. 나는 글 한 줄이라도 쓰려면 애가 툭 터져 죽을 지경인데 장돌뱅이는 쉽게 쉽게 잘도 써 낸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청출어람(靑出於藍)인가? 확언컨대 장돌뱅이는 우리 독서회의 새로은 ‘엔진’이다.
인간도 유통기한이 있을 터. 기계도 오래되면 낡고 효율성이 떨어질 거다. 사람이라고 다를 게 뭐 있겠는가. 나도 신노심불로(身老心不老)의 나이어서인지 삶의 에너지가 많이 방전된 것 같다. 장날이면 평소에도 장에 자주 들르곤 했다. 이제 더 자주 가게 생겼다. 장돌뱅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고 먼발치에서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고 싶어서 갈 거다.
마음이 시들해질 때는 산소같이 신선한 장돌뱅이로 하여 생(生)의 에너지를 충전하려고 닷새 장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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